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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사 칼럼 임동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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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사 칼럼 임동권 박사
  • 청양신문
  • 승인 2000.08.20 00:00
  • 호수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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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명예교수 / 장평면 분향리 출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禮)요 교양(敎養)이다’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 장평면 분향리 출신

중국의 고사에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할 군자오치(君子五恥)가 있는데 그 첫째가 예(禮)를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말하고 있다. 사람은 혼자서 살지 못한다. 가족, 친지, 학우, 직장인 나아가서는 민족, 인류로 확대되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귀고 의지하고 교류하면서 산다.
요즘처럼 세계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선인들이 오치(五恥)니 오불(五不)이니 하는 사람이 지키고 간직해야 할 도리를 생각하여 격언(格言)으로 내세운 시대에는 국제화는 생각도 못하고 좁은 향(鄕)에서 살고 기껏해야 나라 안에서 거주하면서 얻은 철학이었을 것이다. 늘 만나고 자주 접촉하는 사이에서는 허물을 너그러히 수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예를 지키는 것은 사람된 도리이니, 예를 지키지 못하면 가장 부끄러운 일이란 것으로 생활신조로 삼았으니 옛 사람들은 무던했고 귀담아 듣고 배워야 할 일로 여겨진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국제화시대이기에 피부 색깔도 문화도 다른 여러나라 사람들과 사귀고 왕래하면서 살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더욱 밀접해질 것이니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할 것이다. 예를 지키는 일은 겸양과 교양을 갖춘데 있으며, 예를 모르는 것은 오만하고 자기억제를 모르는데 있다. 오만하지 않고 불만이 있어도 참고 욕심이 솟구쳐도 참으면 예를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으며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는 예를 모르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를 모르는 일이 너무나 빈번히 일어나고 그 도수가 심해지고 만성이 되는 경향이 있어 걱정이 된다.
거리에 나아가면 무질서한 혼잡, 전철을 타면 발을 쫙 벌리고 앉았거나 발을 꼬고 있으며, 아침 공원에 가면 술마시고 토한 오물이 흉물 스럽고, 공원 안에는 개를 끌고 와서는 않되는데 잔디밭에 배설시키고, 자전거가 휙하고 지나가서 놀래는 일도 있다. 시설은 좋은데 그것을 모두가 즐길 수 있게 활용하는 도덕심과 교양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꼴을 보면 우리는 공원하나 사용할 줄 모르는 후진시민인가 싶어 한심스럽다.
IMF를 당한 이후로 이혼률이 높아졌다는데 그 이유는 남편의 실직에 있다고 하며 무능한 남편에 실망해서 아내가 가출하고 흔히 서양인의 잦은 이혼에 부도덕함을 나무래는 사람들도 많으나 그들의 이혼소송에서 중요한 쟁점은 아이들의 양육을 서로 맡으려고 주장하는 싸움인데, 우리의 이혼소송은 맡지 않으려고 다투는데 있다고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도 이제는 옛 고사이고 우리는 벌써 모성애, 부성애의 한계를 넘어 온지가 오래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인간이 싸우는 보편적 이유는 세가지로 권력, 돈, 성(性)으로 압축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한 세상을 땅땅거리고 살기 위해서 제분수도 모르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고 격에도 맞지 않는 권력을 탐내고 있다. 우리의 정치판이 그렇다. 국민이 모두 비웃고 언론도 호되게 비난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탐욕스럽게 날뛰는 모습은 그저 보기가 민망하고 염치를 모른다는 느낌이다.
허유(許由)의 고사를 따르지는 못할망정 겸허했으면 좋겠다.
돈은 생활에 있어 꼭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절약해서 살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은 제물을 원한다.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체통을 잃고, 신의를 배반하고 추한 짓, 남을 속이는 짓을 태연스럽게 저지르고 있다. 절약해서 쓸 정도면 되는 것을 과욕과 허영 때문에 인격을 잃는 수가 있다. 좋으면서 궂은 것이 재물이라는 인식이 없다. 요는 졸부들이 예를 지킬줄 아는 교양이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노래 가사에는 사랑을 찬양하는 일색이다. 소설도, 시도, 드라마도 사랑을 찬양하고 있어 사랑만이 최고로 알고 있다. 옛사람 같으면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귀뿌리가 붉어졌는데 요즈음에 문학이나 공연예술에 있어 사랑 빼놓으면 아무것도 없다.
과연 사랑은 있어야 하고 숭고한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주장되고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동물적인 사랑이 정신적 사랑으로 위장 포장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선인들은 한번 맺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의지하고 살았다. 이것을 현대인들은 바보 천치라고 비웃는데 그래도 그 시대에는 가정이 있었고 참고 견디는 예가 있었다. 오늘날 죽자 살자 사랑해서 혼인하여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갈라서고, 혼수감을 타박하고 몇해 살다가 자식 두고 헤어져 아이를 고아로 만드는 사람보다는 월등 나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보면 지금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거짓이고 허황띤 속에 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시골 장터에서 뼈아픈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치하는 놈, 돈 많은 놈, 바람난 놈, 모두 주리틀어야 혀” 촌농부 끼리의 대화이지만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에 대한 실랄한 비판이요, 정곡을 찌르는 순수하고 소박한 말이다.
정치인은 있어야 한다. 바르게 정치를 하지 않는데서 비난하는 말이다.
돈 많은 재벌도 있어야 한다. 부정하게 축재를 하기에 미운 것이다. 많은 재산으로 사회사업을 했더라면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을, 그렇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 인간에 사랑과 낭만은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추하고 부도덕한데서 곱게 보이지 않는다.
모두 잘 했더라면 영광스러운 것을 정도를 걷고 예를 지키지 못하고 빗나간데서 촌부까지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황희정승은 영의정의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바르고 깨끗하게 살았기에 존경을 받았으며, 부호 록펠러는 전 재산을 사회사업에 썼기에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니 모두가 나 하기에 따라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놈자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우리 속담에 잡놈에는 세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한다. 잔치 자리에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는 불청객이 첫째 잡놈이요, 청했는데도 오지않은 것은 호의를 져버린 무례한 잡놈이요, 셋째는 한번 다녀갔으면 되는 것을 다시 찾아와 기웃거리고 대접받는 것도 잡놈이라고 한다. 이 세 잡놈은 모두 무례한 짓, 교양이 없는 짓을 하기 때문에 빈축을 산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주변을 보면 잡놈들 투성이고, 오만하고, 거덜먹 거리고, 날뛰고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탐내고 있어 소란 스럽고, 혼돈하고 질서가 없다. 바라는 것은 권력이요, 재물이요, 욕망의 충족이다. 이러한 것을 얻으려면 노력이 축적되고, 수양이 쌓이고, 인격을 갖추어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한 과정 없이 결실을 얻으려고 서두는데 혼란이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권력이나 재물보다 예의를 지킬줄 아는 교양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부지런히 일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다.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망은 한이 없다. 그 짓을 다 충족시키자면 추한 짓을 하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놈’자를 듣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예를 지키고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어 이웃과 더불어 어울려 살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역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예를 갖춘 교육이 있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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