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1-01-19 11:39 (화)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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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1.13 09:30
  • 호수 1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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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큼이나 넓은 맛의 세계 빵

‘단팥을 넣었으면 단팥빵/크림을 넣었으면 크림빵/겨울엔 따끈따끈 호빵/아침엔 똥글똥글 모닝빵/ 가루가루 밀가루 반죽도 치대고 대면 부풀어 오르고/오랜 시간 손맛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노라조 「빵」 노랫말 부분
  

유대교에는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달력으로 1월 14일에 해당됩니다. 이날 유대교인들은 발효시키지 않는 빵, 납작한 ‘무교병, 마차’라는 빵을 만들어 먹는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유대인들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할 때, 짧은 시간 안에 만든 빵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빵 반죽이 발효되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효모를 넣지 않고 빵을 만든 것이었답니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되새기려 일부러 무교병을 만들어 이집트탈출과 수난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겠지요.

밀가루에 물과 소금, 부풀어 오르는 첨가제인 이스트나 효모를 넣어 반죽한 뒤 굽거나 쪄낸 음식, 빵입니다. 발효시킨 것과 발효를 하지 않은 것이 있으며, 주식이나 간식으로 먹습니다. ‘빵’이라는 표현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요르단 북동부 검은 사막의 수렵유적지에서 숯이 된 음식물이 발견됐습니다. 숯의 잔해는 보리와 귀리 등 야생 곡물을 빻아 체로 거른 뒤 반죽이 되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약 1만4천5백 년 전에 수렵 생활을 하면서 빵을 만들어 먹은 흔적이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식물고고학 연구팀은 이를 발견함으로써 농경문화가 빵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혔습니다. 야생에서 곡물을 채집해 빵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동력의 불편함으로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지요. 

“모래를 씹는듯하고 짭짤한 맛이 났지만, 약간의 단맛도 있었다.” 선사시대 방식으로 감자와 같은 덩이줄기를 가루로 빻아 만든 빵의 맛에 대해, 최초의 빵 흔적을 발견한 연구팀은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빵은 19세기 말 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숯불 위에 시루를 엎어놓고 그 위에다 빵을 구웠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우랑(牛囊, 쇠불알)과 같아 ‘우랑떡’이라 하였답니다. 몇 년 후 서울 정동에 생긴 손탁호텔에서 빵을 만들어 이름을 ‘면포’라 하였고, 카스텔라는 눈처럼 희다 하여 ‘설고’라 불렀습니다. 
 
빵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양과자점들이 한국에 들어오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빵 등 지금도 인기 많은 옛날빵이 이때 들어왔습니다. 딱딱하고 저장이 오래 가능한 빵의 원산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식 빵이었답니다. 한국전쟁 후 미국으로부터 밀가루를 수입하면서 제빵집이 많이 생겼지만, 그때까지도 빵은 부유층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지요. 이후 혼·분식장려정책을 실시, 밀가루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빵도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삼립식품의 크림빵이 유행하던 초등학교 시절, 크림빵을 먹은 기억은 없고 배식 받아먹던 빵이 생각납니다. 소보로빵 모양의 옥수수빵으로 하루걸러 한 개씩 배식을 받아서, 늘 받는 당번이 부러웠습니다.  

효모 반죽을 버터와 함께 켜켜이 쌓아 여러 번 굴려 반질반질 노릇노릇 부풀게 오븐에 구운 빵 크루아상은 파삭파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맛을 냅니다. 유산균을 발효시킨 반죽을 수백 번 방아 찧어 만든 담백한 모찌모찌식빵은 쫀쫀한 결을 따라 손으로 뜯어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고리 모양의 둥근빵 베이글, 납작하고 바삭바삭한 차파티, 껍질에 밀가루가 묻어있는 두툼한 시골빵, 발효시키지 않은 가볍고 바싹한 무발효빵, 빵, 빵, 빵의 종류는 헤아릴 수가 없이 많고 맛이나 식감 또한 천차만별입니다. 

‘티라미수’ 한 조각으로 새로운 빵의 세계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커피와 카카오의 그윽한 향과 빵살은 입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살살 녹았지요. 달콤하고 부드러운 티라미수를 레드와인과 곁들여 먹으며,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기분 좋은 맛을 받았습니다. 마치, 옛날 어린 시절에 뻣뻣한 식빵만 먹다가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먹은 기분 그 이상이었습니다. 티라미수는 빵이 아니라 케이크, 과자라고 빵집 언니가 알려줬지만, 빵의 세계 또한 세상만큼이나 넓고 넓습니다. 뜨거워서 호호 맛이 좋아 호호 호빵의 계절에, 또 어떤 빵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을까 기대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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