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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며 손님 맞는 꽃 – 접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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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키며 손님 맞는 꽃 – 접시꽃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7.20 14:56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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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울타리나 길가, 담 밑, 마을 어귀에서 붉고 희고 분홍빛으로 손님맞이를 합니다. 소박하게 서서 골목을 지나는 이들을 맞아주고 배웅합니다. 한 줄기 한 줄기가 우르르 쓰러지면서도 꽃은 활짝 폈습니다. 바람과 비에 이리저리 쏠리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 꽃주인은 가늘고 긴 줄기들을 한 덩어리로 질끈 묶어놓기도 하였습니다. 혼자거나 여럿이나 따가운 햇살에 찌푸림 없이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게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담장 안에서 장독대를 지키듯 크고 정갈한 꽃이 피는 접시꽃을 외할머니는 좋아했습니다. 간장독 속으로 꽃가루가 날리고 벌들이 윙윙대는 접시꽃이 외숙모는 영 못마땅했습니다. 읍내라도 나갔다 오는 외삼촌에게 방긋방긋 웃어주는 것이 너 대신 꽃이라고 외할머니는 외숙모의 투덜거림을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어쩌다 찾아가는 외할머니집은 알록달록한 꽃담이 멀리서도 반겨주었습니다. 접시꽃이 세상 밖의 무엇을 보고 싶어 한껏 키를 키우는지 궁금했지만, 외숙모한테도 외할머니한테도 묻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외숙모는 한 그루도 남기지 않고 뽑아버렸습니다. 외할머니가 좋아하던 꽃나무라 다 뽑아버렸냐고 몇십 년이 지나 물었더니 “그건 아녀~” 외숙모는 대답하였습니다. 접시꽃이 있었던 자리엔 푸른 잎의 옥수수가 긴 수염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줄기의 잎겨드랑이마다 꽃을 피우는 접시꽃은, 중국이 원산지이며 역사가 오래된 꽃이랍니다. 황촉화, 덕두화, 접중화, 단오금, 촉규화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당나라 때에도 꽃은 촉규화라 하며 약용하였고, 뿌리는 촉규근, 씨앗은 촉규자라 부르며 부인병에 효과 좋은 한약재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흰 접시꽃 뿌리를 귀하게 여기며 달여 먹었답니다. 동의보감에는 일일화로 표기됐으며, 우리는 치키화라고 불렀습니다. 

초록 잎의 모양이 아욱과 비슷하다 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쌍떡잎식물과의 아욱묵 아욱과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야들야들한 다섯 장의 꽃잎을 들여다봅니다. 꽃받침 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듯, 고운 색깔이 별 모양으로 퍼지며 피어나온 꽃잎입니다. 수술들은 합쳐져서 암술을 둘러싸니 작은 방망이처럼 보입니다. 벌이 왔다 간 흔적을 남겼습니다. 희고 붉은 꽃잎에 노란 꽃가루가 떨어져 있으며, 암술머리가 여러 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꽃가루가 많아 벌과 곤충이 즐겨 찾는 접시꽃은 멀리서 보면 무궁화 또는 부용화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합니다. 겹꽃과 홑꽃이 있으며, 겹꽃은 다른 꽃의 겹꽃과는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연분홍 홑겹의 꽃은 자세히 보아도 무궁화를 닮았습니다. 정말 예쁩니다.
키가 큰 접시꽃은 꽃말처럼 단순하고 편안하고 풍요롭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수레바퀴처럼 납작하고 동그란 열매가 맺힙니다. 꽃과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아 접시꽃이란 이름이 지어졌답니다. 
동그란 씨앗은 똬리 모양으로 겹겹이 붙은 채 껍질 속에서 여물어가며, 마르면 한 개 한 개 떨어집니다.

씨앗으로 번식하는 접시꽃은 봄이나 여름에 씨를 뿌리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자랍니다. 여러 풀과 섞여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함께 뽑히게 됩니다. 살아남은 잎을 바짝 땅에 붙여 겨울을 잘 보내야만 이듬해에 줄기를 키우며 꽃을 피웁니다.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하며,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저절로 벌어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에게 소소한 기쁨을 줍니다. 집안 구석진 곳이나 담장의 안과 밖, 대문 옆에서 아름답게 핍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대문장가인 최치원은 접시꽃을 소재로 시를 지었습니다. 당나라에 유학을 가 고국에 대한 향수와 약소국의 서러움을 표현했습니다. 접시꽃은 수 백년전부터 시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란 시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꽃나라 궁궐 안의 커다란 화단에서 꽃을 피우려 세상의 모든 꽃나무가 들어갔지만, 주인의 집을 지키기 위해 남은 유일한 꽃입니다. 귀와 눈을 크게 뜨고 집을 지키는 꽃, 접시꽃이랍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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