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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고 싶은 나무 – 으름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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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고 싶은 나무 – 으름덩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10.19 11:46
  • 호수 13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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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여러해살이 덩굴나무 으름덩굴은, 나무 자체나 그 열매를 으름이라고도 합니다. 열매의 아담한 생김새를 비롯하여 맛과 향이 다소 이국적이긴 하지만 원산지는 한국과 일본과 중국입니다. 중부 이남에서 잘 자라지요.

밤나무를 비롯한 나무줄기를 감으며 자라 오르는 덩굴식물로, 이 땅에 오래전부터 저절로 퍼져 살아난 고유한 나무입니다. 가까이에 나무가 없으면 바닥을 기어가 끝내는 나무를 찾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 때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로 그곳 올림픽공원에 심기기도 하였습니다. 이른 봄에 싹을 틔우고 늦게 잎을 거둡니다. 성장 속도가 느린 편으로, 밋밋한 갈색 가지가 손가락 굵기만 하려면 20년 이상은 자라야 하지만, 길이는 50미터까지 자라기도 합니다. 윤기 나는 동글동글한 5~8장의 잎은 아기 손을 펼친 모양으로 예쁩니다. 

으름은 암수한그루로, 늦은 봄에 초록잎 사이로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핍니다. 긴 꽃줄기 한 개에 여러 송이의 꽃이 뭉쳐 있습니다. 아래를 향해 피며, 초콜릿 향기가 나는 작은 보랏빛 꽃은 독특하면서도 귀엽습니다. 

꽃잎이 퇴화하여, 3장의 은은한 보라색 꽃받침을 꽃잎처럼 보이도록 위장한 채 곤충을 유도합니다. 자잘하고 많은 수꽃에 비해, 암꽃은 조금 크지만 적게 매달립니다. 수꽃은 연보라색 수술이 동그랗게 오므린 모양이며, 암꽃은 잎이 변형된 짙은 보라색 심피가 3~6개 있습니다. 내부에 밑씨를 감싸고 있는 심피는, 씨가 자람에 따라 열매의 껍질이 됩니다. 심피의 꼭지에는 이슬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점착성의 액체가 있어, 그곳에 꽃가루가 묻으면 수정이 되는 것입니다. 수꽃과 암꽃이 같은 나무에서 피는데도, 암술과 수술이 각각 암꽃과 수꽃에 있다 보니 꽃가루받이가 제대로 안 돼 인공수정으로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파랗던 열매는 점점 갈색으로 변합니다. 열매가 완전히 익으면 두껍지만 부드러운 껍질 한쪽의 봉합선이 세로로 터지며, 열매살을 드러냅니다. 하얗고 무른 열매살 속에는 반짝이는 까만 씨가 셀 수 없이 박혀있습니다. 어떠한 과일이든지 열매살은 먹도록 하는 것이 목적으로 달고 부드럽지만, 입안에서 씨를 가르는 일은 성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솜털로 싼 것 같고 은은한 향이 나오는 열매살만 있는 으름, 씨 없는 수박처럼 씨 없는 으름은 언제쯤이면 맛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는 ‘졸갱이’라 부르는 으름덩굴은, 부위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많습니다. 열매는 ‘구월찰’, 익은 열매는 ‘임하부인’, 씨는 ‘연복자’라 부릅니다. 머리를 맑게 하는 씨를 오래 복용하면, 앞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초인적인 정신력이 생긴다 하여 ‘예지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방에서는 뿌리와 줄기를 말린 것을 ‘목통’이라 하며 약재로 이용합니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껍질을 벗겨 말린 줄기는 인체의 12경락을 통하게 한다며 ‘통초’라 하였습니다.

산골짜기, 깊은 산속에 있어야 할 으름이 어린이집의 높고 둥근 아치형 현관에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으름을 보니 반갑습니다. 풋내가 들썩이고 날듯 말듯 한 향을 맡으며 입안에 넣자, 단맛이 물씬 납니다. “해마다 으름을 먹어서인지, 아이들도 이젠 별로 신기해하지 않는다”는 원장님 얘기를 듣습니다. 성인이 된 어린이들이 초가을 어느 날 이곳을 지날 때면, 입안 가득 으름의 맛이 고이겠지요.      
청양장날이면 신대리 골짜기에서 살던 이모는 으름과 다래와 머루를 담은 소쿠리를 들고 오셨습니다. 굼벵이 모양으로 꼬부라지고 배가 툭툭 터진 열매를 손에 쥐여 주며, ‘으름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여.’ 씨까지 다 먹으라고 하던 이모부 눈치를 보며, 입안에서 씨를 가리느라 오물거렸습니다. 

으름덩굴은 어린잎부터 열매와 마른 줄기까지, 식용과 약용으로 사용하며 바구니를 만드는 재료로 이용됩니다. 이모는 씨를 발라 기름을 짜기도 했습니다. 호롱불을 켰고, 나무새를 무쳤습니다. 이모부는 손등을 가시에 긁혀가며 산속 깊이까지 들어가 으름을 딴 이모를 안쓰럽게 여겼기 때문에, 씨까지 다 먹으라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너무 익어 터져 마른 으름열매처럼 검고 칙칙했던 이모가 더불어 생각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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