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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문제를 왜 ‘중앙집권’으로 풀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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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문제를 왜 ‘중앙집권’으로 풀려고 하는가?
  • 청양신문
  • 승인 2000.10.02 00:00
  • 호수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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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부, 시장·군수 서면경고제 등 지방자치법개정안 입법예고

도전받는 지방자치
중앙정부가 부단체장의 국가직으로의 전환과 자치단체장에 대한 서면 경고제도와 대리집행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지방자치제도가 또다시 도전을 받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15일 시·군 자치구의 부시장·부군수·부구청장(이하 부단체장)을 현재의 지방직 공무원에서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하고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부당한 사무처리를 한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중앙정부가 경고 조치할 수 있는 ‘서면경고제’ 도입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초자치단체의 부단체장 신분이 일반직 지방공무원으로 그 신분이 바뀐 것은 민선 2기 단체장 임기가 시작된 98년 7월 1일 부터다. 이전까지는 기초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의 신분은 일반직 국가공무원이었다.
기초자치단체의 신분이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바뀐 지 2년여를 갓 넘긴 셈이다.
행자부는 이처럼 부단체장의 국가직화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국가 위기관리를 위한 집중력이 약화되고 국익과 지방이익이 조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시·군에서 정실인사의 폐단이 드러났고 중앙 및 다른 자치단체와의 인사교류의 길이 막혀 상호협력과 조정이 어렵다”는 얘기도 곁들여졌다.
이에대해 자치단체장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최근 모임을 갖고 “부단체장의 국가직화에 반대한다”는 공식입장을 채택했다.
“지방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중앙 간섭에 의해 단체장과 부단체장 사이의 마찰만 가속화될 수 있는 등 자치행정에 혼선만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는 논거도 보태졌다.

부단체장, 지방직이냐? 국가직이냐?
이같은 양자의 주장은 보는 관점에 따라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자치관련 시민단체에서는 “민주주의의 척도로서 지방자치를 중요시하고 있는 지방자치 실시의 근본문제와 관련해 이 문제를 접근할 때 해답은 분명해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취지와는 다르게 지방자치의 본질이 훼손당할 수 있다는 ‘우려’ 쪽에 힘이 실려 있는 셈이다.
지방자치법에는 부단체장의 역할과 관련 ‘기초 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은 당해 자치단체의 장을 보좌하여 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하며, 당해 자치단체의 장에게 유고가 생길 시 그 직무를 대리하도록’ 되어 있다.
즉 부단체장은 당해 자치단체의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근거해 일부 지방자치학 전문가들은 “원칙적으로는 부단체장도 주민의 정치적 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주민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부단체장의 국가직화가 번번히 거론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중앙관료들의 과거 회귀본능이 만든 ‘서면경고제’
이와관련 오재일 전남대 교수(행정학)는 “중앙집권적인 정치·행정체제를 오랫동안 간직해 온 탓에 여전히 분산적인 정치·행정·문화에 익숙하지 못한데다 중앙관료들의 향수어린 과거 회귀본능이 발동한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진단한다.
자치단체에 대한 서면경고제 추진도 같은 맥락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행자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면경고제의 골자는 ‘자치단체장의 위법·부당한 명령과 처분에 대해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그 단체장에게 서면으로 경고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경고를 받은 자치단체장은 의무적으로 지적사항을 의회에 보고하고 시정해야 하며 만약 이를 거부하면 시정명령·직무이행명령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자치단체장이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법령에 근거한 지시·명령을 어긴 때에는 상급기관이 대리인을 선임해 직무를 집행하는 ‘대리집행제’가 발동된다.
이는 한마디로 ‘권한만을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않는 막 나가는 민선 자치단체장에게 그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를 묻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는 “그동안 중앙집권에 의한 폐해가 심각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 또한 자치단체의 자율성 침해로 귀결될 소지가 크다”며 우려하고 있다.

도전 자초한 ‘막가파’ 기초자치단체장
물론 대다수 시민들은 “지자체 단체장의 직무태만·부당 행정행위·인사권 남용 등에 쐐기를 박는 장치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대전 서구청의 예에서 처럼 살림형편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업적 쌓기나 전시·홍보 차원에서 아까운 예산을 펑펑 쓴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전국 도처에는 난개발 현장이 널려있다.
특히 선거기간 중 단체장들의 지방공무원들에 대한 ‘줄서기’가 강요되고 선거가 끝난 후엔 공헌도를 매겨 자리내주기를 서슴치 않고 있는 것이 지방자치의 현 주소다.
주민의사를 고려치 않은 독선행정으로 곳곳에서 자치단체와 주민간 갈등이 속출하고 있기도 하다.
위민행정을 위한 중앙정부의 여러 시책이 자치단체에서 여러 이유로 무시되거나 사장되는 경우도 잦았다.
이같은 부정적 요인들은 “결과적으로 중앙정부가 자치단체를 제어할 수 밖에 없다는 논거가 나올 수 있도록 지자체가 자초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행자부의 일련의 움직임이 갓 움트기 시작한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지고 있다는데 있다.
전농충남도연맹 강윤정 사무차장은 “행자부가 방안으로 내놓은 안들이 지방자치의 개혁을 넘어서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하며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도록 하자는 게 애초 지방자치의 취지아니냐”고 되물었다.

주민에게 힘 실어 줘야
아산사랑시민모임 이진숙 간사는 “지방자치 이념에 맞게 주민들이 역할할 수 있도록 권한을 실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간사는 “자치단체장을 포함해 공직자에 대한 주민 소환제를 도입하고 지방의회에게 자치단체장에 대한 불신임 의결권 등 감시와 견제권한을 강화시켜 준다면 굳이 서면경고제나 부단체장의 국가직 전환이 필요치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충남도의회 관계자도 “이씨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여기에 시민단체를 육성해 주민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한다면 지방자치 정착이 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분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전 경실련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바람직한 지자체 운영을 위해 나서고 자 한다면 오히려 주민들과 지방의회, 시민단체가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될 것”이라며 “민원행정의 투명성이 제고되도록 행정정보공개법을 개선하고 내부고발자 신고제도 도입, 주민감사청구제 활성화 등 필요한 일들이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주군의 한 공무원도 “중앙정부가 조정, 정책 능력을 강화하거나 예산 차등지원과 인센티브제의 확대 등을 통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참여연대 김진화 국장은 “짧은 지방자치의 역사로 인한 부작용이 없지 않으나 과거 중앙집권제에 의한 폐해를 떠올린다면 빠른 속도로 자치가 뿌리내리고 있는 셈”이라며 “지방자치가 개혁돼야 하나 그것이 중앙정부의 개입으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행자부가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려 하지 말고 주민들의 힘을 동원해 문제를 푸는 방안을 적극 내놔야 한다는 비등한 여론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며 중앙정부의 사고전환을 촉구했다.
<대전주재 심규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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