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11-27 11:53 (금)
꽃과 따스함과 행복을 줍니다 – 나정미
상태바
꽃과 따스함과 행복을 줍니다 – 나정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11.16 11:39
  • 호수 137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코를 더 늘려야죠오. 그래야 바닥이 판판하게 됩니다요.” 자주색 면실로 조그만 가방을 짭니다. 선생님은 한 코 한 코 코바늘뜨기를 하는 젊은이들의 손끝과 점점 넓어져 가는 가방 밑부분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서너 명의 머리와 소리 없는 손놀림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문화터미널 ‘세모’를 더 행복한 공간으로 만듭니다. 

“즐겁죠. 호호”, “쓸 말이 뭐가 있어요. 호호” 
나정미님의 통통 튀는, 명랑한 한 옥타브 높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같이 명랑해집니다. 웃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재밌는지, 행복하신지. 굴러가는 털실 뭉치만 있어도 깔깔 웃을 것 같은, 머리만 하얀, 흰머리 소녀입니다. 검정으로 무늬를 만든 모자도 분명히 손수 뜬 모자일 것입니다. 
 
“중학교 가사 시간에 배운 걸 가지고 결혼 후 취미로 짜기 시작했죠. 원래 손재주가 있어요. 남편과 사별 후 동대문 뜨개방에서 30년 정도 뜨개질을 가르쳤고, 문화센터에서도 뜨개질 교육을 했어요. 5명 이상 소모임으로 모아 커피집에서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작품을 짜기도 하고요. 숙제를 내면 다양하게 짜오는 것이 재밌었어요. 직장 그만두고 나서, 손주 보면서, 살림만 하면서 주문 들어오는 대로 짜고 그랬죠. 코바늘 전문입니다. 호호”

“머리핀, 휴대폰케이스, 스카프 겸 머리띠, 실내화 등 보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짤 수 있어요. 디자인이나 무늬는 다른 사람이 짜 놓은 것과 그림이나 사진을 참고로 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추가해서 내 치수에 맞게 나만의 것으로 짜기도 하죠.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보고 ‘이거 예쁘다’ 하면 ‘그래 그럼 너 가져’ 하고 줍니다. 전체적으로 가방, 모자, 옷을 많이 짰네요. 좋아하니까 즐겁게 짜는 거죠. 엄청 좋죠. 내 것이, 나만의 것이, 세상에 둘도 없는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즐거워요.”

즐기다 보니 돈도 생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니까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완성품 나오면 좋죠. 젊었을 때는 여러 가지 소품을 만들어 장식도 많이 했어요. 아기들 옷도 짜 주고, 손자 손녀들 옷도 많이 짰죠. 옷 한 벌을 짤 때는 하루에 4~5시간씩 작품에 쏙 빠져서 하죠. 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목, 손 어깨, 눈도 침침하죠. 눈이 4개잖아요. 호호. 아직은 괜찮아요.”
 

“하루에 10시간씩 짜 본 적도 있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디자인에 맞춰 넓이와 길이를 내고 어떤 무늬를 넣을까 고민하죠. 무늬를 콕 집어주면 한결 쉬운데…, 그림 보고 무늬를 넣기도 하고요. 일주일 걸려 옷을 짜고 2백만 원 받은 적 있고요, 20일에 4백만 원 번 적도 있어요. 그때는 탤런트 김희선이 프랑스에서 쓰고 온 모자였는데, 공항에서 나오는 걸 누군가 사진을 찍은 거예요. 동대문에 쫙 퍼지자, 모자 전문판매점에서 주문이 들어왔어요. 굵은 실로 짠 모자로 20분에 한 개씩 짰어요. 손이 빨라 잘 뜰 때였거든요. 그때 한 번 대박났네요.”   
“힘들 때도 많았죠. 한번은 옷을 주문받았는데, 하루에 5~6시간씩 1달을 꼬박 짰어요. 수고비로 백만 원 받았는데, 실값이 30만 원이었어요. 백화점에서는 150~160만 원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나정미님의 휴대폰 사진에서 조그맣고 예쁜 밤색 가방을 봅니다. 가방이라면 욕심이 생기는지라 막 배워 짜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주문을 받았는데, 무늬(루이비통 무늬)를 넣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한 열흘 정도 걸렸을걸요. 일본사람들은 청바지나 뜨개옷을 가보로 내려줘요. 뜨개질하는 사람들은 뜨개질이 어렵다는, 그 진가를 아는 거죠.” 

