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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큼이나 넓은 맛의 세계 빵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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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큼이나 넓은 맛의 세계 빵②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1.18 16:22
  • 호수 1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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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작은 구름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어요. 작은 구름은 너무너무 가벼웠어요. 우리는 구름이 안 날아가게 조심조심 안고서 엄마한테 갖다 주었어요. 엄마는 큰 그릇에 담아 따뜻한 우유와 물을 붓고 이스트와 소금, 설탕을 넣어 반죽을 하고 작고 동그랗게 빚은 다음 오븐에 넣었지요. ’-백희나 「구름빵」 부분
  
지난해와 지지난해 겨울에 했던 눈타령에 보란 듯이, 눈이 왕창 내렸습니다. 수북하게 쌓인 눈은 강추위로 인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눈부셨던 햇살이 금방 사라지더니 하늘이 온통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다시 또 눈이 내립니다. 자작나무 아닌 자작나무 사이로 눈을 맞으며 흰 당나귀를 타고 가는 나타샤와 백석을 생각합니다. 
  

발효빵은 고대이집트에서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발효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부풀린 빵보다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과자 형태의 빵이 많았습니다. 이집트에서 그리스와 이스라엘로 빵은 전해지며, 밀가루죽을 주식으로 먹던 로마제국과 함께 서구 곳곳에 퍼져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먹는 음식인 빵이었으나, 모두가 같은 빵을 먹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20세기 이전의 흰빵은 부자들만 먹는 것이었지요. 

소화가 안 되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예전의 빵에 대한 인식이 깨진지 오래입니다. 아침은 밥이 아니면 안 되었던 우리의 어르신들도 이젠 빵이 아침밥을 대신합니다. 보기 좋고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다양한 빵이 등장한 것이지요. 어느결에 딱딱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빵부터 거의 아무것도 넣지 않은 식빵까지, 수도 없이 많은 빵이 우리 식탁 위에 올랐습니다. 빵은 성큼 가까워진지 오래지만, 빵의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그 이름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냉동실에서 꺼낸 빵을 프라이팬에 굽습니다. 버터 향이 쫙 퍼집니다. 냄새만으로도 부드럽습니다. 지방분이 많고 짭짤하고 담백하여 바게트만큼이나 프랑스인들이 아침 식사로 많이 먹는 빵 크루아상입니다. 빵이 가벼워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 같아 좋아진 빵 크루아상은 프랑스의 빵으로 알려졌지만, 본래는 헝가리의 빵이랍니다.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다시 오스트리아 공주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루이 16세 왕후가 되면서 프랑스로 전해진 것입니다.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하는 크루아상은 평범한 모양의 빵이었으나, 오스트리아가 터키의 침공을 막아 낸 뒤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터키는 이슬람국가였고, 이슬람의 상징이 초승달이기 때문이었지요. 오스트리아인들은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먹음으로 전쟁에서 이긴 기쁨을 즐기기 위해서라 하지만, 패자인 터키인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격이 되었습니다. 작고 보드라운 크루아상에는 시대적 아픔이 담겨 있어, 지금도 터키의 어르신들에게 크루아상을 권하는 것은 실례랍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빵 바게트는 프랑스 혁명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길쭉한 막대기빵입니다. 당시는 ‘무게 300그램, 길이 80센티미터’로 빵의 형태를 법으로 정해놓았답니다. 너나없이 똑같은 빵을 먹기 위한 조치여서, ‘평등빵’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긴 전투를 치르기 위한 군대용 빵, 보관하기 쉬운 전투식량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보존이 잘 되었으며, 크고 단단하여 전쟁터에서 베고 자기도 하였답니다. 

빵 역시 역사와 문화와 배경이 들어있습니다. 빵이 걸어온 수많은 시간과 빵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빵 속에 있습니다. 소설과 영화와 뮤지컬로도 빵은 존재합니다. 배고픈 조카들을 위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이 있는가 하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희고 부드러운 롤빵을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어 했지요.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열어주는 빵 시나몬롤이 ‘카모메 식당’에 있었으며, 길이 막혀 회사에 늦을까 봐 아침밥을 굶고 간 아빠에게 고양이형제는 ‘구름빵’을 갖다 드리지요. 인생의 중반에 들어선 추억과 회한의 심정을 표현한 이수익시인의 시집 「푸른 추억의 빵」도 있습니다. 

눈을 맞으며 당나귀 대신 털신을 신고 나섭니다. 시장 입구, 동그란 옥수수빵과 보리빵 위로 눈처럼 하얀 김이 오릅니다. 음식만큼이나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 또 어디 있으랴, 폭신폭신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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