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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지 않는 나무 – 비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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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지 않는 나무 – 비자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7.31 01:42
  • 호수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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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 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오세영 「나무처럼」

늘 푸른 바늘잎 큰키나무인 비자나무는 남부지방 바닷가의 산 80~100미터 고지에서 잘 자랍니다. 제주도나 남해안 섬지방에서 자라며, 전라도의 백양산과 내장산이 분포 한계선입니다. 기름진 땅을 좋아하고 메마른 땅을 싫어하며 생장이 느립니다. 암, 수 나무가 다른 비자나무의 잎은 납작하고 끝이 침처럼 날카롭습니다. 딱딱하고 잘 찌르며, 6~7년이 돼야 떨어집니다. 한자의 ‘非(비)’자 모양으로 달렸습니다. 잎이 달린 모양을 보고 ‘비자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그래서 비목입니다. 백 년이 지나야 지름이 한 뼘쯤 되는 느긋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4월에 핀 꽃은 풋열매를 맺지만, 열매는 이듬해 가을에 자줏빛이 도는 갈색으로 익습니다. 긴 땅콩처럼 생긴 단단한 씨는 떫으면서도 고소해 술안주 등으로 먹기도 하지만, 독성이 있어 많이 먹게 되면 배탈이 납니다. 기름을 짜기도 하며, 독성분은 위가 상하지 않게 살충하는 기능이 있어 옛날에는 구충제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비자나무는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나무로, 뿌리껍질과 꽃까지 한방이나 민간요법에 많이 사용되어 동양의학서적에 나오는 이름도 많습니다. 비실, 옥선화, 적과, 야삼, 향비 등 나무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이름 같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비자낭, 비조남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목재는 재질이 치밀하고 향기로우며, 광채가 비단같이 아름다워 ‘문목’이라는 애칭도 있습니다. 고급 가구나 바둑판을 만들며, 부드럽고 습기에도 잘 견뎌 옛날에는 배를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을 하였답니다.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비자반’이라 합니다. 비자나무 특유의 복원력을 높이 쳐, 금이 간 흔적이 있는 것이 귀하게 쓰인답니다. 검고 흰 돌이 비자나무판에 내려앉는 상큼한 소리처럼, 맑고 서늘한 향도 퐁퐁 올라오겠지요.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는 비자나무숲, 천년의 숲 ‘비자림’이 있습니다. 집단 자생한 28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옛날 무제(巫祭)에 쓰이던 비자 종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자라 숲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예전에는 비자열매의 쓰임과 목재로 인해 제주도의 귀중한 경제림이었으나, 지금은 휴양림으로의 가치가 훨씬 큽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게 높고 넓게 자란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산소와 피톤치드 때문입니다. 비자나무에게는 피톤치드 성분 중 항균물질인 테르판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현무암 덩어리 사이에다 뿌리를 내리고, 길고 곧은 가지는 비스듬히 뻗어 위쪽으로 타원형 모양을 만듭니다. 저마다 곧게 자라면서도 뒤틀림이 많습니다. 비자나무 숲에서 품어나오는 푸른 기운은 신비롭고 비밀스럽습니다.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고, 덩굴식물과 같이 살아갑니다. 콩짜개덩굴, 차걸이난, 줄사철나무, 혹난초 등을 줄기에 붙여 올려 하늘을 보여줍니다. 나무에서 나무가 자라는, 나무가 나무를 키우는 듯합니다. 섬휘파람새의 안식처가 돼 줍니다. 

높은 산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매우 키가 큰 나무, 고려시대부터 숨 쉬어온 비자나무입니다. 어느 시인의 글처럼 잎새조차 변하지 않음은 태곳적 고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자나무의 매끈하고 반짝이는 푸른 잎에 손을 댑니다. 팔~구백 년 한자리를 지키며 살아와 세상을 다 품을 듯한 넉넉한 몸체에 비해 엄청 거칠고 쌀쌀합니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비자나무만의 생존전략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을 걸어봅니다. 바람도 없는데 나무는 보일 듯 말 듯 잎을 출렁입니다. 

나무처럼 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놀이터가 내려 보이는 2층 집에서 살았습니다. 놀이터에는 줄기가 굵은 플라타너스와 단풍나무 은행나무와 백목련 나무가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나무 냄새가 밀물처럼 들어왔습니다. 때가 되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드는, 나무로 인해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나무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힘든 일인지, 나무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시절의 꿈이었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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