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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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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수필
  • 청양신문
  • 승인 1995.11.21 00:00
  • 호수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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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작 로 ......
윤승원<수필가. 충남도경 근무, 장평면 중추리가 고향>
장날이면 갈지(之)자 걸음을 걷는 동네 아저씨도 더러 보이지만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으면 혼자 흥얼거리면서 지나가기 마련이고, 방아 찧러가는 김서방네 달구지에 다리묶은 씨암탉 두어마리 실어 놓고 어슬렁 어슬렁 뒤따라 가는 건너 마을 아주머니의 여유도 돋보이는 곳.
가용(家用) 마련하려고 어머니가 잡곡 보따리 이고 나오면 되멕이장사I길가에서 농민들이 가지고 나오는 곡식을 미리 사서 되넘기는 장사를 그렇게 불렀다.)가 총총걸음으로 다가 와 잽싸게 채어 가지고 가로수 밑에 가서 풀어 헤쳐 보기도 하는 곳.
어머니는 고갤 저으며 더 안주면 싸전까지 가겠다 하고, 장사꾼은 그냥 넘기라고 하고,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은 약삭빠른 장사꾼이 한두전 더 얹어 준다는 바람에 순박한 우리 어머니의 보따리는 넘어가고 만다.
'그런데 가만히 있자. 저기 가시는 게 아무개 어르신네 아닌가?' 수염이 허연 노인이 지팡이 짚고 경로당 가는 걸 보고 자전거 탄 젊은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마가 땅에 닿게 절을 하니, 노인네는 남 바쁜 줄 모르고 대소가내 안부 묻고, 긴 수염 쓰다듬으며 농사 작황은 어떠냐, 아이들 학업은 잘 하느냐........ 차근차근 묻는다.
그래도 말씀하시는 대로 다 대꾸해 드리고 맥고모자를 반쯤 벗었다 썼다하면서 서너 번 더 머리 조아리다가 자전거에 올라 탄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신작로를 내다보면서 가장 반가운 것을 빨간 자전거다. 갈색가방을 흔들거리며 우리 동네로 접어 들어오는 우체부 아저씨가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가방 속에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제일 반가워하실 형님의 편지도 들어 있고, 시집 간 누나의 애틋한 사연도 들어 있었다. 편지를 어머니께 두어 번 읽어 드리고 나면, 어머니는 눈가의 이슬을 닦으시며 부엌으로 드신다.
나도 심란한 마음 달래려고 지게지고 꼴 베러 나가는데, 저만치 지서 순경이 자전거를 타고 신작로를 지나간다. 더러 장발의 총각들은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먼 논둑길로 돌아다니는 걸 보았으나, 내 머리는 언제나 이등병 머리처럼 짧았으므로 두려울 게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밀주(密酒)를 담가 골방에 이불 뒤집어 씌워 놓은 집이며, 청솔가지를 쪄다가 썩은채 덮어 놓은 집에서는 지레 겁 먹고 순경의 자전거가 어디로 꺾어지는지 동향을 살펴야만 했다. 그런데 웬걸, 청솔가지는 산림감시원이, 밀주단속은 세무서 직원이 한다는걸 안 것을 그 뒤로도 한참 뒤, 그러니까 내가 비로소 성년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장마가 끝나면 동네 사람은 모두 괭이와 싸리 소쿠리를 들고 신작로로 나갔다. 이른바 '길 닦이 부역(負役)'을 나가는 것이다. 빗물에 씻겨 나가 물창을 뒹기는 신작로를 보수하기 위해 가가호호 동원되었던 것인데, 집집마다 담당 구역을 표시해 놓고 자갈을 져다 부리는 등 도로관리를 했다.
제대 후, 신작로를 바라다 보는 청년의 가슴은 마냥 설레였다. 양복차림에 서류 봉투를 들고 늘 바쁘게 신작로를 지나가는 면서기 아저씨도 부러웠고, 굽 높은 구두에 고운 양산 받쳐 든 아릿다운 국민학교 여선생님도 신작로 옆 논배미에서 피사리하던 총각의 눈에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도 미구(未久)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저렇게 말끔한 양복입고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저기 가는 저 여선생님처럼 아릿다운 규수를 아내로 맞아 들여야지....., 그것은 정말 신나고 가슴설레는 꿈이었다.
신작로!
색시가 첫날 밤에 신랑이 무서워 벌거벗고 뛰쳐나와 이 신작로를 타고 친정집으로 달려갔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도둑이 훔친 쌀가마를 지고 이 넓은 신작로를 버젓이 활보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어디 그 뿐인가. 이른 새벽, 차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에겐 모두 각자의 보따리가 있다. 서울 공장으로 취직하러 가는 아가씨도 옆구리에 조그만 보따리 하나 끼었고, 청운의 꿈을 안고 대도시로 나가는 학생을 배웅하는 어머니도 머리 위에 보따리 하나 있었다. 이들 보따리 속에는 무슨 대단한 물건이 들어 있는게 아니었다. 타향 객지에서 자식이 고생할 것을 염려하여 챙겨준 어머니의 시름이 그 속엔 가득 들어 있었다.
미리 나와 기다리건만 버스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고, 짚단에 불을 지펴 언 발이 얼추 녹을 즈음에야 고개 너머로 버스의 클락숀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떠나는 이나 배웅하는 이나 모두 가슴 설레게 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신작로는 떠나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다. 기다림 또한 있는 곳이다. 노인이 명절이 되면 객지의 자식이 뻔히 못 올줄 알면서도 막차의 엔진소리에 행여나 하고 내다보던게 신작로가 아니었던가!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신작로로 통해서 왔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장차 무엇이 한번 되어 보고 싶다는 욕망도, 그 어떤 대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신작로를 통해서 비롯되었으며, 우리의 의식을 알게 모르게 바꿔 놓은 신문명(新文明)과 신유행(新流行)도 신작로를 통하여 스며들었다. 또한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이를 만나 얼싸 안는 기쁨도, 후행(後行)술 한잔에 얼큰하여 두루마기 휘날리며 돌아오던 사람들의 붉쾌한 얼굴도 모두 신작로를 통해서 볼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부운(浮雲)이요, 일장춘몽이런가! 만사(輓詞)거느리고 북망산천(北邙山天)으로 떠나는 이를 배웅하는 장죽(杖竹)의 서러운 행렬도 신작로를 통과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 행렬을 바라보면서 잠시 숙연해진다. 바라다보는 사람 마다의 관심도 다르다. 연로하신 어른은 자신의 내일을 보는 듯 착잡한 심경이 되고, 빨랫터의 아낙들은 상주의 숫자를 헤아려 보면서 번족(繁族)하다느니, 독자라 외롭겠다느니, 수다를 떨다가, 요령잡이의 구슬픈 만가(輓歌)소리에 그만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만다.
이처럼 온갖 애환이 전설처럼 되살아나는 내 고향 신작로를 오늘의 나는 승용차로 단숨에 달려올 수가 없다. 천천히, 그리고 잠시라도 내려서 아카시아 잎따서 손바닥에 날려도 보면서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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