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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날갯짓으로 천리를 나는 새 –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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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날갯짓으로 천리를 나는 새 – 기러기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11.30 11:43
  • 호수 13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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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윤석중 「기러기」노래글  

칼슘도 많고 막힌 혈관도 뚫어줍니다. 크고 묵직합니다. 껍질도 엄청 단단합니다. 달걀을 깨듯이 톡 쳤다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흰자와 노른자가 울컥 쏟아집니다. 기러기알프라이를 먹습니다. 끼륵끼륵 뱃속에서 기러기가 자랄 것 같습니다. 

새의 여행, 해마다 일정한 계절이 되면 오는 새, 그리고는 몇 달이 지나면 자취를 감추는 새들이 있습니다. 겨울새·여름새·나그네새·떠돌이새·길잃은새, 일 년에 한 번 이동하는 철새입니다. 어미와 새끼의 경로가 대대로 같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방향을 잡고 날아갑니다. 몸집이 큰 새들은 태양의 위치를 목표로 삼아 낮에 이동하며, 몸집이 작은 새들은 별을 목표로 밤에 이동합니다.
겨울 철새, 추운 북쪽에서 번식하고 가을이면 우리나라에 오는 새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원래의 번식지인 북쪽으로 돌아가는 새입니다. 기러기와 두루미와 청둥오리와 개똥지빠귀 등이 있습니다. 
 

안·홍·옹계·홍안 등의 한자 이름이 있는 기러기는, 끼럭끼럭 우는 소리에서 이름이 불리기도 했습니다. 고니보다 작고 오리보다는 몸집이 큽니다. 전 세계에 14종이 있으며, 주로 시베리아 동부를 비롯한 북반구에서 번식합니다. 한국과 중국 북부, 일본과 몽골 등으로 날아와 겨울을 나는 철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회색기러기·흰기러기·흰이마기러기 등 태풍이나 기후변화 등으로 길을 잃고 이동 경로 외 지역에 나타나는 종류가 있으며, 겨울 철새로 작은 쇠기러기와 큰기러기, 흑기러기, 개리 등 7종이 있습니다. 몸 빛깔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암수의 빛깔은 같으며 수컷이 암컷보다 큽니다. 
혼자 날아가는 외기러기도 있지만, 하늘을 날 때, 일(-)자나 V자 모양으로 떼 지어 날아 이동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오리보다 빨리 걸으며, 땅 위에 간단한 둥우리를 틀고 짝지어 삽니다. 

기러기는 구슬프고 처량한 울음소리로 늦가을의 쓸쓸한 느낌을 주지만, 믿음과 희소식과 백년해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한번 짝을 지으면 암컷과 수컷의 사이가 좋아 전통혼례에서는 나무기러기를 전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다정한 형제처럼 줄을 지어 함께 이동합니다. V자형으로 선두의 새가 날개를 펄럭이면 공기의 양력을 일으켜서 뒤에 따라오는 새의 날기가 수월하여, 혼자 나는 거리의 배를 더 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습니다. 앞서 나는 새가 피곤하면 일행 중에서 교체하는 현명함도 보이며, 일행 중 뒤처지거나 총에 맞으면 꼭 2마리가 뒤따라가 지키기도 합니다.
협동심과 배려와 의리를 갖춘 기러기, 그중에도 장거리를 날 때는 일행의 속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앞장선 기러기가 격려하는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이지요.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서열과 질서를 상징하며, 우정이 두텁고 사랑이 지극한 기러기를 옛 어른들은 덕의 새로 여겼습니다. 믿음의 상징인 흰기러기 역시 희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깁니다. 

붉은 태양 앞을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의 기러기 사진만 감탄하며 보았다가, 철조망 안에서 얌전히 사는 기러기들을 봅니다. 
11마리 기러기 가족이 토종닭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물놀이 할 웅덩이가 있고 닭집 옆에 기러기의 집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물문을 밀고 운동장에 발을 디밀자 토종닭들이 이리저리 날고 종종거리며 끊임없이 소리를 지릅니다. 뒷걸음질하며 한쪽 구석으로 슬슬 가는 기러기는 숨소리조차 내질 않습니다. 너희들도 소리를 질러봐, 너희 소리가 듣고 싶다고. 한 시간 남짓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며 기다렸지만 끝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점잖게 걷고, 말없이 바라보고, 고갯짓을 하며 움직일 뿐입니다. 구석에서는 어린 기러기 세 마리가 꼼짝하지 않습니다. 얼굴을 감추고 뒷모습만 보여줍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숨바꼭질할 때 얼굴만 가리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귀엽기도 하고 어쩌나 보려고 가벼운 물건을 던져봐도 꼼짝 안 합니다. 오랜 시간을 그러고 있으려니 어려울 듯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본인의 꽁지를 파먹고 털을 뽑아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생각이 나 얼른 멈췄지만, 기러기들의 인내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까만눈과 굳게 다문 부리를 봅니다. 붉고 긴 앙다문 부리 속에 소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붉거나 노랗거나, 오만가지로 물든 저녁 하늘에 점과 획을 만들며, 알래스카로 날아가는 꿈을 밤마다 꿀 것 같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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