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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마시는 차 – 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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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마시는 차 – 꽃차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8.18 11:49
  • 호수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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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서서히 맘이 녹아내리듯/그 슬픔과 오랜 고단함 씻을 순 없지만/꽃차 한 잔을 내어 줄게요/뜨겁게 물을 데우고 따뜻한 볕에 곱게 말린 예쁜 꽃잎을 띄울게요/그대 하루에 자그맣게 핀/이 순간의 색과 향기를 기억해~’-서지음의 「꽃차」 노랫말 부분     

파란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옅은 푸른색의 차를 봅니다. 청색과 하늘색이 섞인 투명한 색입니다. 입으로 마신다기보다는 눈으로만 봐야 할 듯한 차입니다. 찻물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꽃잎이 나옵니다. 한 잎 두 잎, 소담스럽게 꽃이 핍니다. 수레국화차입니다. 물속에서 피어나는 모습은 수수하면서도 신비롭습니다. 보리밭 속에서 유난히 눈에 뜨였던 청보라 꽃이 유리잔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자태는 꽃 이상입니다. 춤추듯이, 숨을 멈추듯이, 부르는 듯이, 떠나가는 듯이, 바라보는 듯이, 머무는 듯이.     
 

식물이 가지고 있는 향과 맛과 모양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일, 꽃차를 만드는 일입니다. 
꽃차는 화차라고도 부르며 향을 입힌 화향차에서 시작되었답니다. 녹차·황차·백차·홍차·청차·흑차의 찻잎에 꽃의 향기를 흡착시켜 차를 마실 때 꽃향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제조한 가공차가 화차입니다. 일천 년 전, 중국의 송나라에서 차에 용뇌향을 첨가했던 것이 화차의 시초랍니다.
명나라 때에는 신선한 꽃을 찻잎과 켜켜이 쌓아 찻잎에 꽃향이 배도록 몇 번을 중복하는 ‘음제화차’ 제다법이 보급되면서 진정한 화차가 만들어졌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 술이나 차에 꽃을 썼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규합총서에는 매화를 비롯해 복숭아꽃과 진달래꽃 등을 우려 마시는 기록이 있답니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은 먹향과 더불어 꽃향를 마시며 계절을 음미하는 낭만에 젖었겠지요. 
 

꽃차에는 화향차·생꽃차·냉동꽃차·건조꽃차·발효꽃차·덖음꽃차 등이 있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제조방법을 달리합니다. 꽃잎이 얇은 봄꽃인 매화와 산수유와 개나리는 생꽃을 그대로 우려 마시거나, 자연스럽게 그냥 말려 차로 만듭니다. 국화를 비롯한 가을꽃은 가볍게 쪄서 말린 후 솥에 넣고 은근한 불에 덖어야 제대로 된 향과 색깔을 내는 꽃차가 된답니다. 

꽃 자체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찌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드는 꽃차인 덖음꽃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갑니다. 손길이 간만큼 우아하고 고운 빛깔의 깔끔함과 향기와 효능을 두루 가지고 있습니다. 덖음으로 향은 더 은은해지며, 차의 색은 한층 진해집니다. 

덖음이라 해서 뜨겁게 달군 무쇠솥에 볶는 것이 아닙니다. 50도 정도의 중불로 프라이팬에 한 잎 한 잎의 꽃잎이나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송이를 올려놓고, 뒤집어주고 식혀주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식힘을 잘하는 것이 덖음꽃차의 맛을 좌우합니다. 덖을 때마다 잘 식혀주고 꽃이나 꽃송이가 타지 않도록 온도조절을 잘하는 것이 고운 색의 꽃차를 만드는 방법이랍니다. 가열과 식힘을 많이 반복할수록 명품의 꽃차가 되겠지요.
빨리 말려내는 방법이 최우선이지만, 온도의 차이에 따라 기술이 필요합니다. 자신만이 터득한 비법인만큼 말이나 글로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 덖음꽃차랍니다.   
            
피어나는 꽃송이를 보고 놀라고, 때로는 아무런 맛이 없어 놀라며, 잊을만하면 입안에 고이는 향으로 놀라게 하는 오묘한 꽃차. 은은한 녹차가 중년의 인생을 의미한다면, 꽃차는 화사한 20대쯤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꽃차는 마술처럼 계절을 불러줍니다. 봄을 마시고 가을을 마시면서, 기분도 감미롭고 감성적으로 변하게 합니다. 꽃이 피고 꽃물도 피고, 꽃 속에 잠재우고 있던 꽃향도 피웁니다. 더불어 눈도 코도 입도 핍니다. 

몇 번인지 찌고 말린 아카시아 덖음차 한 봉지를 받았습니다. 밋밋합니다. 색도 향도 맛도 없습니다. 대신, 꽃이 핍니다. 싱싱했던 초여름이 작은 유리컵 속에 담겨 있습니다. 주렁주렁 흰 꽃송이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철 지난 계절을 선물하기 위해, 프라이팬 앞에 서서 몇 번씩 꽃잎을 뒤적였을 친구의 정성 가득한 마음이 한참 후에 나타나는 은은한 향에 흡착됩니다.   
달맞이꽃이 많이 폈습니다. 어느 겨울밤을 위해 달맞이꽃 덖음차를 준비해볼까 생각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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