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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에너지의 화수분 – 제이 전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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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에너지의 화수분 – 제이 전귀정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9.14 17:00
  • 호수 13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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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금방 잔가지가 나올 듯하고, 금방 꽃눈이 나올 듯합니다. 깔깔하나 미끈한 나무가 엄지와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겸손하게 합니다. 변함없는 나무의 마음을 전해줍니다. 따스한 정이 흐릅니다. 머리가 달린 나뭇가지 연필을 받았습니다. 
“대추나무 작품입니다. 그때그때의 느낌대로 부르는 것도 좋고, 이름에 별로 연연하지 않아서요. 20대부터 80대까지 다 제이라 부릅니다. 퇴직 후 전국 일주를 끝내고, 곳곳에서 일 년씩 살아 보려 했었죠. 땅끝 해남에서도 몇 달 살았어요. 2년 전 이곳을 지나다 백목련나무와 내려보는 들판이 좋더라구요. 꽃이 피면 동네가 다 환해요. 밑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가끔 낮잠도 잡니다. 포도밭을 만들어서 1년씩 돌아다니는 것은 이젠 끝났죠.”

전귀정 씨.
전귀정 씨.

직장생활을 할 때 꿈꿨던 포도밭입니다. 자연농법을 하려고 2년째 풀만 키웁니다. 
“토양을 개선하는 거죠. 한 7년 걸린답니다. 유기농을 뛰어넘어 먹을거리를 중요시하는 거죠. 비닐과 플라스틱 등 농업폐기물이 어마어마하게 나왔어요. 그걸 몇 달에 걸쳐 치우다 땅을 정화 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땅의 혜택만 받으려 했고 농산물만 취하려 했는데, 땅이 치유되는 과정에 내가 참여하고 있구나 하며 감동했죠. 굉장하지 않아요?”
안전한 먹거리를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농부가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일이며, 생명의 땅을 회복시키는 농업이야말로 매력적이라고 제이님은 생각합니다. 
  
자유 – 평화를 향한 몸짓 
“춤은 6년 정도 됐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거나 두려워했던 일에 도전하고 싶었거든요. 춤과 노래는 늘 두려웠죠. 탱고도 배워보았지만 정해진 방식에 맞추는 거잖아요? 이 춤은 방식이 없어요. 나 자신에게 몰입된 채 몸이 움직여지니 자유롭고 깊은 느낌을 줍니다. 명상과 같은 효과지요. 몸이 움직이는 것이 두려웠지만, 춤을 통해서 몸과 마음과 가치관이 유연해진 것 같아요.”
 
광화문광장, 청운동사무소, 청계광장과 여의도광장에서 제이님은 10여 명의 ‘평화의 춤’ 회원과 춤을 추었습니다. 
“치유의 춤이죠. 5·18 민주화운동이 있고 3년 후에 군대에 갔지만, 직업군인으로 생활하면서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늘 부채의식이 있었습니다. 광주 5·18묘역과 제주 4·3묘역, 노회찬의원 때 용서와 평화를 기원하며 춤을 추었죠. 광화문 촛불광장에서는 시위가 끝난 후 시민들을 위로하는 형식의 춤을 추었어요. 올해에는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많이 학살된 간토에 가 영령을 위로하려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못 갔습니다.” 
제이님은 춤으로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며 걸림을 털어냅니다. 

“걷는 게 가장 좋아요. 자연의 주파수를 일치시키는 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종의 그런 거죠. 춤도 그렇지만, 걸으면 편안해지고 비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뭔가를 생각하거나 정리하기도 하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는 또 내려놓기도 쉽지요. 지난 1월부터 금강트레킹 모임을 하고 있어요. 금강의 시작부터 끝까지 역사문화가 있는 구간을 걸으며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함께 걸어요. 나이와 사회적 신분은 불문이고 호칭도 님이나 씨로 불러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편안해요. 내년 2월까지 걸으면 금강 전 코스를 걷게 돼죠.” 

나눔 - 나뭇가지 연필
“직장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가로 고민하며, 무엇이든 해보자는 생각이 많을 때 ‘희망제작소’를 알게 되었고 후원회원모임인 ‘강산애’ 활동을 하였어요. 나이·지위·학벌을 보지 않는 강산애의 3무 규칙이 수평적이고 평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저의 이상과 맞았습니다. 희망제작소의 모금전문가학교에서 무엇으로든 의미 있는 나눔 활동을 배웠습니다.”

-연필에 특별한 의미가 있으신가요?
“나무 촉감이 좋고, 내가 시간만 내면 할 수 있는 거라서요. 여러 곳에 기부를 해도 월급에서 나가니 감동이 오지 않았어요. 생활 기부를 하는 희망제작소 회원들을 통해 생태공예품을 만들어 그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을 배웠죠. 1년에 600~800개를 만들어, 파는 것은 다 기부를 하고 귀한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주기도 합니다.”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며 외국인에게 주면 엄청 좋아해요. 손으로 만들었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잖아요? 연필을 팔아 기부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기부에 동참하려고 여행 갈 때 사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시간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나뭇가지 연필을 8년째 만듭니다. 
“손재주는 없어요. 이 정도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버리는 것도 많지만, 조심 안 하면 다치기도 합니다.”         
-기부하기 위해 돈을 버시네요?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이죠. 그런 나눔이 남은 생에서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동강리의 연두색 들을 봅니다. 밤이면 수많은 별이 내려앉겠지요. 비닐 지붕 위로 비가 내리니 운치도 더합니다. 
“문화·예술활동가들에게 쉬는 공간이 필요할 수도 있잖아요. 이유 없이 누구든지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쌀과 김치도 지원해주고 싶은데,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네요. 하하.” 
최고은(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계기가 돼, 생활이 고달프고 팍팍한 예술가들에게 쉬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이동식 주택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희망 - 생활 기부활동가의 꿈
“어렵네요. 그전에는 거침없었는데 영혼 없이 말했던 것 같아요. 저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도 안 되는데 어떻게 세상을…, 다양성 있는 사회죠. 내 편이 아니면 다 적이라 생각하며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배제주의적 사고와 차별이 심각하잖아요? 혐오가 없는 사회,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이 좋은 것 아닐까요?”
 
“많아요. 꿈하고는 다르지만 70~80대가 되었을 때도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죠. 젊거나 나이 들거나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어울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문화·예술 분야라 생각해요. 물론 가치관이나 문화생활, 꾸준한 자기 노력이 포함돼야 하겠지만 그건 차후 문제죠. 춤이나, 나뭇가지 연필, 걷는 것이 그런 이유 중의 하나죠. 문화·예술을 삶과 접목하고 싶고, 생활 기부에 관련된 모임을 하고 싶어요. 산과 길을 꾸준히 걸어 청양을 외부에 알리는 홍보도 해야죠.”
 
군인이었다는 이유로 부채의식이 생겼지만, 그 부채의식이 나눔과 자유와 희망의 화수분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한 지역에 초등학교를 지어주려 합니다. 그 학교는 3년 안에 세워질 것이며, 그 역시 부채의식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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