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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아름다운 흔적 –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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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아름다운 흔적 – 나이테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12.29 11:33
  • 호수 13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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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나무는 개체 안에 세대를 축적한다. 지나간 세대는 동심원의 안쪽으로 모이고, 젊은 세대가 몸의 바깥쪽을 둘러싼다./~/하나의 핵심부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동심원을 이루는 세대들의 역할분담과 전승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나이테를 들여다보는 일의 기쁨이다.’-김훈「나이테와 자전거」일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은 허전해 보이면서도 의연합니다. 겨울이 만드는, 겨울을 견디는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나이테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테, 나무의 연륜, 나무의 줄기를 가로로 잘랐을 때 보이는 여러 겹의 둥근 모양의 테입니다. 나무의 시간이 만든 작품, 나무만이 그려낼 수 있는 삶의 무늬입니다. 

불에 탄 나무
불에 탄 나무

매년 줄기와 가지가 한 마디씩 자라며 그곳에 세월을 기록하는 나무는, 세포분열로 줄기가 굵어지며 생장합니다. 계절 변화에 따라 나무의 생장 속도가 달라서 생기는 나이테는, 보통 1년에 한 줄의 테가 만들어지고 그 수에 따라 나무의 나이를 짐작합니다. 생장이 왕성한 봄부터 여름까지는 나무가 쑥쑥 잘 자라 테 부분은 넓은 간격과 밝은색으로 형성되며, 생장이 더딘 가을부터 겨울을 보내는 동안에는 색깔이 진하며 간격도 좁게 나타납니다. 
 

전나무

다시 봄이 되어 나무가 잘 자라기 시작하면, 겨울 동안 자란 부분은 짙고 가는 둥근 테의 흔적이 됩니다. 봄·여름에 만들어진 밝은 부분과 가을·겨울에 만들어진 어두운 부분이 합쳐, 한 줄의 나이테가 됩니다. 해를 넘기며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둥근 테는 겹겹이 쌓여갑니다. 겨울이 있어야 생기는 나이테다 보니, 나무에게 겨울은 반드시 이겨 내야 할 계절인 것입니다. 
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이테 역시 뚜렷하게 만들어지고, 계절 차이가 없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이테가 생기지 않습니다. 일 년 내내 똑같은 속도로 자라는 나무처럼요.
  

동심원 모양의 나무가 살아온 역사, 나무의 문서기록보관소, 나이테는 생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지므로 생장연륜이라고도 합니다. 나이테의 간격과 색, 흔적 들을 보고 과거의 그 지역에 대한 기후와 환경과 연대 등을 추정하는 학문 연륜연대학에서는 변화하는 기후의 주기를 예측하고 나무에 새겨진 역사와 환경을 밝혀줍니다. 강수량과 계절도 알 수 있습니다. 간격이 넓은 나이테가 보이면 나무가 잘 자란 해이며, 간격이 좁은 나이테가 보이면 그 해는 나무가 자라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햇볕을 받는 양에 따라 테의 간격도 달라지므로, 나침반처럼 방향을 짐작하기도 합니다. 수십 년부터 수백 년까지 자라며 한 겹 한 겹 만들어진 나이테에는 산불의 상처와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거나 유난히 기온이 낮았던 시절 등 살아온 과정이 차곡차곡 더해진 연륜이지요.

아카시나무
아카시나무

심, 고갱이, 나무줄기의 가장 안쪽, 나무의 중심, 밑씨가 처음 싹을 틔우며 자란 최초의 줄기입니다. 심을 둘러싼 줄기지름 1/3 정도의 심재 부분은 대부분 어두우며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심재는 나무가 자라는 일에는 관여하지 못하지만 줄기와 가지를 지탱하고 나무를 존재하게 합니다. 곧고 바르게, 높이 서 있을 수 있는 나무의 속심인 것이지요. 한 줄 한 줄의 죽음이 더해가고, 다시 또 한 줄 한 줄이 새롭게 살을 붙이며 죽음과 삶이 함께 있는 것, 나무의 줄기 나이테의 모습입니다. 나이테 한 줄에 봄부터 겨울까지가 다 들어있다면 한 그루의 나무에는 젊음과 늙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세대가 공존하는 것이지요.
 

참나무
참나무

연륜,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으로 이루어진 숙련의 정도를 말합니다. 세월을 잘 살아온 이들에게 ‘연륜이 느껴진다’는 표현의 연륜이 바로 나무의 나이, 나이테에서 비롯됐습니다. 나무의 삶도 우리의 삶처럼 좋고 편안한 시간과 힘들고 어두운 시간의 반복임을 나이테를 보며 배웁니다. 칼바람을 맨몸으로 맞는 가느다란 가지를 봅니다. 모진 겨울에도 더디지만 나무는 자라며 더욱 단단해집니다. 내년 봄에는 단정한 나이테 한 줄 더 생기겠지요.  
올 한 해 만들어진 나의 나이테는 어떤 모양일까 생각합니다. 혹시, 봄은 있었을까? 간격은 어느 정도일까? 기왕이면, 연둣빛이면 좋겠습니다. 
  
한 해의 끝입니다. 모두가 힘겨웠던 지난 시간이었지만, 겨울 끝에 다시 찾아오는 봄이 있다는 사실, 겨울을 겪어낸 나무들만이 큰 그늘과 아름다운 나이테를 만드는 나무로 커 간다는 사실에 다시 새로운 해를 기대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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