뉴스를 듣고 뜨개질을 하고 성경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는 나정미님은, 햇살이 따스하고, 생기가 올라오는 봄을 좋아합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두빛과 꽃이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그중 노란 꽃의 후리지아를 좋아합니다. 분홍색을 좋아하여 옷들이 거의 붉은 계열입니다. 노인 일자리에도 참여하여, 어린이집에서 구연동화도 합니다. 버섯을 키우는 아들을 도와 버섯도 따고 다듬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구정뜨개실을 많이 사용하죠. 소품을 만들기도 하고요. 실은 그때그때 달라져요. 책 보고 요즘 유행하는 것을 배우죠. 뜨개질은 오래전부터 사양길이었지만, 직접 손으로 짠다는 성의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문화가 발달해서 옷도 싸고 예쁜데, 굳이 비싼 실로 시간 들여 짜 입으려 하지 않죠. 옷 짜는 실은 국산보다는 수입을 많이 사용해요. 많죠. 뜨개옷을 나름대로 몇 개 가지고 있어요. 어떤 것은 비싼실로 짠 것이라서, 또 어떤 옷은 너무너무 힘들게 짜서요. 가디건 종류는 입고 다니다 많이 주지만, 원피스는 절대 안 주죠. 1달 걸려 짜거든요. 호호”

좋은 세상은 험하지 않은 세상 
“지금 이 세상요? 안 좋아요. 다음 세대는 너무 힘든 세상을 살아갈 겁니다. 항상 걱정되고 염려되죠. 우리 손주들은 자기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세상에서 살면 좋겠어요. 세상에 유혹되지 말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고요. ‘나 하나쯤이야 어때’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움을 만들잖아요?”   
  
꽃이 피었습니다. 분홍, 연두, 다홍색의 꽃입니다. 고불고불 겹꽃잎도 있습니다. 꽃방석입니다. 꽃가방입니다. 꽃이 핀 커피잔 받침입니다. 파인애플 스카프도 있습니다. 머리 위에 두르면 긴 머리띠가 됩니다. 털신도 있습니다. 발이 따뜻해집니다.
‘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다’는 문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완벽하게 완성된 가방과 목도리와 털스웨터를 봅니다. 완성하기 위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손놀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목에 두르고 입을 사람을 상상하며, 완벽하게 한 코 한 코 짠 것입니다. 망설이고 불안했던 시작의 끝은 늘 따스한 마음이 담뿍 담긴 결과로 보여줍니다. 새소리나 물소리, 맛있는 음식이나 노래, 그림, 사람 등으로부터만 받는 줄 알았던 위로도 받습니다. 작업하는 내내, 입고 걸치고 두르고 있는 내내.
 
할머니열풍, 그래니시크, 할머니들의 취향인 꽃무늬벽지와 손뜨개니트 등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세월 속에 묻힌 듯하면서도 늘 함께 있었던 것이지요. 어린 시절, 어머니도 뜨개질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밭일을 하고도 밤늦게까지 스웨터를 짜고 바지를 짜 주셨습니다. 남은 실을 모아 알록달록 짠 바지는 정말 입기 싫었지만, 지금도 눈에 선한 그 바지가 그립습니다.  
 
“본래 시골에 오고 싶기도 했지만, 아들 따라와 살고 있어요. 살던 곳에 나무도 심고 했는데…, 내가 워낙 뜨개질을 좋아하니까, 모두 그냥 행복해요.”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