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우아하고 정중하나 소리가 없는 새 - 황새
상태바
우아하고 정중하나 소리가 없는 새 - 황새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2.06 00:11
  • 호수 138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흰몸과 긴부리, 긴목과 긴다리로 홀로 움직입니다. 하천에서 서식하는 조류, 백로와 두루미와 황새의 모양입니다. 회색 왜가리도 늘 혼자입니다. 청양읍 백세공원의 지천이나 녹색길을 걷다 보면 한두 마리씩은 볼 수 있는 새들입니다. 눈이 수북하게 내린 날, 녹색길 옆 넉배에서 황새 가족을 만났습니다. 

큰 새라는 뜻의 ‘한새’로부터 유래돼 붙여진 이름 황새는 우산종(생물이 사는 세계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있는 종)으로,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며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과 한반도와 일본에 분포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번식하고 11월경 우리나라로 와 이듬해 3월까지 머무르며 겨울을 납니다. 러시아에서 적은 수가 내려오기도 하지만, 홀로 또는 몇몇끼리 무리를 이룹니다. 저수지와 바다 기슭의 갈대가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을 좋아하지요. 물고기와 쥐, 개구리, 뱀 등을 먹고 심지어는 본인보다 작은 새까지도 잡아먹습니다.
 

흰색 깃털로 된 몸길이와 키는 1미터가 넘으며, 날개 한쪽의 길이는 2미터가 넘습니다. 날개 끝부분의 비행 깃털은 검은색입니다. 모든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동그란 눈은 연한 노란색입니다. 눈 주위의 살은 붉은 화장을 한 듯하며, 30센티미터 정도의 긴 검은 부리는 바위라도 뚫을 듯이 단단해 보입니다. 날씬하다 못해 가는 다리는 붉은색입니다. 암수 모두 같은 모양이지요. 

큰 몸을 사뿐사뿐 들어 올리며 여유롭게 걷고 있습니다. 움직이나 움직이지 않는 듯 내딛는 걸음걸이는 물결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습니다. 느긋한 듯하지만 경계심이 강하여 예민합니다. 작은 기척만 느껴도 푸다닥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빨간 두 다리를 반듯하게 모으고 부리를 길게 내민 채,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모습은 정말 근사합니다. 바람을 가르는 흑백의 날개는 마치 피아노 건반 같습니다. 
크고 늠름하고 믿음직한 황새에게도 슬픔이 있었습니다. 목울대가 없어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맑고 높은 소리는 고사하고 구애의 노래도, 아기새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도 낼 수 없습니다. 목을 앞으로 뒤로 젖혔다 숙이며, 부리를 부딪쳐 따다다닥 둔탁한 소리만 낼 뿐이지요. 
 
예전에는 한국 각지에서 흔하게 번식했던 텃새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물이 얕은 습지를 좋아하는 육식성 황새는 많은 습지가 개발로 사라진 1950년 이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논농사 수확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농약과 수렵, 벌목으로 둥지를 틀 나무가 없어지면서 텃새 황새는 1970년대 중반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소나무 위에 앉은 황새를 ‘송단의 학’이라 하여 옛 문헌이나 그림, 자수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새이기도 했지만, 옛 어르신들은 황새를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였습니다. 황새가 번식하는 마을은 부촌이 된다고 전해 내려와 길조로 여겼기 때문이지요. 서구권에서는 행복과 끈기, 인내를 상징하며 아이를 보따리에 넣은 채 물어오는 새로 알려져 있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은 누군가가 자신을 해칠까 늘 불안하던 차에, 밭두둑의 황새를 보고 놀라 전국의 황새를 잡아 종자를 없애라는 명령까지 내렸답니다. 

넉배의 황새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몇 차례 녹색길을 걸었습니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어느 곳에선가 머물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아무르강으로 돌아가 번식을 하겠지요. 매년 같은 둥지를 고쳐 사용하지만, 새 둥지도 짓겠지요. 가끔 까마귀에게 알을 도둑맞기도 하지만, 눈에 잘 뜨이는 늙고 높은 나무의 꼭대기를 찾아 마른 나뭇가지로 오목하게 집을 지을 것입니다. 운이 좋으면 향나무를 만날 수도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세월을 혼자 살지만 번식기에는 쌍끼리 조용한 곳에서 생활합니다. 2~6개의 알을 낳고 35일 정도를 품어, 50여 일 동안 새끼를 기릅니다. 어린새는 둥지를 떠난 뒤에도 일정 기간을 어미새와 함께 생활합니다. 4년이 돼야 어엿한 어른 황새가 되며 30~50년 정도를 삽니다.
 
전북 고창군 갯벌, 창원 주남저수지 앞 갈대섬, 담양 영산강 부근에 황새가 왔다는 뉴스를 봅니다. 빨간장화를 신은 채 물속에 고개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면서, 살짝 날개를 움쩍거리기도 하더니, 더 이상 우아할 수 없다는 모습으로 물을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