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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을 기념합니다! - 붉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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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을 기념합니다! - 붉은 장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3.08 15:21
  • 호수 13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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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가 양성평등과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생각하고 다짐하는 뜻깊은 날이 되기를 염원한다’-노희찬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1908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뉴욕의 한 광장에서 시위를 하였습니다. 봉제공장의 열악한 작업장에서 일하다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한 것을 기념한 것이지요.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습니다. 빵은 남성 노동자들의 절반도 안 되는 저임금에 시달리던 생존권이며, 장미는 노동조합결성권과 참정권을 뜻합니다. 1977년 UN에서 여권신장과 양성평등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로, 국제적인 명절로 공식지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장미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시인 아나크레온은 ‘꽃의 영광과 마력, 봄의 기쁨과 근심, 신의 환희’라 읊으며 장미에 푹 빠졌습니다. ‘우리 기후 풍토에서 대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함’이라며 괴테도 장미를 높이 평가했지요. 연인에게 줄 장미를 꺾다 가시에 찔려 세상을 떠난 장미의 시인 릴케는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많은 눈꺼풀처럼 쌓인 꽃잎 아래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을 자는 즐거움’이라는 묘비명을 손수 썼습니다. 크레오파트라는 늘 장미 향수를 뿌렸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돌아올 때면, 나일강가의 사람들은 배가 도착하기도 전에 클레오파트라가 온다는 것을 알 정도로 장미 향기를 풍겼답니다. 
 
햇빛을 좋아하는 장미를 서양권에서는 꽃들의 여왕이라 부르며, 독보적인 존재로 비너스와 성모마리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서아시아에서 아시아의 원종과 유럽 야생종과의 자연교잡에 의한 변종을 재배하여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남부유럽에서 주로 재배하였습니다. 원종 간의 교배로 꽃의 모양이나 색깔을 비롯하여 특정 계절에 무관하게 꽃을 피우는 등, 생태적으로 변화된 품종들이 많이 개발됐습니다. 개량하여 키운 원예종만도 2만5천여 종이며, 해마다 200종 이상의 새 품종이 개발됩니다. 
     

5월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지만, 화원 안의 장미는 이미 붉고 노랗고, 분홍색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넋 놓고 들여다보자니, 향기로든 색깔로든 나도 모르게 폭 빠져듭니다. 상록성으로 반짝이는 초록잎과 꽃에서 풋풋하고 은은하게 향이 납니다. 장미는 향 또한 특별하여, 달콤하다거나 향긋하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냥 ‘장미향’이라 합니다. 신선한 레몬향이나 나무향이나 과일향도 아닌, 미묘한 차이의 깨끗하고 강렬하고 로맨틱한 다양한 향이기 때문이지요.

사랑, 열정, 기쁨,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붉은 장미는 노동자들의 꽃이며 진보의 상징입니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오래된 서유럽의 진보정당들은 붉은 장미를 당의 상징으로 삼고, 총선 등에서 당선자에게 장미꽃을 선사합니다. 
19세기 서유럽 노동자들이 정부와 자본의 횡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일 때면 가슴에 붉은 장미꽃을 달았습니다. 장미의 촘촘히 붙어있는 꽃잎에서 단결을, 날카로운 가시에서 투쟁을, 붉은색에서는 노동자의 피를 비유한 것이었지요.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 역시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매일 일어났습니다. 급기야는 폭력으로까지 번져, 노동운동 지도자가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5월1일, 메이데이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사건입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사망자에 대한 연대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옷깃에 붉은 장미를 달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관련하여 붉은 장미는 진보를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이지요. 1969년 프랑스 사회당이 최초로 당의 상징 문장으로 붉은 장미를 채택하였습니다. 

‘장미꽃 전하고픈 여성 노동자’를 찾는 신문글을 읽습니다. 14년간 여성 노동자에게 장미꽃을 전달한 고 노회찬 의원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노회찬재단이었습니다. ‘발렌타인데이는 알아도 세계여성의 날은 배운 바 없다는 조카와 같은 대학생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한 송이 꽃을 보낸 고인의 마음은, 여성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미얀마 양곤에서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를 연일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한 손에는 붉은 장미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로 시위에서 숨진 사람을 추모하고 있는 뉴스를 봅니다. 장미의 꽃말처럼 영원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마력이 뿜어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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