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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백성의 집 - 석탑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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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백성의 집 - 석탑 ②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6.21 15:28
  • 호수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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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우리나라 석탑의 처음 양식이며 가장 오래된 익산 미륵사탑은 푸른 초원을 한층 더 평화롭게 합니다. 서동왕자인 백제의 무왕이 창건했다는 미륵사는 고려 시대에 성황을 이루었으나 17세기경에 폐사가 되고, 그 후에 목조건축이 모두 불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반 이상 무너진 석탑만 남았습니다. 미륵사 발굴 조사에 의하면, 미륵사는 삼원의 가람(중원, 많은 승려가 한 장소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장소)배치로, 목탑을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에 탑을 세운 것으로 알려집니다. 동탑과 서탑의 구조가 똑같은데도 동탑은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서탑은 6층까지 일부만 남은 것입니다. 

미륵사탑
미륵사탑

미륵사탑은 석탑이지만 목조건축의 많은 양식이 반영되었습니다. 큰 규모로 압도하는 묵직함, 배흘림기둥, 층마다 모서리의 기둥이 다른 기둥보다 살짝 높게 된 형태, 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는 탑의 높이와 폭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등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답니다.
장엄하고 무게가 있는 탑은 백제인들의 큰마음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또한, 거의 직선으로 반듯한 지붕돌을 꼭짓점에 와서 살포시 올린 모습은 백제인들의 은근하면서도 우아한 멋스러움도 느껴집니다. 

‘어떻게 저런 선맛과 형태미가 가능했을까? 추녀를 반전시키되 그냥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두께를 주면서 반전시킨 점에 있었다. 위로 올라가려는 동세가 위에서 누르는 무게에 눌려 긴장감 있고 안정감 있는 가운데 가벼운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는 곱고 멋지고 귀여운 미적 가치로 전환된 것이다.(유홍준)’ 초록빛 연못에 탑이 비칩니다. 덩치가 커서 더 슬픈 탑의 무너진 위층에 연둣빛 개구리밥이 화관을 만들어줍니다.      

도림사지 삼층석탑
도림사지 삼층석탑

장평면 도림리, 칠갑산 초입에 도림사지가 있습니다. 우람한 층층나무 사이로 보이는 석탑은 그림 같습니다. 적막 속의 적막, 숨소리도, 풀을 밟는 소리도, 2층 기단 위의 3층 석탑이 내는 소리도 적막입니다. 상단의 면석에는 모퉁이기둥(우주)과 버팀기둥(탱주)이 뚜렷하게 조각돼 있으며, 기단의 상·하 뚜껑돌(갑석)은 4조각입니다. 상륜부에는 작은 탑신 모양의 받침 위에 사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복발과 바퀴처럼 생긴 보륜, 구슬 모양의 보주로 장식돼 있습니다. 저녁 햇살에 탑의 색깔도 고즈넉이 변해갑니다. 

층층나무의 흰꽃이 피는 소리와 모습을 내려보며 삼층석탑은 옛 추억에 잠기겠지요. 나무 사이로 걸어오던 사람들의 모습과 소리를 지긋하게 보며 들었겠지요. 도림사 대웅전의 처마 끝에 걸렸을 풍경의 모양과 소리를 생각하고, 석탑을 돌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겠지요. 그러다 생각이 안 나면 옆에 비스듬히 서 있는 석등석에게 말을 걸겠지요. 소박한 석탑은, 달밤이면 대나무 사운대는 소리를 들으며 산새들과 밤을 함께 보내겠지요. 

서정리 구층석탑

보물로 지정된 정산면 서정리구층석탑은 신라 시대 양식에 따른 고려 시대 석탑입니다. 보통의 3·5·7층에서 벗어나 9층으로 탑을 세웠습니다. 아래 기단의 사면에는 계봉사석탑처럼 꽃무늬의 문양이 새겨 있습니다. 탑의 몸돌에도 모퉁이 기둥이 한결같이 조각돼 있습니다. 1층의 지붕돌은 5단이며, 2층부터는 3단으로 줄었습니다. 지붕돌의 꼭짓점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 자국이 있습니다. 9층까지의 사각에 달려 풍경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탑입니다. 멀리 떨어져서 보니 상륜부가 없습니다. 상륜부는 없어도 약 6미터의 높이입니다.
 
탑돌 한 조각 한 조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정으로 쪼았을까 생각합니다. 돌 하나가 지닌 성질과 모양을 찾아 공들여 이어 맞추고 올려서 탑이 되었습니다. 백련향을 맡으며 개구리소리 밤새 들어줄 서정리구층석탑은, 달 뜨는 밤이면 달빛을 온몸에 휘감겠지요. 빛과 어둠 속에서 탑은 더욱 길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겠지요. 
 
“집주인을 생각합니다. ‘탑’은 부처의 무덤이니, ‘부처의 집’입니다. 미륵사탑이니 ‘미륵의 집’입니다. 56억7000만 년 뒤에 오실 ‘미래불’의 집이니, ‘시간의 집’입니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층층이 쌓인 ‘사랑의 집’이며, 신동엽의 시를 따르자면 ‘백성의 집’입니다.” - 윤제림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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