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7 17:12 (수)
우리의 이웃 - 청남면 천내리 김용규 씨
상태바
우리의 이웃 - 청남면 천내리 김용규 씨
  • 김홍영 기자
  • 승인 2021.11.27 00:11
  • 호수 1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사의 가치 알아가는 농부의 시간

구기자나무 사이 불그스레한 구기자가 당알당알 달려있다. 구기자 농사를 지은 지 3년 차, 아직 손에 익지 않았기 때문이며 혼자 하다 보니 느지막까지 구기자를 딴다. 주변 논밭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할 일을 다 끝낸 휴식의 시간이지만 김용규 씨의 하우스는 여전히 농사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친환경으로 짓고 있다. 병충해 때문에 농사짓는 것이 쉽지 않다. 전문가도 아니고 품이 곱절 이상으로 든다. 수확도 그렇다.”

자신을 농사꾼이라고 소개한 김용규(70·청남면 천내리) 씨. 농사 경험도 일천한데 거기에 친환경 농법을 시도하니 지금 상황이 이렇다고 빙그레 웃는다. 조급한 낯빛은 조금도 없다. 그저 그에게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하면 된다는 심산이다. 급할 것도 없고, 그 일이 있으니 하면 된다는 생각이 전부다. 농촌에서의 3년이라는 시간은 김용규 씨를 변화시켰다. 

“하루 일 안하고, 게으름 피면 금방 표가 난다. 구기자 순이 자라고, 땅 바닥에 잎사귀도 널려있고,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안하다가 모든 것을 내 육신으로 하니 ‘내가 견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고됐다. 그렇게 몸으로 경험하면서 농사의 가치를 새삼 생각하게 되더라.”

땅을 일구는 이들의 공력이 느껴졌다. 매일 먹는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 까지 농부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를 생각하면서 아내와 시장에 가면 농산물 가격 절대 깍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제 김용규 씨도 농사에 공을 들이는 농부가 됐다. 

농촌으로 이주하며 이전에 전혀 몰랐던 농사의 가치라는 것에 눈뜨게 됐다. 일흔에 농사의 의미를 찾아가며 또 다른 인생을 펼쳐가고 있다.
“도시생활에 많이 지쳤었던 것 같다. 농촌은 좋은 피난처였다. 3년 여의 시간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망각해버리고 살았던 것에 대해 점점 알게 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피난처 찾아 청양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휩쓸리듯이 살았다. 정년퇴임하고 좋은 피난처로 농촌을 생각하게 되었고, 청양에 오게 됐다. 
“귀농이 목표라기보다는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교육을 받았다. 귀농학교서 청양으로 현장실습을 왔다. 학교 동기 중에 이미 청양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짓고 있는 이가 있었다.”

이렇게 청양과 연이 닿아 당시 귀농협의회장 소개로 현재 사는 곳 이장님을 알게 되고 집을 구했으며 땅도 임대했다. 오랫동안 비워 놓았던 집에 들어가 살면서 불편한 점도 많았다. 아내와 집을 정리하고 이제는 살만해졌다. 
“처음에는 모르니까 뭐든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이전에 해보지 않아서 일의 순서도 모르고, 시기를 놓쳐 몇 시간이면 끝날 일이 2~3일 걸리기도 했다. 오류 투성이었다.”

추석이 지났는데 저 밭에 심은 고구마는 언제 캐려고 저렇게 그냥 놔뒀나 염려하는 어르신도 있었고, 고추 모종은 언제 심어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때를 가르쳐준 어르신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때를 알고 적절하게 일을 하는 삶의 기술을 그에게 알려줬다.

“모르니까 시간은 배로 들고, 힘은 힘대로 들어요. 처음에는 마음이 조급했는데 이제 조금 알게 되니 일도 조정하고, 욕심대로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느긋해졌어요. 농사꾼으로 살면서 얻은 것이지요. 작은 것도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마음도 생겼어요. 내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이제 적정한 때를 알고 요령껏 하는 지혜가 생겼어요. 일흔이 돼서야 이전과는 다른 인생 교육을 받은 셈이죠.”

어느 날 아들이 찾아와 사는 것이 행복하냐고,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떤 답을 했을까, 궁금하다. 대답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가 사는 모습을 통해 답이 구해졌다. 

지역문화유산 해설사 활동
친환경 농법을 오래 하던 이들도 포기 하고픈 유혹이 들 때가 많다. 초보 농사꾼은 겁도 없다. 도시 살았을 때 환경을 지키고, 건강을 위해서 먹거리를 챙기는 것이 전부였는데 덜컥 친환경을 선택했다.
“생태계를 생각해 보았다. 기왕에 할 것이면 좋은 것을 만들어 팔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것을 내가 먹듯이 남들에게도 좋은 것을 드리자는 마음이다.”

소출이 작으면 작은대로 사람들과 나눠먹는다. 올 해 그중 서리태 농사가 잘됐다. 누가 산다고 하면 한줌 더 얹어주고, 이웃과 관계를 맺어가는 재미가 소소하지만 살면서 느끼는 행복이다. 이런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농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학 강단에서 교육자로 살았던 그가 요즈음 청소년을 만나는 일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지역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버스타고 청양나들이 마을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했던 것이 해설사에 도움이 되고 있다. 지역유산을 돌아보며 얽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도 틈틈이 한다. 해설사 하는 것 어떠냐고 물으니 그의 삶처럼 답이 간결하다. 
“재밌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