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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칠갑산은 지금 - 이선(자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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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칠갑산은 지금 - 이선(자유기고)
  • 청양신문
  • 승인 1995.11.01 00:00
  • 호수 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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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요새는 텔레비전만 켜면 그만 둔 노대통령 얘기만 나온다냐?" 멈칫하고는 글쎄 뭐 엉터리 짓으로 돈 욕심내다가 들통이 나서 그런가보다는 무성의한 대답에 "아니 원! 대통령 했으면 됐지 뭐가 부족해 저런 망신이라냐?" 조반상을 마주한 노모가 요즘 세태가 하도 괴이쩍었는지 던진 질문이다.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명예를 누렸봤으면 됐지 무지막지하게 탐욕스런 비도덕적 처사까지는 납득이 안되는 때문이리라.
아차, 뚝! 잠시의 경거망동으로 그 정간법인가해서 청양신문에 정간령이라도 내린다면 어쩌라.
각설하고, 칠갑산은 아름답다.
봄의 자태 고운 산은 가을 단풍 역시 곱다. 예컨대, 차량편으로면 탄정리 소위, 비젼마을부터 천장호까지 우측 산자락에 연두색 파스텔톤으로 시작되는 칠갑산의 봄이 성큼 여름을 건너 지금의 가을 거기 또 봄만한 다른 색조의 고운 맴시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조성된 침엽수림보다는 자생 활엽수의 군락에서 느껴지는 훨씬 더한 생동(生動)과 경이(驚異)는 곧, 자연의 이치랴 싶다. 가장 자연스러움 그 자체가 곧 자연이라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계절이다.
태어나 유년기의 한 부분을 아마도 칠갑산 상봉이-기억에 의하면 당시 마을 사람들은 그 산의 정상을 그렇게 불렀다-가장 가까이 잡히는 산간에서 자랐기에 보이고 들리는 모두가 산이었다. 그 상봉에 다시 서 보아도 굽이굽이 이어지는 자락마다에 크고 작은 애잔한 삶의 전설이 묻어있는 듯 싶다. 결코 빼어나지는 않으면서 잔잔하고 절제된 감동이 저절로 와닿는 은둔과 신비, 소박(素朴)과 담백(淡白)의 풍광이다.
그런데 거기에 다소는 번거롭고도 속박이 엿보이는 '도립공원'이란 명칭을 씌우고 있다. 도대체 공원지역이란 것이 자연대로의 보존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훼손을 전제로 한 성절인지부터가 모호하다. 어쨌거나 공원이라든 아니든 칠갑산은 가장 칠갑산다울 때만이 그 생명력이 이어지고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그 산을 찾을때마다 매번 같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는 무엇이 있다.

칠갑산의 상채기
칠갑산 광장에서 시작되는 산행로가 가장 일반적이다. 또한 그 줄기를 산의 제일 큰 맥으로 볼 수 있으며, 광장쯤을 허리로 보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 허리를 잘라 길을 뚫고, 그 한켠의 중앙에는 산장이, 맞은 편에는 규모 큰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조금도 비켜나지 않고 바로 중심선을 허물어 잡았다. 말나온 김에 동상이 거기에 위치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발상이 의아하다. 차라리 관련 사당의 넓직한 마당이었다면 모를까.
그리고 정상 가까이까지 마구 파헤치고 낸 어이없도록 넓디 넓직한 길, 어떠한 명분과 목적이었다해도 칠갑산을 회복불능의 상태로 가장 크게 망가뜨린 가장 가슴아픈 대목이다. 기왕에 한가지만 더.
산장에서 잠시 걸음을 옮기다보면 문득 단초로우면서도 예사롭지안하 보이는 '산신각'을 맞딱뜨리곤 했다. 물론 지금도 그 자리에 단장된 채로 서 있다. 그런데 바로 앞을 가로막고 돌과 콘크리트의 웅장한 조형물이 난데없이 들어섰다. 어지간한 운동장 규모의 터를 닦아내고 하필, 그 곳에 '충혼탑'을 세운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 얼마, 누구는....., 헌금자의 명단 규모가 기리자는 영령들의 고귀한 위세를 오히려 압도하는 듯하여 다시 한번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물론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려니해도 가히 희극적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고소(苦笑)를 금할 수만은 없었다.
겨우 이만큼으로 칠갑산을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기회, 달리한 관점에서 다양한 테마와 포맷으로 칠갑산이 이어졌으면 싶다. 우리의 칠갑산이 '콩밭메는 아낙네....."의 애상(哀傷)조로만 어물쩡하게 관념규정화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뜻이 모인다면 일그러진 모습을 고치고, 바꾸고, 세우는 것도 우리의 반듯한 자리매김일 수 있겠다.
오늘, 그래도 칠갑산은 저기 저렇게 무욕(無慾)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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