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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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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3.22 14:54
  • 호수 1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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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꿈꾸듯이 바라보시오! -영춘화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러냐/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조명암 노래 글, 이미자 노래 「낙화유수」 부분

봄을 대표하는 춘분날이 지났습니다. 쌀쌀했던 땅의 감촉이 한결 부드럽습니다. 꽃샘바람이 겨우내 잠자던 나무를 깨웠습니다. 파종하며 농사일도 시작됐습니다.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노랗고 하얗게, 분홍빛으로 꽃망울이 맺혔습니다. 봄꽃이 만발합니다. 세상을 환하게 바꿔놓고 있는 봄입니다.

우성산 길이 노랑으로 변했습니다. 축축 뻗은 푸른 가지에 노랑꽃이 활짝 활짝 폈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꽃 영춘화입니다. 매화와 같은 시기에 꽃망울을 터트리며 노란색의 꽃을 계속 피워 황매라 부르기도 합니다. 밑으로 길게 늘어진 가지에 노란 꽃이 피어서 금요대, 금매라고 합니다. 소황화, 청명화, 봄맞이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음력 12월에도 피어나는 꽃이 매화와 비슷하여 납매라 합니다. 납(臘)은 섣달, 음력 12월을 뜻하기 때문이지요. 중국 북부가 원산지라서 중국개나리라고도 합니다.   
   

양지에서만 꽃을 피우는 영춘화는 개나리나 산수유보다 더 빨리 꽃을 피우다 보니, ‘영춘일화인래백화개’라고 합니다. 모든 꽃에게 ‘이제 꽃을 피워도 괜찮다’라고 알리는 꽃이지요. 봄을 알리기도 하지만, 봄을 맞이하는 꽃, 봄을 환영하는 꽃이랍니다.
   
초록색 사각기둥 모양의 가지는 약하지만 깁니다. 아치 모양이나 능선처럼 뻗어 내리는 가지는 많이 갈라지며 옆으로 퍼집니다. 가지의 마디마다 꽃은 마주 달려 핍니다. 꽃은 꽃잎보다 밑동이 긴 통꽃입니다. 꽃에는 2개의 수술이 있지만, 한 개의 수술만 보입니다. 통꽃의 밑동, 꽃잎이 갈라지는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수술은 동그란 방울을 단 작은 장구채 모양입니다. 톡톡 장구채 술로 꽃벽을 두드리기라도 하면 폴폴 향기가 나올 듯하지만, 영춘화는 향기가 없습니다. 대신, 향기만큼이나 짙고 깊고 밝은 노랑을 지녔습니다. 꽃 진 자리에 날개 모양의 열매가 맺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답니다. 

꽃처럼 잎도 마디마디, 뿌리도 마디마디에서 생깁니다. 마디를 잘라 꺾꽂이를 하거나 휘묻이로 번식을 시킵니다. 향기나 열매는 없지만, 꺾꽂이나 휘묻이 후에는 어느 나무들보다 뿌리를 잘 내립니다. 
물푸레나무목으로 잎이 지는 작은 나무인 영춘화는, 개나리와 사촌 간의 꽃입니다. 개나리꽃 역시 통꽃이지만 꽃잎은 4개로 갈라집니다. 5~6장의 꽃잎으로 활짝 피는 영춘화에 비해 개나리는 꽃을 길쭉하게 피우지요. 
사실, 개나리꽃이 벌써 피었나 하고 다가갔다가, 꽃잎을 판판하게 편 모습에 개나리꽃이 이렇게 생겼던가 혼동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개나리하고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어딘지 모르게 느낌이 다른, 꽃잎을 더 활짝 피우는 영춘화였습니다.
 

납매 영춘화는 초봄에 꽃을 피우는 옥매라 부르는 흰매화와 다매라 불리는 동백꽃, 수선이라 불리는 수선화와 함께 눈 오는 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꽃으로 ‘설중사우’라 불렸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임금님이 씌어주던 모자를 장식한 어사화이기도 하였으니,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는 집안에서는 마당 한쪽에 영춘화 한 그루 정도는 당연히 키웠을 것 같습니다. 
어사화로 설중사우로, 더구나 따뜻한 지방에서는 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니, 영춘화는 그 강인함과 고결함에 예와 의를 지키려 했던 옛 어른들이 특히나 좋아했을 듯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그날그날의 기상 상태보다 사람의 마음이 더 먼저 알아챕니다. 아직은 선뜻 봄밤이라 말하기 이르지만, 밤 역시 금방 봄을 끌어올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기다리던 봄을 맞는 의식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로쇠나무의 달착지근한 물을 마시며 ‘봄봄’을 읊조립니다. 꼼질꼼질 향기롭습니다. 
세상이 봄인 것처럼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 같지 않은 일들이 늘 널려있는 봄이라 할지라도, 어느 시인의 글처럼 ‘봄에 만나는 당신의 마음도 다시 믿는 세상을 살고, 살아갈 자신 속에서 조금씩 사랑에 대한 자신도 구하고 있는’ 봄이기를 바랍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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