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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기록하고 남기는 일 - ‘다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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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기록하고 남기는 일 - ‘다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1.25 14:31
  • 호수 13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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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새해가 되면 행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다이어리와 가계부를 새것으로 바꾸고, 달력에는 열두 달의 주요 일정을 적는 것입니다. 주요 일정이라 해야 매월 혹은 매년 반복되는 일입니다. 친구들과 지인들의 생일이나 집안 기념일 등, 한 해 동안의 할 일과 행사를 적어놓는 것이지요. 지난해에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올해는 그냥 지나치는 일 없기를 바라며, 또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입력 및 저장을 할 수 있는 휴대폰이 생기면서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는 수첩의 주소록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하루하루 한 일을 기록하기 위해 다이어리도 준비합니다. 그날그날 누구와 만났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가볍게 메모하는 것으로 일기장하고는 다릅니다. 수십 년 동안 길들어진 새해맞이 행사이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에는 맞지 않더라도 열심히 빠트리지 않고 기록하게 될 가계부입니다. 가계부의 시초는 조선 시대 어사 박문수 집안의 「양입제출」로, 기록방법이 오늘날의 가계부와 비슷하게 되어 있답니다. 수입으로는 논밭의 생산량과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물, 농경지의 경작료 등을 합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달 지출하는 액수를 기록하였답니다. 
그날이 그날이듯 빵과 커피와 과일을 산 내용과 여행비와 관리비가 전부이겠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절약할 부분은 없을지라도 빠짐없이 가계부도 기록하겠지요. 소비습관을 보면 내가 보이기 때문도 아니고, 몇 년 후의 저축 목표액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몇 년 지난 가계부를 뒤적이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도 발견합니다. 1월 관리비가 6년 전보다 37,570원 많아진 걸 알 수 있는 것처럼요.
      

‘촌스럽게 아직도 다이어리 타령이냐, 컴퓨터를 이용해라, 스마트폰을 이용해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조카가 지난겨울 별 오만가지 잡동사니를 보냈습니다. 알록달록 색칠된 6공 다이어리, 한 장씩 떼어 쓰는 그림이 있는 떡 메모지, 동물을 비롯한 온갖 모양의 그림스티커 등이었습니다. 어디서 사은품에 껴 나온 걸 보냈나 하여, 아래층에 사는 초등학생에게 주었습니다. 눈 오는 날에는 눈사람스티커를 비 오는 날에는 우산스티커를 수첩에 붙였던, 예전에 다 해봤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뭔 이런 것을 붙이라고, 이런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별 걸 다 보낸다고. 

눈길 조심해서 다니라는 조카의 전화를 받습니다. “이모, 다꾸 잘하고 있어요?” “다꾸?” 요즘 문구상품 중에서 가장 핫한 상품만 보냈다며, 그런 것도 모르냐고 비아냥거립니다.
다이어리 꾸미기, 컴퓨터와 전자통신을 타고 젊은 세대의 새로운 취미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다꾸’랍니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한 물품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다이어리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라네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에게 요즘 ‘다꾸’가 유행입니다. 대도시의 백화점에서는 유명 일러스트작가(어떤 의미나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그림이나 사진, 도안 등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소설이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을 그려주는 ‘다꾸’상품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모양의 스티커를 오리고 떼어 붙이거나 그림을 그려 넣으며 다이어리를 꾸미기 위함이지요.

나이 한 살 더 먹더니 감이 그렇게 떨어졌냐고, 그러니 우중충한 나이 듦에 익숙해지는 거라는 조카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까짓 스티커 몇 장 붙인다고 알록달록하고 반짝이는 일상으로 살아간 것이 되느냐고 윽박지르긴 했지만, 기왕이면 한 번 다이어리를 꾸며볼까 생각도 들어 이것저것 스티커를 샀습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 스티커를 주무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기저기 붙여놓다 보면 내용이야 어떠하든 간에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화사한 바람이 일겠지요. 
    
그들 젊은 세대의 예쁘고 귀여운 다이어리와 내 흑백의 다이어리와는 외관상 엄청난 차이가 있을지라도, 기록하여 남긴다는 것에 대해서는 세대 차이가 없었습니다. 본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과시하며 고가 명품을 선호한다는 MZ세대도, 한 해의 기록을 남기는 곳은 눅눅하고 부드러운 곳이었습니다. 감촉과 냄새와 여운과 편안함을 주는 종이의 힘이겠지요.
다꾸는 장담할 수 없지만, 올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달력의 여백은 검고 붉고 푸른 볼펜이 긋고 쓰고 지운 흔적으로 빽빽하게 채워지겠지요.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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