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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상의 깊은 의미 -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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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상의 깊은 의미 - 떡국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2.08 16:08
  • 호수 13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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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한 살 나이를 먹은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예전에는 전통명절인 ‘설’을 쇠야 진짜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설’의 어원이 ‘한 살 나이를 더 먹는’의 ‘살’에서 왔다는 유래로, 설날이야말로 진정한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입춘을 기준으로 바뀌는 십이지(띠) 역시 자연스레 설날 즈음이므로, 설날 아침에 떡국 한 사발을 먹어야만 나이 한 살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은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음식이며, 설날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지난해 정성스레 농사지은 멥쌀로 만든 가래떡을 얇게 썰어 장국에 넣어 끓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국을 좋아하여, 채소가 섞인 고깃국인 갱(羹)과 채소가 섞이지 않은 고깃국인 확(臛),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탕(湯) 등으로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떡국을 끓이는 장국은 쇠고기와 간장을 주원료로 오랫동안 고아 국물을 냅니다. 장국으로 끓인 떡국은 겉모양이 희다고 ‘백탕’이라 하였고, 떡을 넣어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흰색의 긴 가래떡을 엽전처럼 동그랗게 썰어서 끓인 새해 첫날 먹는 떡국은, 장수를 누리고 재물복을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설날에 떡국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편찬된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기록한 몇몇 문헌에는, 떡국은 정월 초하룻날 지내는 차례와 설에 차리는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설음식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최남선은 상고시대 때 신년제사를 마치고 후손들이 먹는 음식에서 유래됐다고 하였습니다. 천지만물이 시작되는 설날은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원시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옛 어르신들은 설날 떡국에 꿩고기를 넣고 끓였습니다. 꿩은 하늘의 사자로 여겨 길조라 생각하였지요. 맛도 좋지만, 새해 첫날 처음 먹은 꿩떡국으로 일 년 동안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나길 바랐던 때문이었겠지요. 
 떡국은 지역에 따라 떡의 모양과 맛이 다릅니다. 공통적인 것은 깨끗하고 맑은국으로, 맵거나 붉지 않다는 것이지요. 떡국 위에 올리는 꾸미 역시 지역과 가정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다진 고기를 볶아서 얹거나 흰 떡국과 붉은 고기, 파와 달걀노른자 지단, 검은색 김으로 음양오행설에 맞추기도 했습니다. 
 

충청도에서 즐겨 먹던 날떡국(생떡국)은 사골국물에 멥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수제비처럼 넣고 끓인 것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진한 멸치육수에 미역이나 다슬기를 넣기도 했습니다. 전라도는 장조림 한 닭고기로 닭장떡국을, 경상도는 팬에 살짝 구운 떡으로 굽은떡국을 끓입니다. 거제에서는 생선 대구로 끓이는 대구떡국, 통영에서는 굴과 바지락과 물메기와 다시마 등 겨울 바다가 다 들어간 떡국을 끓인답니다. 경기도와 개성에서는 조랭이떡국을 끓입니다. 조롱박처럼 가운데가 잘록한 모양의 조랭이떡은, 누에고치가 실을 술술 풀어내듯이 한 해의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답니다. 

설명절 음식으로 남쪽 지방에서 떡국을 먹는다면, 북쪽 지방에서는 만둣국을 먹습니다. 함경도는 꿩만둣국, 평안도에서는 일 년 내내 막힘없이 잘 구르라는 의미로 굴림만두를 넣은 굴림만둣국을 끓이며, 황해도는 배추소가 들어간 강짠지만둣국을 끓입니다. 중부지방은 만두와 떡국이 들어간 떡만둣국으로, 강원도에서는 초당두부를 넣어 끓인 두부떡만둣국이 있습니다. 

물에 적당히 불린 멥쌀을 가루로 만들어 찝니다. 찐 쌀가루를 기계에 넣어 가래떡으로 뺍니다. 채반에 잘라 올린 떡이 꼬들꼬들하게 말라 떡 써는 기계에 넣으니 떡국떡으로 착착 썰어나옵니다. 몇십 년 전의 설날 풍경이 떠오릅니다. 떡방앗간에서 빼 온 가래떡이 썰기 좋게 마르면 식구들은 넓적한 보자기를 깔고 둘러앉아 떡을 썰었습니다. 

백금리 외갓집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찐 쌀을 떡메로 쳐 길게 가래떡을 만들고 썰어 떡국을 끓였습니다. 외숙모는 엿을 고고 두부를 만들었으며, 외할머니는 오만 잡곡으로 강정을 만들었습니다. 마루 한쪽의 항아리에는 살얼음이 동동 뜬 감주가 있었지요. 외할머니가 남기고 싶었던 전통이 외숙모에게서 끊어진 지 오래지만, 불현듯 외할머니표·외숙모표 떡국이 생각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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