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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편이의 하얀 봄 - 귀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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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편이의 하얀 봄 - 귀룽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4.26 11:06
  • 호수 13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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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상갑리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청양읍과 금정리를 거쳐 쇠편이로 왔습니다. 구치리를 통해 작천리로, 금강으로 흐릅니다. 물이 흐르는 지천변도 봄빛으로 물이 올랐습니다. 온직리 쇠편이길, 중국인 ‘시’씨가 많이 살아서, 서쪽을 향해서, 솥뿌리(솥공장)가 있어서 쇠편이란 지명이 지어졌답니다. 

잠수교에 서서 위로 아래로 지천과 연두색깔의 낮은 산을 봅니다. 물 표면 위로 방울방울 거품도 있습니다. 쇠편이를 흐르는 지천 위로 푸른 잎과 하얀 꽃송이가 반영됩니다. 귀룽나무와 꽃입니다. 귀룽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는 소리를 엊그제 듣고는 설마 했었습니다. 보통 5월에 꽃을 피우는 귀룽나무이기 때문이었지요.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아까시나무가 꽃을 피운 것 같은 모양입니다.  
 

초봄, 3월의 꽃은 영춘화나 생강나무처럼 주로 노란색입니다. 많은 나무가 꽃을 피우는 4월의 봄에는 벚꽃이나 진달래처럼 분홍색이 주를 이룹니다. 5월은 여러 색깔의 꽃이 있지만, 조팝나무나 이팝나무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벚꽃이 지난해보다 일찍 피고 지더니, 5월의 꽃도 성큼 다가왔습니다. 하긴, 이미 훨씬 전에 우성산에서 문박산 가는 길목에 조팝나무가 활짝 펴있었습니다. 우리가 계절을 온도의 변화로 파악하듯이, 나무 역시 빛과 온도를 느끼고 이용하며 생장합니다. 주어진 자연환경에 자신을 맞추고 변화시키기 때문이지요.

3월, 산속에서 가장 먼저 연둣빛 새잎을 내는 귀룽나무는 중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큰 키의 낙엽활엽수입니다. 봄 숲에 초록 기운을 불어넣으며, 옛날 농부들에게는 농사철이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깊은 산골짜기나 비탈, 계곡이나 하천가 등 습한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회갈색 줄기 껍질이 거북이 등 같고, 줄기와 가지가 용트림을 하는 것 같아 구룡나무라 불리다가 귀룽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아래로 축축 늘어져 뭉쳐 피는 흰 꽃이 뭉게구름 같아서 구름나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열매를 새들이 좋아하여 유러피안버드체리라 부르기도 합니다. 
 
귀룽나무는 새로 나오는 햇가지의 잎 달린 자리에 꽃을 피웁니다.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포도송이 모양으로 꽃이 핍니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5장의 꽃잎은 각각 사이가 벌어져 있습니다. 암술을 둘러싼 여러 개의 수술은 꽃받침에서 나온 듯 보이며, 수술대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휘어졌습니다. 
활짝 핀 꽃 가지가 바람에 출렁입니다. 눈부십니다. 향기도 그윽합니다. 향기만큼이나 꿀도 많습니다. 벌들의 날갯짓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많은 벌이 꿀을 찾아 모여듭니다. 꽃이 지면 둥근 열매가 맺히고 검게 물듭니다. 
잘 익은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발아 후 왕성하게 자라지만, 씨앗으로 자란 어린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최소한 5미터 이상은 자라야 꽃을 피우지요. 옛날에는 열매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설사를 멈추게 하고 소화력이 좋아, 열매를 가을에 따서 햇빛에 말린 후 민간요법으로 사용하였답니다. 

어린 가지를 꺾으면 고무 타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벌레들이 이 냄새를 싫어하는 것을 안 옛사람들은 파리를 쫓으려 집안에 심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에 어린 가지를 꺾어 넣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가지를 꺾어 벌통 주변에서 흔들면 벌들이 순해져 벌통 관리에도 수월하답니다. 추위에 강하고 생장 속도가 빨라 조경수나 특용수로 많이 이용합니다. 
잔가지와 작은꽃자루와 잎 뒷면에 털이 있고 없고에 따라, 털의 색깔에 따라 흰털귀룽, 서울귀룽, 털귀룽, 차빛귀룽, 녹털귀룽 등의 종류가 있습니다. 
 
숨 한 번 들이쉬면 라일락 향기가, 또 한 번 들이쉬면 찔레꽃 향기가 납니다. 아까시나무꽃 향기도 납니다. 봄나무 중에는 단연코 귀룽나무, 귀룽나무 꽃송이 밑에서 숨을 크게 쉽니다. 참 좋습니다.  

‘우리는 모두 숲에 빚진 자들-쓸모도 가치도 없어 보이지만, 지난여름 찬란한 숲을 이뤘고 우리의 생명을 지속하게 해준 고마운 숲의 전사들을 전시하는 ‘숲, 가게’. 낙엽 200그램 한 봉지 3600만원. 구성성분: 새잎 돋을 때의 기쁨 20그램, 무성한 지난여름의 추억 15그램, 가을날 화려한 색의 변신 35그램, 초겨울 낙하와 아름다운 마무리 30그램, 지친 나를 위로해준 마음 50그램,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 50그램.’-조경가 박승진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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