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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꽃눈과 잎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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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꽃눈과 잎눈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3.15 11:23
  • 호수 13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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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햐~ 미치겄다!” 고운식물원 전망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둘이서 연신 감탄을 합니다. 축 늘어진 가지에 다닥다닥 망울이 맺힌 매화나무 앞이었습니다. 보일 듯 말 듯하게 꽃봉오리가 막 터졌답니다. 하나둘 셋, 몇 송이밖에 피지 않은 매화꽃에서 향기가 납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한 해의 첫 절기에 집어넣었다는 입춘 절기는 이미 잊은 지 오래지만, 마른 나무들의 가지 끝에 핀 노랗고 푸른 망울들로 봄은 시작됐습니다. 

회색빛 마른 나무들이 봄의 기운을 온몸 가득 받습니다. 우듬지를 통해 받은 기운은 초록빛 잎눈과 연노랑 꽃눈 망울을 만들었습니다. 
매끈한 줄기와 가지를 내보이는 히어리의 겨울눈은 2개의 비늘 모양 껍질에 싸여 있습니다. 3월이 가기 전에 포도송이 모양의 연한 황록색 꽃을 보여줄 것입니다. 명자나무도 작고 단단한 망울이 다닥다닥 맺혔습니다. 가지 중간중간의 겨드랑이마다 꽃망울이 동글동글 맺혔습니다. 꽃눈 속에는 수술과 암술과 꽃잎과 꽃받침, 씨와 씨방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꽃눈만큼이나 잎눈도 봄을 맞고 있습니다. 연둣빛 눈곱만한 잎들이 오물오물하며 봄볕에 몸을 찡그립니다. 

아직은 식물원의 나무들 대부분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며 잎눈과 꽃눈을 내밀고 있는 반면에, 이미 꽃이 활짝 핀 키 작은 식물들도 많습니다. 마치 한여름처럼 벌떼 소리가 요란한 곳이 있습니다.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얼음새기꽃이라 부르는 복수초가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한결같이 해를 향해 허리를 약간 굽힌 모습이 반짝이는 황금 촛대 같습니다. 얼음을 녹이는 강인함을 보이며 피는 꽃이 또 있습니다. 스노우드롭이라 부르는 설강화입니다. 1월 탄생화로 북반구 추운 지방에서도 춘분 전에 꽃이 핍니다. 땅을 향해 핀 순백의 속꽃잎에 연두색 점이 참 예쁩니다. 

뽀송하게 솜털을 피워내는 작은키나무 갯버들, 버들강아지에도 봄기운이 올랐습니다. 꽃의 싹을 보호하는 윤기 나는 솜털이 눈부십니다. 홍버들강아지의 화사한 모습을 보니 저절로 환호가 터집니다. 숨이 탁 막힙니다. 
흑버들도 있습니다. 홍버들처럼 빛나는 솜털이 없어서인지, 지난해 맺힌 열매가 남아있는 줄 알았습니다. 참새도 아닌 것이, 펭귄도 아닌 것이 부리 같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꽃눈을 싸고 있던 비늘조각잎입니다. 겨우내 그 속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숨죽이고 있었겠지요. 
버들강아지는 머지않아 검은빛 솜털과 홍색 솜털, 청색 솜털을 벗을 것입니다. 황색과 빨간색, 흰색 꽃밥으로 활짝 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솜을 단 씨앗을 날려 보내겠지요. 버들은 역시 물과 함께 어우러져야 더 멋스럽습니다. 

입이 없어도 소통을 하고,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 손이나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것, 식물입니다. 향기를 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일상에서 우리가 보는 겉모습만으로 식물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경이롭고 복잡하고 신비로운 것 또한 식물이기 때문이지요. 비옥한 땅을 차지하려고, 햇볕을 더 많이 받으려고, 땅속 영양분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매일매일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것도 식물입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지요. 가시를 달고 냄새를 풍기며, 독성물질을 뿜어내기도 합니다. 죽은 체를 하거나 겉모습을 바꾸면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생존 전략도 펼칩니다.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통째로 삼켜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기물을 흡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식물들이 씨앗을 만들었습니다. 그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왔거나, 동물에 의해서거나, 물에 흘러왔거나, 이곳에 싹을 틔웠습니다. 되도록 엄마나무로부터 더 멀리 날아오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살아남으려 애쓴 식물들은 아니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씨앗이 틔운 싹과 꽃잎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환호를 합니다. 잊혀가는 감성도 깨우치고 정화도 합니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잎을 내면서 봄을 보여줍니다. 봄꽃, 설강화의 꽃말은 희망과 위안입니다. 봄이 주는 많은 것 중에서도, 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식물이 주는 봄을 받으며, 나도 누구에겐가는 봄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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