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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쌈 싸 먹고 다 잊어라 - 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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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쌈 싸 먹고 다 잊어라 - 상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5.22 15:31
  • 호수 13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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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잎을 땁니다. 엄지와 검지로 잡고 위에서 아래로 약간의 힘을 주어 툭 내리면 똑 따집니다. 맨 아랫부분부터 한 장씩, 빙 돌려가며 땁니다. 그래야 위에 있는 작은 속잎들이 점점 커지게 된답니다. 손바닥 반만한 잎에서 푸르고 싱싱한 향이 납니다. 어쩌면 잎이 아니라 줄기에서 나는 듯도 합니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가꾸기도 쉽고 땅도 가리지 않지만, 물빠짐이 잘 되는 곳을 좋아합니다. 유럽과 서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세계 여러 곳에서 채소로 많이 재배합니다. 기원전 4500년경의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긴 잎 모양이 그려진 작물로 기록돼 있으며, 그리스‧로마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채소로 재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에 이미 즐겨 심었답니다. 중국 문헌에는 고려 것의 질이 우수하다는 기록이 있었다지요.
 

봄과 가을이 재배 적기입니다. 종류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모양을 보이지만, 맛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씹히는 정도나 잎의 크기, 색상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높이는 90~120센티미터이며, 전체에 털이 없습니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타원모양입니다.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 ‘날로 먹을 수 있다’는 어원의 ‘상추’입니다. 적치마·청치마의 엽상추, 잎이 배추와 비슷한 배추상추, 샐러드용으로 미군을 위한 군납용으로 재배된 결구상추, 줄기상추 등의 종류가 있습니다.  

3월 초에 종묘상을 하는 친구집에 들렀다가 어린 상추묘 6포기를 받았습니다. ‘손이 많이 안 가고 병충해가 거의 없으니, 아파트 베란다에 놓고 가끔 물만 주면 된다’는 친구들의 말에 걱정은 됐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돼 반반의 마음으로 못이기는 척 은근하게 가져왔습니다. 5센티미터 정도로 자란 키에 적보라의 떡잎이 몇 장 나와 있었습니다. 뒤꼍에서 먼지가 수북한 화분을 꺼냈습니다. 친구로부터 상토와 흙도 얻어 뒤스럭을 떨며 세 포기, 두 포기, 한 포기씩 3개의 화분에 나누어 심었습니다. 음, 너희들이 자라서 싱싱한 상추를 실컷 먹게 해 준다고? 너무 잘 자라 상추가 넘치면 어쩌지? 세 포기만 가져올 것을 너무 많이 가져왔나? 옆집 언니도 주고 누구누구도 주고, 생각만 해도 벌써 상추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상추가 생각나 들여다보니 어린잎들이 시들시들합니다. 깜짝 놀라 정신없이 물을 주고, 일요일마다 물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안 자라는겨? 같이 상추묘를 심은 친구에게 상추 잘 크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농장의 하우스에 심었다며, 밤에 추워서 잘 안 크는 것 같다고 합니다. 별것도 아닌 것이 영 신경을 쓰게 합니다. 이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괜히 가져왔다는 후회도 잠깐 들었습니다. ‘별 신경 안 써도 잘 자란다’는 말에 갔다 심어만 놓으면 금방 쑥쑥 자라 상추를 따 먹을 줄 알았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 그럭저럭 70일 만에 상추잎을 따게 되었습니다. 이런, 맨 밑의 떡잎은 이미 쇠어 버렸습니다. 잎이라고 너무 작아 단풍잎 같지만, 덜 익은 풋내가 날 것 같지만 그래도 처음이니 몇 장이라도 먹어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추묘와 상토와 흙을 준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요. 상추를 들여다봅니다. 집 앞 모퉁이 텃밭에 여름이면 자잘한 꽃을 단 거무튀튀한 키 큰 채소가 있었습니다. 곧은줄기에 가지를 쭉쭉 둥그렇게 펼쳤습니다. 노란점을 찍은 듯이 피는 상추꽃이었는데, 얘들도 꽃을 잘 피울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점심에 상추쌈을 싸 먹고 나면 눈꺼풀에 아교를 붙인 것처럼 졸릴 때가 많습니다. 상추 줄기에서 나오는 우윳빛 액즙에 랄투카리움이라는 성분이 있어 스트레스 및 불면증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돼지고기와 특히 궁합이 좋은 상추는 사람들의 몸에 좋은 영양소를 많이 지니고 있어 복을 싸 먹는다고 하지만, 상추의 꽃말은 ‘나를 헤치지 마세요’입니다. 아무리 꽃말이라 할지라도 주춤해집니다. 대신 감사하게는 먹겠지만, 어찌 너를 헤치지 않고 복을 싸 먹는단 말인가!

찻집에 가니, 집에서 기른 상추라며 필요하면 먹을만큼 가져가라는 안내 문구가 있습니다. 텃밭에 6포기를 심었는데, 잘 자라서 나눠 먹으려 한다고요. 6포기요? 손바닥보다 큰 잎의 연두색 상추가 수북합니다. 아파트베란다와 텃밭의 차이가 아니라, 물을 주고 들여다보기를 얼마나 했느냐의 차이겠지요. 잘 자라지 않는다고 은근히 구박 준 우리 집 상추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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