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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여자 -물푸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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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여자 -물푸레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6.07 13:29
  • 호수 13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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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오규원 「한 잎의 여자」 부분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고 질겨 농기구재료로 많이 쓰였으며, 낭창낭창하고 질긴 나뭇가지는 옛날 서당에서 회초리로 사용하였습니다. 학동들은 아버지가 훈장선생님께 물푸레나무 회초리를 한아름 선물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습니다. 조선 후기 죄인의 볼기와 허벅다리를 치는 곤장 역시 물푸레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탄력성이 뛰어난 나무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었지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푸레나무라 하면 금방 야구방망이를 떠올릴 겁니다. 우리나라 대표 홈런 타자 이승엽선수도 물푸레나무로 만든 야구방망이를 즐겨 사용했답니다. 

나이테도 분명하고 아름다워 가구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승려가 입는 옷을 염색하였으며, 일본의 아이누족들은 문신을 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답니다. 옛날 눈이 많은 고장에서는 설피(미끄럼 방지로 신바닥에 덧대어 신는 물건)로, 배로, 수레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스키와 방망이 등의 재료로도 이용됩니다. 나무의 사용이 많아서인지, 물푸레나무는 오래된 나무가 별로 없답니다.
 

‘어린이 새끼손가락보다도 가는 물푸레나무는 훈장 고 선생님의 손에 들려 사랑의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 농기구의 자루가 되어 풍년을 짓기도 했다. ‘화열이’가 호랑이 잡을 때 쓴 서릿발 같은 창자루도 물푸레나무였고 어머님이 땀으로 끌던 발구도 역시 그 나무였다.’- 황금찬 시인의 물푸레나무는 덕이 많고 어진 나무로 굳센 듯 휘어집니다. 휘어져도 꺾이지 않고 다시 서는 어느 충신과 효도의 정신입니다. 성현의 사랑으로 성현목입니다.
  
‘너의 이파리는 푸르다 피가 푸르기 때문이다 같은 별의 물을 마시며 같은 햇빛 아래 사는데 네 몸은 푸르니~’ 언젠가는 서로 몸을 바꿀 날이 있을 것이므로, 그것이 즐거워서 이상국시인은 물푸레나무에게 편지도 씁니다. ‘한여름 내내 그 나무에서는 물 긷는 소리가 너무 환했다’고 물푸레나무 곁으로 다가간 김명인시인도 있습니다. 

푸른 잎사귀를 올려봅니다. 넓게 펼친 가지마다 규칙적으로 마주난 잎사귀는 여느 나뭇잎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한 시인에 의해 온 우주를 품에 안은 여자 같은 나뭇잎이 된 물푸레나무는 삽상한 푸른 잎사귀 한 장 한 장에 순결과 자유가, 물 긷는 소리와 푸른 피가, 온 눈길과 온 마음이 담겼습니다. 

부러진 가지를 주었습니다. 꽃 진 자리에 길고 가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하얀 물통에 가지와 잎을 푹 담궜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초록물로 변해 있겠지. 밤새 초록드레스를 입은 요정이 되어 이 나무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물통을 확인하니 아니 이럴수가, 밤새 시들했던 잎이 생생해지기만 했지 물빛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듯, 도마 위에 물푸레나무 작은 잎을 올려놓습니다. 콩콩 잎을 찧습니다. 금방 도마에 초록물 무늬가 생겼습니다.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 하여 수청목, 청피목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심목, 진피수, 껍질에 흰점이 얼룩져 있어 백심목이라고도 합니다. 흰 반점은 줄기가 매끄러운 어린나무일 때 껍질에 띄엄띄엄 잿빛을 띠며 나타납니다. 줄기가 굵어지면서 껍질은 세로로 갈라지다가, 흑갈색의 깊은 골을 만듭니다. 
반짝이고 미끈한 초록잎의 뒷면은 회녹색을 띠며, 뒷면의 주맥에는 솜털이 있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물푸레나무 초록잎이 출렁입니다. 길고 가는 열매 사이로 잎사귀들이 새로운 꽃을 만듭니다. 흰 빛깔의 잎맥으로 무늬 진 아담한 잎사귀들이 우루루 젖혀지고 펼쳐지기를 반복합니다. 물푸레, 물푸레, 푸른물이 뚝뚝 떨어지고, 몸이 푸르러질듯 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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