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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부르는 그림 –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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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부르는 그림 – 민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11.02 14:01
  • 호수 13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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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부귀영화를 염원하며 그렸을 모란꽃을 봅니다. 그린 손길을 상상하며, 모란꽃잎 한 장 한 장에 붉은 물감을 입히고 덧칠을 하며 바림(색깔을 칠할 때, 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색이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을 합니다. 서서히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옵니다. 

민화, 조선시대 사람들의 그림입니다. 서민 생활에서 생겨난 지방 특유의 풍토, 풍물, 정서 등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관습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입니다. 민화는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사람들이 그린 순수하고 소박한 그림들로부터 도화서의 직업 화가나 화공들의 생활 그림까지 포함합니다. 

실용을 목적으로 한 무명인이 그린 것을 시작으로 속화(속되거나 저속한 그림)라 부르기도 하였지만, 조선 후기에는 서민층에서 유행하였습니다. 산과 물, 꽃과 새 등 정통회화를 모방한 그림으로 생활공간을 장식하였지요. 묘사는 떨어지지만, 대담하고 파격적인 구성과 아름다운 색채로 자유분방하게 그렸습니다. 보통의 격식이나 관례에서 벗어난 것이 많지만, 질서가 있고 주제가 자유로웠습니다. 한국적인 정서가 들어간 다양한 내용으로 소박하고 익살스럽게 그리는 방식이 특징이지요.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무네요시는 그림을 보고 ‘불가사의한 조선민화’ 라며 놀라움을 보였답니다. 화가가 누군지가 아니라, 얼마나 생각을 잘 표현했는가를 중시하는 좋은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민화는 복 받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염원과 신앙, 생활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전통 사회의 산물로 ‘겨레그림’으로 부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민화야말로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 정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표현된 진정한 민속화이기 때문입니다.
 

민화의 소재로는 우리 생활과 가까운 동·식물도 있지만, 상상 속 신기한 동물도 많습니다. 하늘을 향해 짓는 개, 볏 세운 수탉, 행운을 부르는 까치, 보드라운 털고양이, 긴 수염의 용, 알록달록 봉황, 특히 동그랗게 눈을 뜨고 웃는 호랑이를 많이 그렸습니다. 산신이 데리고 다니는 호랑이를 남다른 유머 감각으로 천진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린 것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거느리고 다녔기 때문이랍니다. 민화는 사물을 꼭 한 방향에서만 보이는 대로 그릴 필요가 없다는 파격적인 생각으로, 한 시각에서 보는 것보다 여러 시각에서 보이는 것을 그렸습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민화로 표현한 호랑이처럼, 앞에서 본 모습과 옆에서 본 모양을 같이 그린 것이지요. 

종교 생활이나 일상을 보내는데도 민화는 필요한 그림이었습니다.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두렵고 무서움을 예방하는 무속·도교적인 ‘까치 호랑이’ 그림이 있는가 하면, 유교의 가르침을 그린 ‘효자도’가 있습니다. 입신출세를 위한 커다란 잉어 그림 ‘어해도’가 있으며, 한자의 뜻을 나타내며 아름답게 그린 효·충·의·예·복 등 어린이를 교육하기 위한 ‘문자도’가 있습니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니만큼 책과 책꽂이를 그린 ‘책거리도’로 벽을 장식해, 그 방 주인을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 보이게도 했답니다. 집 안팎을 꾸미기 위한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금강산과 동해안, 중국 풍경을 상상하여 그린 ‘산수화’로 병풍을 만들어 방을 장식하였습니다. 꽃·물고기·들짐승·날짐승·바위·산·하늘·강·곤충과 사군자가 들어간 화조화를 가장 많이 그려 붙였으며, 가문의 번창과 가정의 화합, 부부의 행복을 빌었습니다. 

 

민화는 순수하고 소박하고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린 것이 특징입니다. 나쁜 일을 막아주는 짐승과 복을 부르는 글자를 반복하여 그리며, 간절한 소망과 꿈을 빌었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소박하고 우직하게 그린 것이지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고,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웃게 합니다. 비록 화법과 기교와 독창성이 떨어진다 해도, 그림에는 자연과 인간과 신에 대한 옛 어른들의 친근함이 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민중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고 민중이 그린 가장 한국적인 민화는, 민중을 위해 그려졌습니다. 민화 속 여러 신의 얼굴은 이웃집의 다정한 아저씨와 인정 많은 아주머니를 닮았습니다. 
       
‘모란도 집에 걸어두면 돈 들어온다니 2021년에는 복 누리며 행복하세요.’ 며칠간 모란도를 지도해준 강사의 문자가 빛 좋은 단풍처럼 도착했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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