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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소망 - 정자나무 살롱 윤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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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소망 - 정자나무 살롱 윤의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8.24 11:47
  • 호수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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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발과 손과 머리로 추는 거죠.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머리로 춥니다.”  
-토로토요? 처음 들어봐요. 
“사실은 내가 춤선생입니다!” 
취미도 특기도 없으시다 하더니, 완전히 기대 이상입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다녔는데 요즘은 안 다닙니다. 내 몸에 군살 하나 없잖습니까. 이십 년 정도는 췄네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춤을 췄습니다. 저한테 춤은 당시 유일한 친구였고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습니다. 하던 일로 몇 번 부도를 맞고 보니 사람들 만나기도 힘들었고….” 

효자와 전기기술자의 부자 되는 꿈   
효자 부자가 대를 이어 살자,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의 우애를 뜻하며 마을 이름까지 지었다는 효제리. 효자 윤형갑의 13대손으로 장손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태어나 효를 섬긴 선조들의 비석을 다듬고 추모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러기까지 ‘효제’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궁금했습니다. 11대손의 5남에서 태어난 장남, 효제2리 노인회장 윤의노님입니다. 

“전혀 그런 부담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선비였습니다. 그래서 큰 공부도 못했고, 그냥 악착같이 돈을 벌었습니다. 워낙 가난해서 돈 벌어 멋있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는 5남매를 낳으셨는데 아버지는 막내로 논 여덟 마지기가 전부였습니다. 아버지 평생소원이 논 20마지기랑 황소가 끄는 연자방아를 가지고 싶어 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4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시골 논 30마지기 살 수 있는 계를 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대에서 가난을 끊으려 하셨던 것이었지요.”

“제가 전기기술잡니다. 공부머리는 없어도 기계머리는 있습니다! 처음부터 돈 벌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고, 일하다 보니 많이 힘들어서 생각해 낸 것입니다.”
창고 벽에는 구기자를 수확하는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전 직장의 기계실에서 일한 경험으로 구기자 따는 기계를 손수 개발했습니다. 
“농민들이 같이 편하게 일할 수 있기만 바랬죠. 어딘가에서 특허를 내 기계를 팔고 있어요. 손으로 따는 것보다 4배 정도 빠릅니다. ”
 
두 번째 사는 삶으로 새 꿈을 꿨습니다
“하고 싶은 일 다 하지는 못했지만, 미련은 없습니다. 돈돈했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차 한잔이라도 대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술이나 담배는 손님 접대할 정도는 됩니다.”
느티나무집, 윤회장은 본인의 집을 정자나무집이라 부릅니다. 마당 한쪽의 검은 비석에는 정자나무집에 머물다간 사람과 머물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느티나무 밑으로 윤회장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 입구에는 조그만 찻장이 있고, 누구든지 꺼내 마실 수 있도록 문이 열려있습니다. 정자 위의 찻상에 앉아 회장님표 차를 마십니다. 앞쪽으로는 파랗게 자란 싱싱한 벼가 눈을 시원하게 하고 정자나무에서는 끊임없이 매미가 웁니다. 
하루살이 한 마리가 앵앵거리자 천장의 붉은 전등을 켭니다. 와우! 살롱입니다. 붉은빛을 싫어하는 날벌레 퇴치 전등은 아랫마을 사람이 개발한 것입니다. 이래저래 비 내리는 날, 살롱이 분위기를 물씬 냅니다.
 
두 번의 사업실패 덕분(?)에 세 명의 은인을 만났습니다. 
“40대 중반에 청양과 서울을 오가며 플라스틱공장을 운영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다 연쇄반응으로 부도를 맞았습니다. 견디다 견디다 힘들어서 죽으려고 대천 앞바다에 갔습니다. 세코날 15알을 준비했지요.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우연히 청양의 다방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죽으려 하는 사연을 얘기했더니,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너 죽으면 네 마누라는 더 좋은 사람한테 시집갈 것이지만 자식들은 어찌하냐, 그렇게 책임감 없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너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다’며 치받는 바람에 옥신각신 술 마시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약이 호주머니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왜 하필 세코날은 15알인가요?
“글쎄, 10알은 약하고 20알은 다시 살아난다나 했던 것 같습니다 하하. 부도 때 차근차근 빚을 갚게 해 준 나를 믿어준 대리점 사장님, 그리고 사업실패와 이혼에서 손을 잡아준 아내를 큰 은인으로 생각합니다.” 
윤회장의 부인 양동순씨는 치매 시모와 중풍 시부를 모시며 효부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후배들이 살아갈 세상요? 편안하게 사는 것이 좋은 세상 아닙니까? 재난지원금을 받아서 쓰긴 잘 썼지만, 우리나라가 부자라서 받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쓴 돈을 손자까지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습니다. 그 속에서도 일부는 편안하겠지만….”

잊지 않게 하는 것이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기는 합니다. 옛날 그대로의 전통혼례를 체험하는 체험관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생겼습니다. 잊혀 가는 옛 풍습을 살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효제리 마을 입구 느티나무에 혼례청을 설치하고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이 논두렁을 건너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을은 예전부터 전해오는 아들바위가 있고, 옆 마을에는 춘포짜기 기능보유자도 있습니다. 전통혼례와 아들바위와 춘포짜기, 그림이 되지 않습니까?”
20평, 400평, 2000평까지라도 본인의 땅을 희사하실 마음이 있다고 하십니다. 정자나무집 마당에는 세종대왕과 물레방아, 원앙과 봉황을 비롯한 돌새, 다듬이질하는 여인과 베 짜는 여인, 첨성대, 수많은 동물상 등이 효제동 마을 유래비와 함께 있습니다. 구기자와 오미자와 산수유를 농사지어 판 돈으로 하나하나 만들고 구입했습니다. 수년 동안 조각상을 모으며, 은근하고 소박하게 큰 꿈을 꾸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이 정자에 앉아 봄, 여름, 계절이 바뀌는 것을 봅니다. 지금 여기서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지킨다는 것, 더 잊기 전에 남기고 싶다는 것, 그것 때문입니다.” 
이 마을을 오고 가는 사람에게 한 잔의 차를 대접하고 눈요기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 그 마음 때문입니다. 아버지 생전에 못 해 드린 황소 연자방아,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얼룩이 황소와 연자방아를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필자에게 존칭을 쓰십니다. 효자 집안의 몸에 밴 오랜 관습이겠지요. 올해도 또 다른 조각품을 준비하기 위해 구기자밭으로 들어가는 윤회장의 뒷모습은 반듯합니다. 춤으로 다져진 몸이라서가 아니라, 늘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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