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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높고 크게, 그리고 멀리 – 매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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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높고 크게, 그리고 멀리 – 매미 소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9.07 11:41
  • 호수 13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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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매미는 아는 것이다/사랑이란 이렇게/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뜨겁게 우는 것임을/~’-안도현「사랑」부분
 
매미가 노래를 부릅니다.(노래와 울음 중, 일생의 99%를 땅속에서 보낸 세월을 생각하며 노래라 표현하겠습니다.) 노래에 흠뻑 빠질 암컷을 만날 때까지, 수컷매미는 꼬리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최고의 목소리를 냅니다. 

매미는 머리, 가슴, 배로 구분되며 다리가 6개인 곤충입니다. 나무 기둥에 딱 붙어 긴 빨대 모양의 주둥이를 나무줄기에 꽂고, 포도당 같은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삽니다. 지구상의 매미는 약 3천 종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매미는 참매미를 비롯하여 덩치가 크고 작은 말매미와 애매미, 날개가 기름종이처럼 생긴 유지매미, 풀밭에서 사는 풀매미,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우는 늦털매미 등 10종류가 넘습니다. 종에 따라 내는 소리도 다릅니다. 

매미가 조그만 몸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는 비밀은 배에 있습니다. 수컷매미의 배 속은 텅 빈 ‘공명실’입니다. 소리 기관인 진동막이 내는 소리가 공명실을 지나며 20배 정도 커지기 때문이랍니다. 
수컷매미는 몸이 따뜻할수록 큰 소리를 냅니다. 해가 떠서가 아니라, 햇살이 강하면 기온이 올라가고 매미의 체온이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맑고 더운 날 매미 소리가 더 크게, 많이 들리는 이유입니다. 열대야가 있는 밤에는 말매미가 차르르르, 야간 조명이 많은 도심의 한밤중에는 참매미가 맴맴 노래합니다.
짝짓기를 하면서도 매미는 노래를 그치지 않습니다. 천적에게 잡히면 죽어라 비명을 지릅니다. 힘껏 날개를 퍼덕이며 발광을 하고 오줌을 갈기기도 합니다. 

암컷매미가 낳은 알은 나무껍질 안에서 근 1년을 지내다 애벌레로 깨어나, 나무를 타고 땅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무뿌리의 수액을 빨아먹으며 애벌레는 먹고 싸며 자랍니다. 종에 따라 3~17년을 땅속에서 보내고 세상에 나와서는 보통 1주에서 한 달을 삽니다. 
말매미나 참매미는 다섯 번의 허물을 벗으며 5년을 자랍니다. 애벌레는 6년의 어둠을 뚫고 땅 위 세상으로 나옵니다. 성충이 되기 전에 천적의 먹이가 될 확률이 높아 새들도 곤충도 잠든 한밤중을 선택합니다. 땅 위로 나오자마자 먹잇감이 되면 땅속 세월은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불개미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애벌레는 천천히 바람이 잘 통하는 나무에 올라, 줄기에 발톱을 단단히 박고 때를 기다립니다. 땅속 세월보다도 더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2~6시간에 걸쳐 허물을 벗고 몸과 날개를 펼칩니다. 7년 만에 어른벌레가 된 연녹색 매미는 천천히 몸의 색을 만들고 날개를 말립니다. 3~4일 후부터 완전한 매미가 돼 수컷은 암컷을 찾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암컷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수컷의 우렁차고, 애절하고, 절박한 노래를 골라 들을뿐입니다. 
 

수컷매미는 노래합니다. 노래는 암컷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다른 수컷을 경계합니다. 대신 천적도 옵니다. 생과 사를 동시에 부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길지 않은 시간 때문에 목소리가 높아지고 끊임없습니다.
주변이 시끄러우면 더 크게 소리를 냅니다. 한 마리가 노래하면 덩달아 여기저기서 노래를 합니다. 주변 암컷들에게 크고 명확한 신호를 보내면서, 천적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숨기는 방어를 위한 합창이기도 합니다. 말매미와 참매미의 소리는 커다란 자명종, 진공청소기, 믹서기,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크기가 비슷하답니다.  
 
짝짓기 후 암컷매미는 배 끝의 뾰족한 산란관을 나무줄기나 껍질 속에 넣어 구멍을 뚫습니다. 여러 곳에 200~600개의 알을 낳으며 짝짓기 후 흙으로 돌아간 수컷매미처럼 서서히 죽어갑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남짓 살다 죽어가는 매미는 긴 세월 동안 오직 한 가지, 종족 번식을 위한 목적으로 암흑의 세계에서 처절한 시간을 보낸 것이지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점점 강화되는 거리 두기와 태풍과 긴 장마로 평범하던 일상이 사라진 시절, 삶이 위축되고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도 매미는 노래합니다. 매미 소리는 더운 날을 더 덥게 하고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7년 만에 태어나 한여름 잠깐 울고 가는 수컷매미의 사랑 노래를 그냥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다 가기 전에 구애와 번식에 성공하기를, 간절한 마음이 암컷매미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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