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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품고 있는 푸른 기운 – 산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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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품고 있는 푸른 기운 – 산신당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8.23 13:22
  • 호수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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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화성 광평리 산제당은 광평리 당산에 있습니다. 3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우뚝 선 세 조각의 큰 바위가 있고, 그 앞이 제단입니다. 신당 없는 자연물 앞에서 산신제를 지냅니다. 1904년부터 지낸 산신제는 마을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제단에는 당주 내외와 축관 3명만 올라 제를 지내고, 소지를 태웁니다. 제물은 시루떡과 당산 입구의 샘에서 뜬 청수 한 그릇입니다. 산신제를 지내는 당일 하루만큼은 마을주민 모두 술과 피를 보지 않는답니다. 
 

산신도
산신도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예부터 산을 우러러 공경하였습니다. 환웅, 단군 등 우리나라 왕조의 시작이 산과 관련됐듯이 산신을 많이 믿어 왔으며, 산신에 대한 경의는 어느 시대나 계속됐습니다. ‘신인합일사상’에 근거하여, 산을 매개체로 인간 세상의 일을 하늘에 알리면서, 신과 소통하여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지요. 신라 때는 삼신산(금강·지리·한라산)과 오악산(토함·계룡·태백·북악·지리산)에, 고려 때는 사악산(지리·삼각·송악·비백산)에, 조선 시대에서는 금강·묘향·백두·지리·삼각산을 숭배했습니다. 전국 5백여 고을에서 주산이나 진산을 정하여 정기적인 산신제를 올리며 산악신앙의 맥을 이었습니다. 지역민의 평화와 안녕, 국민화합과 경제성장을 빌었습니다. 고대사회의 제천의식에 뿌리를 두고 원시적 종교에서 발달한 무속 신앙적인 민간신앙의 표본이 산신제입니다. 

옛 어르신들은 집주인이 있듯이 산에도 주인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산신·산신할아버지·산신령님·산왕·산왕산신·산군·산령·산귀신 등으로 부르는 산신령이었습니다. 넓게는 국가, 좁게는 부락을 수호하는 신으로 여깁니다.
산 밑에 있는 마을에서는 산신을 수호신으로 모시며 산제, 산신제를 지냅니다. 보통 음력 정월 보름날 0시를 기해서 지내지요. 마을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제관과 화주, 또는 산신계의 계장만 참여합니다. 엄격하게 금기를 지키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지요. 

화성면 광평리 산제당
화성면 광평리 산제당

산신제를 지내기 전에 제관을 선정합니다. 술을 따라 올리는 헌관과 축문을 읽는 축관, 제사의 진행을 돕는 집사자를 생기복덕(그날의 운수를 알아보는 방법)에 맞는 사람 중 지난 1년 동안 우환이 없고 집안에 임산부가 없으며, 덕망 있는 자로 선정합니다. 선정된 제관들은 선출된 날부터 제 당일까지 몸가짐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매일 새벽 산신당에 딸린 샘물로 목욕을 하고, 부인과 잠자리를 하지 않으며, 생선과 고기를 금하고, 부정한 사람과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몸조심을 하고, 대문 앞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늘여 잡인의 접근을 막습니다.  

산신도에는 호랑이가 있고, 백발노인의 모습을 한 신선이 있으며, 선녀, 동자, 소나무가 있습니다. 흰 수염의 산신령은 호랑이 등 위에 앉았거나 기대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영험력을 지닌 능력자로 변화와 개혁, 기술, 생산성을 상징합니다. 음양오행의 목성에 해당하는 소나무는 해가 뜨는 동방을 상징하며 시작과 솟음을 뜻합니다. 산신령의 손에 쥔 죽순이나 사슴뿔은 남성을 상징하여, 자손 점지를 암시하는 동시에 권력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뜻을 담고 그려진 신앙의 대상 종교화지만, 대부분의 산신당에는 산신도가 없습니다. 산신당 옆의 늘 푸른 소나무를 신목으로 모시지요. 
 

비봉 중묵리 산제당
비봉 중묵리 산제당

비봉면 중묵리, 마을 뒷산 까치봉산제당에서도 200여 년 전부터 정월 보름날 산신제를 지내 왔습니다. 이응노화백이 그려준 산신도로 유명했던 곳이지만, 원래의 산신도는 훼손이 되어 지금은 다른 산신도가 걸려있습니다. 제물로는 밥과 술, 생돼지앞다리를 통째로 올립니다. 제를 올린 후 보름날 아침을 마을주민 모두 회관에 모여 먹으며, 잡은 돼지는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줍니다. 

대치면 장곡리 아니골산제당
대치면 장곡리 아니골산제당

대치면 장곡리 아니골산제당에서도 산신제를 올립니다. 산신제의 제물로는 내장을 뺀 생 통돼지를 올립니다. 제가 끝나면 생돼지고기를 마을주민들에게 팔아 마을 기금으로 모읍니다. 본래 제의에는 남자만 참여하고 음복에만 남녀 모두 참여하였는데, 여자이장님이 제관으로 참여하여 제를 지냈습니다.(마을의 특징상 이장이 제관을 맡는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제관은 반드시 남자여야 한다는 틀이 깨진 것이지요. 하긴, 여자라기보다 이장으로 제를 진행한 것이지만요. 
 

대치면 상갑리 산제당
대치면 상갑리 산제당

상갑리 산제당은 367년 전에 지어졌답니다.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근사한 산신당에는 호두나무로 만든 위패가 있습니다. 산신님과 칠성님의 위패입니다. 옛날에는 제물로 소를 잡아 통째로 올렸으나, 50년 전부터 소머리만 올립니다. 상갑리산신당에는 전설도 있습니다. 소를 잡을 때는 소 잡는 사람에게 품삯으로 소의 내장을 주었는데, 어느 해인가 소를 잡아 주고 간 사람이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되었답니다. 소내장 속에 살점을 숨겨 가지고 갔기 때문이었죠. 그 살을 가져와 산제당에 모시고 제를 올렸더니 말문이 터졌다는 얘기로, 산신령의 위엄을 보여줍니다. 

운곡면 위라리 산제당
운곡면 위라리 산제당

산행이 지쳤던 계절도 슬슬 물러갑니다. 초록도 변해갑니다.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보일 듯 말 듯이 소나무 사이나, 참나무에 살그머니 기댄 집 아닌 집이 있습니다. 머리가 쭈뼛하거나,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숨듯 한 산제당에서 은근하게 퍼져나오는 성스런 기운이었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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