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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배우고 상도 타고 “내 생애 최고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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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배우고 상도 타고 “내 생애 최고의 즐거움”
  • 김홍영 기자
  • 승인 2021.10.18 11:45
  • 호수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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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열 문해학습자 백일장 우수상 등…문해교사에게 감사

한글을 배운 지 2년 만에 문해학습자 조종열(70·목면 안심리) 씨가 백일장 우수상과 시화전에서 수상, 배움에의 열정과 기쁨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조종열 씨는 ㈔한국문해교육협회가 주최하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후원한 제17회 성인문해학습자 백일장 대회에서 ‘내 생애 첫 선생님’이라는 제목의 문해교육 체험수기를 공모, 우수상을 받았다. 

체험수기에는 한글을 늦은 나이에 배울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글을 앎으로써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기쁨, 글을 깨우쳐 준 문해교사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있다.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입상한 작품을 선보이는 조종열 씨.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입상한 작품을 선보이는 조종열 씨.

청양군 대치면 형산리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조 씨는 4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혼자 걷지를 못했다. 멀리 수석리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고개도 넘고, 냇물을 건너야 하는데 학교는 엄감생심이었다. 부모님도 일터에 나가고 그녀의 등하교를 도와줄 이가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집 앞에서 친구들이 학교가는 모습을 보곤 했어요. 철필통 안에 든 연필이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는 책가방을 메고 걸어서 학교가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지요.”

결혼 후에도 1남 3녀를 키우면서도 답답할 때가 많았다. 글을 못 배운 것은 사는 내내 한으로 맺혀 있었다. 그녀에게 글을 배우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가 느지막이 찾아왔다.
“문해교사가 집으로 와서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문밖을 나지지 못하니까 글을 배울 수가 없었어요. 항상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런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았어요.”

글로 내 마음을 표현, ‘행복’ 
조 씨는 표선명(63) 문해교사 방문 교육으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름도 쓰게 됐고, 올 봄 부터는 편지 등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모두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생님께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나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배움의 끈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또 이런 기회를 준 군에도 감사해요.”

일주일에 두 번씩 집을 방문하는 표선명 문해교사에게 글을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집을 방문하는 표선명 문해교사에게 글을 배우고 있다.

표 문해교사는 일주일에 두 번 조 씨 집을 방문해 글을 가르치고 있다. 정해진 교육 과정이 끝났을 때 조 씨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표 교사가 이어서 자신의 집을 방문해주길 바랐다. 표 교사는 흔쾌히 조 씨의 집을 방문, 3년 째 조 씨의 한글 공부를 봐주고 있다. 

표 교사는 “글 모르시는 분들 가르치는 것이 문해교사의 역할인데, 배우고 싶어 하는 분이 있다면 가르쳐 드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읽고 쓰는 것을 힘들어 하셨다. 점점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열정이 있으셨다. 하루 종일 공부하고 숙제도 잘 해놓으신다. 이런 모습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일주일에 한번은 자원봉사로 조 씨의 집을 방문해 지도하고 있다. 

조 씨는 표 교사의 격려로 시화전에 공모할 작품을 몇 달 동안 준비했다. 철 지난 달력 뒷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연습장이 서른 여섯 장. 밤마다 몇 달을 연습했지만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한글은 내마음 속 정원’이라는 시로 2021년 충남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입상했다.

조 씨가 글을 배우고 달라진 점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집 앞 화단에 핀 꽃들의 이름을 쓸 수도 있게 됐고, 그 꽃을 보며 느낀 점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글을 배우는 지금이 그녀에게는 생애 최고의 즐거운 시간이다. 

바람이 있다면 글을 계속해서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한글 배움을 격려하고, 컴퓨터도 사드렸단다. 앞으로 그녀는 컴퓨터 사용법도 배우고 컴퓨터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 조종열 씨가 또박또박한 글씨로 써내려간 시 ‘은행잎’. 글을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는 조종열 씨의 마음이 전해온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린다/ 먼 옛날 / 소녀 적 꿈/ 속삭임을 안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노랗게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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