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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드나무가 있는 마을 -강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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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드나무가 있는 마을 -강정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5.10 11:37
  • 호수 13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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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비봉면 소재지에서 화성면 쪽으로 꺾으면 붉은 방앗간이 있습니다. 바랜 듯한 붉은 지붕에 석양이 비치면 더 근사합니다. 방앗간 앞의 조그만 다리를 건너 강정리 마을로 들어갑니다. 비봉면에서 가장 먼저 3·1만세 운동을 불렀던 마을이랍니다. 

까찰미 마을은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논 가운데 있는 섬 같은 마을, 섬입니다. ‘가칠미’(갯산 아래 일곱 집이 있는 마을 모습이 멀리서 보면 아름다워 붙여진 명칭-청양군지)라 표기는 하지만, 그곳 마을 어르신들은 입에 착 달라붙는 까찰미라 부릅니다. 마을이 둘러싼 뒷산인 까찰미산의 연둣빛 어린나무와 산 밑에 포진한 몇 채의 집들은, 앞에서도 옆에서도 위에서도 정말 보기 좋습니다.
 

안골, 태봉산자락에 옻샘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땀띠가 날 때면 옻샘에 가서 3일만 목욕하면 깨끗이 나았다고 강정리에서 사는 박학신주민은 말합니다. 자색 꽃잎의 목련이 옻샘을 보호하듯 꽃을 피웠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품은 형국인 태봉산은 왕들의 후손이 태어나면 탯줄을 묻었다는 명산으로, 계곡에 용솟음치듯 솟아오르는 샘이 옻샘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이 옻샘 물은 사람의 속병이나 피부병, 특히 옻 올린 사람에게 특효가 있어 예전에는 많은 사람이 왕래했다’는 안내문을 읽습니다. 
강정리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마을, 법공산 골짜기에 있는 곳이라서 갈망골입니다. 마을 입구의 저수지에는 오래된 왕버드나무들이 있어 물빛을 더 푸르게 합니다. 바람이 불자 물의 표면이 떨립니다. 기묘하게 휘어지고 꺾이면서도 용트림하듯 신비로운 나무, 이백 살이 훨씬 넘은 나무도 저수지 물결처럼 떨고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물과 친해 주로 물가에서 자랍니다. 가지가 부드러워 부들나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줄기와 잎과 가지가 용처럼 뒤틀리며 자라는 용버들, 버들피리를 부는 갯버들, 머리 풀어 헤친 것 같은 능수버들, 수양버들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가지가 하늘거리며 땅으로 처지는 능수·수양버들과는 다르게, 왕버들은 하늘을 향해 우뚝 서서 자라며 굵은 줄기 또한 웅장한 멋을 냅니다. 오래된 나무의 줄기 일부분이 썩어 구멍이 생기면, 그 구멍에서 종종 불빛이 비친답니다. 버드나무 자체에서 생기는 ‘인’ 성분으로, 비 오는 밤이면 불빛이 더 환하게 비쳐 옛 어르신들은 도깨비불이라 여겼습니다. 그로 인해 왕버드나무는 도깨비버드나무라는 ‘귀류’라 부르기도 합니다. 
 

흐르는 강물이 삐뚤빼뚤한 감정을 풀어준다면, 적막한 저수지는 화나는 마음을 서서히 가라앉혀줍니다. 가끔 왕버드나무 연둣잎에서 날것이 소리를 내거나,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지만 금방 고요해집니다. 파문 사이로 저수지에 푹 잠긴 뻐꾹산(법공산)이 보입니다. 갈망골저수지는 2008년, 행정자치부·국가균형발전위원회·서울신문사에서 개최한 ‘제3회 살기좋은지역자원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저수지 안쪽, 마을 속으로 가다 보면 효자 박영철을 기리는 정려문이 있습니다. 넓적한 마당에 냉이꽃이 만발하였습니다. 10층 돌계단을 사이에 두고 각각 다른 색깔의 영산홍도 활짝 폈습니다. 지극한 효행과 깊은 우애와 신의가 있어 칭찬이 높았던 박영철은 135년 전 29살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 후에 조정으로부터 ‘조봉대부동몽교관’이란 관직을 받았답니다. 

할머니 혼자 밭에서 풀을 뽑고 계십니다. “뭐긴 뭐여 도라지지. 아, 뭐 땜시 그러고 댕긴댜? 그 미티 미나리나 뜯어가” 네? 네. 마치 어제도 그제도 만난 것 같은 말씨입니다. 자라서 보랏빛과 흰색의 도라지꽃을 피우는, 한 뼘쯤 자란 어린 도라지를 손바닥으로 훑어 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에서 바람 쐬러 왔다는 한 가족 세 식구가 웅덩이진 미나리밭에 들어가 있습니다. 푸르고 싱싱한 미나리향이 훅 올라옵니다. 
 
저수지 뚝방 길에 몇 대의 솟대가 있습니다. 비뚤어지고 굽어진 솟대 위로 뭉게구름이 걸쳤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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