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1-11-30 09:36 (화)
나의 모교 ‘장평초등학교’ 앞을 지나오면서
상태바
나의 모교 ‘장평초등학교’ 앞을 지나오면서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9.27 17:31
  • 호수 141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향인 수필 - 윤승원 수필문학인(전 대전수필문학회장·장평면 중추리 출신)

이곳을 지나는 일이 일 년에 두 번 정도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그리고 팔월 보름날. 성묫길에는 으레 거쳐 가야 하는 곳, ‘청양 장평초등학교’ 앞길.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학교명이 여전히 낯설다. 내 고향 모교 명칭인데도 왠지 낯설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장평초등학교(長坪初等學校)’가 아니라 ‘적곡국민학교(赤谷國民學校)’이다.
어느 날 송백헌 박사(1935년~2021년, 문학평론가, 전 충남대학교 교수)가 내게 전화로 물어왔다.

윤승원 수필문학인
윤승원 수필문학인

“윤 선생, 내가 대전MBC 라디오 ‘산 따라 물 따라’에 고정 출연하고 있잖우, 내일은 ‘청양 편’이 방송된다오. 윤 선생이 청양 출신이니, 몇 가지 방송 자료로 참고할 것을 좀 여쭤봅시다. 윤 선생 출신지가 청양군 ‘장평면’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옛 지명 ‘적곡면’이 ‘장평면’으로 바뀐 거요?”
아니, 송백헌 박사가 누구신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큼 박학다식(博學多識) 천재 학자요, 무불통지(無不通知) 문학평론가로 정평이 난 원로 학자 문인이 아니신가. 

송 박사가 내게 긴히 자문하실 때도 있는가 싶어 내심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게다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물으시는데, 반가움이 더욱 컸다.
“적곡면(赤谷面)이라는 명칭에는 ‘붉을 적(赤)’ 자가 들어 있어 개칭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항간에는 여성의 신체 부위(적곡=젖꼭지)와 어감이 비슷하여 바뀌었다는 설도 있으나 후자보다는 전자의 이유가 더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모교를 ‘적곡국민학교’라 칭하기 일쑤이고, ‘장평초등학교’라는 이름은 왠지 생소하여 지금도 자연스럽게 입에 잘 달라붙질 않아요. 

‘적곡’이란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저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하고 있어요. 칠갑산이 인접한 저의 고향 적곡면은 가까이에는 망월산이 있는데, 봄에는 유난히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붉은 골짜기(赤谷)’를 이루지요. 그래서 ‘적곡’이라 불리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답니다.” 

그러자 충청지역의 풍물과 역사에 대해 해박하신 송 박사는 “진달래꽃 천지인 그 고장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지명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하는 윤 선생의 설명이 참으로 그럴듯한 해석”이라면서 대전MBC ‘산 따라 물 따라’ 방송프로그램에 나가서도 내가 설명한 바를 언급하였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자, 내 고향 동창생 중에는 이런 제안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적곡’이란 지명이 오랫동안 써 와서 그런지 ‘장평’이란 지명보다 더 정겹게 여겨지니, 친구가 ‘옛 지명 되찾기 청원’이라도 한번 내 보시게.”

그러나 나는 어느 기관에도 청원을 내진 않았다. 지명이 바뀐 지 어언 34년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면 장평초등학교 졸업생만도 34회째 배출된 학교명을 이제 와 다시 바꾼다면 그 혼란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지명이 여전히 입에 착 달라붙는 지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옛 지명을 고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옛 학교명에 대한 향수가 어려 있어 명절 때마다 고향에 다녀오면서 가족과 함께 ‘지명 개칭의 역사’를 화젯거리로 삼을 뿐이다.
※ [참고문헌]
장평초등학교 60년사. 청양군지. 청양군 발행 ‘지명과 전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승원 2021-09-28 00:31:26
* 필자의 말 : 저의 졸고 수필을 고향의 청양신문 귀한 지면에 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이 지면에서는 생략됐기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댓글로 덧붙입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