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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보랏빛 열매 –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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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보랏빛 열매 – 가지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9.21 14:09
  • 호수 13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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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콩밭 사이로 보라색 꽃이 보입니다. 광택이 나는 검보랏빛 열매도 있습니다. 가짓과의 한해살이 풀입니다. 원산지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을 적응하지 못해 1년생 풀처럼 가꾸는 채소 ‘가지’입니다. 드문드문 열매의 끝부분이 동그랗게 말려 올라간 것도 있습니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몸통이 하얗습니다. 긴 장마와 계속된 습한 날씨로 나타난 현상, 가지역병을 앓고 난 열매입니다. 다행히 길쭉하니 잘생긴 검은 보랏빛 열매가 더 많이 열렸습니다. 연보라색 꽃도 많이 피었습니다. 초가을 햇살은 남은 어린 열매와 새로 맺을 열매가 좋아하는 빛을 듬뿍 줄 것입니다. 

 

줄기도, 줄기에서 벋어나온 가지도, 잎몸과 잎맥, 꽃받침도 검보라빛인 ‘가지’는 인도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에 들어왔습니다. 풀 전체에는 회색빛 털이 있으며, 신선한 열매는 꼭지 부분에 가시가 있기도 합니다. 열매 모양도 품종에 따라 다릅니다. 달걀모양, 공모양, 긴모양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길쭉한 모양의 품종을 많이 재배합니다. 
서양에서는 달걀모양의 가지가 많아 ‘달걀식물’이라 부릅니다. 분에 심어진 희고 노랗고 작은 가지열매를 화초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가지는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 사람들이 특히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독이 있다는 소문으로 먹지 못하는 관상용이었지만, 유대인들이 처음 식용으로 먹기 시작하였답니다.   

접힌 자국마다 짙고 옅은 세로줄이 뚜렷한, 보라색 한지로 만든 종이꽃 같은 가지꽃은 아래를 향해 핍니다. 통통한 노란수술이 긴 암술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암술이 수술보다 길면 영양 상태가 좋은 것으로, 튼실한 열매를 맺겠지요.
향기를 푹푹 뿜을 것 같은 수술이지만 왱왱대는 벌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넓적한 잎사귀를 넘나드는 무당벌레가 있을 뿐입니다. 황금빛 수술로도 곤충을 유혹하기 힘든 가지꽃은, 바람이 불면 수술에서 꽃가루가 떨어져 암술에 닿게 됩니다. 곤충의 도움이 없어도 수정을 하는 것이지요. 자연이 만든 저마다의 빛깔과 매력을 지닌 꽃처럼 열매를 맺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가지는 곤륜과(崑崙瓜)라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의 신선들이 산다는 곤륜산에서 먹던 과일이라는 뜻으로 귀하다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채소 5위 안을 오르내립니다. 열매 특유의 물커덩한 식감과 채소답지 않은 향과 질깃한 껍질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름 더위를 예방하는 정월 대보름 음식에는 포함됩니다. 빛 고운 가을철에 잘 자란 열매를 4갈래로 갈라, 줄에 죽 꿰어 말립니다. 가지고지를 만들어 보관했다가 이듬해 기름에 볶아 나물을 만들어 먹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지는 제철, 여름에 먹어야 제맛입니다. 차가운 성질을 지닌 열매는 여름의 더위를 물리칠 뿐 아니라, 염증을 다스리는 효과도 있으니까요.

어느 해인가 항구도시의 식당에서 ‘가지선’을 먹었습니다. 상상도 못 할 가지의 맛에 놀랐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밥솥에 가지를 넣고 쪘습니다. 밥알을 훑어내고 죽죽 손으로 찢은 후, 깨소금과 양념간장으로 찐 가지를 무쳤습니다. 가지선의 맛은 어머니가 만든 밥물이 푹 밴 물컹한 가지나물 맛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 맛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가지선을 먹겠다고 왕복 열 시간쯤을 운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반득반득한 보라색 가지를 봅니다. 밭에서 금방 따온 가지를 입에 대면, 혓바늘 돋게 왜 생으로 먹느냐고 했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설컹설컹한 생가지에서는 미미한 향과 단맛이 납니다. 
가짓과 식물 대부분의 익히지 않은 열매에는 솔라닌이란 독이 있습니다. 싹 난 감자처럼 많지는 않지만, 생으로 먹으면 아린 맛이 날뿐더러 장이 약한 사람은 설사나 복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익히면 독성분은 사라지고 단맛이 더해집니다. 가짓과 식물은 니코틴도 소량 함유하고 있으며, 그중 니코틴이 풍부한 ‘담배’풀도 있습니다. 

가장 만만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 역시 가지열매입니다. 기름에 볶거나, 가지밥을 지어 비벼 먹거나, 두반장 소스로 볶거나,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거나…, 그중 쪄서 먹는 것이 가지 속의 항산화 성분을 증가시켜 피부 노화를 막고 대장암 발병을 억제한답니다. 옛 어른들의 지혜를 다시 생각합니다.   
볶아볼까, 쪄볼까 망설입니다. 둥글게 썰어 놓은 보라색 가지의 흰 과육에 반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갈색으로 변합니다. 가지의 씨가 그 존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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