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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날갯짓 소리 – 가을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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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날갯짓 소리 – 가을 곤충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10.12 11:21
  • 호수 13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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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 위에 여치가 있습니다. 붉은 나리꽃이 소담스레 바위 옆에 피었습니다. 연둣빛 여치의 긴 더듬이가 꽃을 향해 있습니다.’ - 심사정의 그림<괴석과 풀벌레> 

방울벌레
방울벌레

여름부터 녹색길을 걸었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보며, 이쪽저쪽에서 나는 풀벌레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높고 가늘거나 낮고 묵직한 날갯짓 소리입니다. 또르륵 똑 또르륵 똑 방울소리와 찌르르르르 찌륵 찌륵, 찌익 찌익 소리를 냅니다. 풀잎이나 나뭇잎 뒷면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짧은소리부터 긴소리까지 저마다의 소리를 만들어내며 곤충들은 그 존재를 알립니다. 

목이나 날개, 가슴이나 넓적다리를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곤충들이 있습니다. 메뚜기목의 귀뚜라미과와 여치과, 몸길이보다 긴 2개의 더듬이와 한 쌍의 겹눈과 세 개의 홑눈이 있습니다. 겉날개와 막질로 된 속날개는 대부분 비행 능력이 없으며, 야행성이며 잡식성으로 풀숲과 덤불, 으슥한 창고나 돌밑에서 주로 삽니다. 수컷은 발음기가 있는 겉날개를 비벼 다양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종마다 다른 형태의 겉날개에 따라, 서로 다른 몸짓과 날갯짓으로 각각의 소리를 냅니다. 소리는 암컷을 부르기 위함이며, 자신의 영역을 알림이며, 싸울 때며 울 때입니다. 당연히 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며, 천적이 나타나면 죽은 듯이 소리를 멈춥니다.

긴꼬리(사진 두산백과사전)
긴꼬리(사진 두산백과사전)

슬솔·실솔·청렬·왕손·촌직·귓돌이 등으로 부르는 고독한 사람의 벗 귀뚜라미는, 날갯짓 소리를 나그네의 설움이나 외로움으로 표현하지만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한 곤충입니다. 흙이나 벽돌이나 기와 밑에서 살기를 좋아하여, 가을날 실외화장실 구석에서 한두 마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귀뚜라미는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 유식한 듯 일에 나서는 사람을 일컬어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싸우기도 좋아하여, 옛날 중국의 황제들은 귀뚜라미싸움을 즐겼답니다.      

돌 밑이나 풀뿌리 근처 구멍에는 가장 흔한 왕귀뚜라미가 살고 있습니다. 낮이면 구멍 바깥에 앉아 있는 수컷은, 밤이 되면 겉날개를 수직으로 들어 올려 비비며 소리를 냅니다. 암컷이 다가가면 구애 자세로 바꿔, 가락과 장단을 빠르게 하며 아름다움을 한층 더한 소리로 유혹을 합니다. 소리에 반해 짝짓기에 성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는 단조롭게 바뀌지요. 

푸른 날개의 긴꼬리가 나무를 오릅니다. 꽃잎을 접은 나뭇잎처럼 아름다운 장소가 있으랴, 나뭇잎을 갉아 조그만 구멍을 냅니다. 구멍속으로 들어가 나뭇잎과 평행이 되게 날개를 켭니다. 루루루루 무궁화꽃보다 화사한 소리를 냅니다. 

납작한 검은색 몸에 길고 흰 더듬이를 가진 방울벌레는 땅 위에서 삽니다. 성충이 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수컷은 소리를 냅니다. 왼쪽 날개의 마찰편으로 오른쪽 날개의 작은 이빨이 늘어선 줄을 비비는 것이지요. 암컷을 부를 때면 규칙적이고 청아한 소리를 내지만, 수컷끼리 싸울 때는 짧고 불규칙적인 소리를 냅니다. 은은한 방울 소리를 내어 귀뚜라미나 긴꼬리 등과 같이 애완용으로 기릅니다. 집에서는 가지나 오이 등의 채소와 마른멸치와 가다랭이포를 먹이지만, 야생에 사는 방울벌레는 썩은 식물이나 죽은 벌레 등을 먹습니다. 

알락귀뚜라미
알락귀뚜라미

창백한 새벽이 오면 밤새 귀뚜라미와 긴꼬리와 방울벌레의 날갯소리에 잠들지 못한 별들이 껌뻑껌뻑 늦은 잠을 청합니다. 황금들판이 더 짙어지면 소리는 점점 드높고 강렬하거나 둔탁해집니다. 수컷의 푸른 겉날개 돌기들이 닳고 닳아서 소리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옛 어르신들은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의 날씨를 귀뚜라미 소리로 측정했답니다. 빠르면 덥고, 느리면 춥다고 여겼습니다. 
 
귀뚜라미 한 마리가 있습니다. 자그마한 몸은 밤색입니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알락귀뚜라미로, 성채도 되지 못한 채 집을 잘못 들었습니다. 남향창틀에 자리를 잡아 낭랑한 소리 한번 못 내 보고, 바짝 말라 손만 대면 바스러질 듯합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풀밭이나 돌틈과 나무에 앉아 소리 낼 때를 기다려야 하는 푸른 곤충들의 사는 법을 몰랐던 탓입니다.

초승달이 미루나무 그림자를 만들며 녹색길을 비춰줍니다. 넉배에 달이 잠깁니다. 갈대가 물에 비쳐 반짝입니다. 달빛 묻은 환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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