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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 젊은 농군 - 목면 신흥1리 윤상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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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 젊은 농군 - 목면 신흥1리 윤상진 씨
  • 김홍영 기자
  • 승인 2020.07.06 11:17
  • 호수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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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리 사는 논에서 생산한 쌀 브랜드 만들고 파

고향을 떠났다가 아버지의 농사를 이어받아 삶의 터전을 일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목면 신흥1리 윤상진(49) 씨도 그렇다. 땀 흘리고 일한만큼 그에게 풍성한 결실을 안겨주는 땅에서 그도 아버지처럼 농사지으며 일가를 이루고 살고 있다. 6월 어느 날, 아내 서재숙 씨와 모내기를 하는 상진 씨를 만났다.

일터 주방에서 논으로 바뀌다
“여기 깊은 고랑 안에도 논이 있었네요?”
“네 신흥리는 너른 들판보다 고랑 고랑 작은 논이 많아요. 그래서 모내기할 때 힘들어요.”
상진 씨네 이앙기에 놓인 모판이 동그랗게 말려있다. 바쁜 농사철에 시간을 줄이기 위한 묘안이다. 이렇게 하면 차곡차곡 쌓는 것보다 이앙기에 모판을 더 쌓을 수가 있다.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마음으로 이렇게라도 해야 오늘 몫을 다 끝낼 수 있을 듯하다. 상진 씨는 모를 심는 여름을 13번 째 맞이했다. 
스무 살이 채 안된 나이에 고향을 떠난 상진 씨는 서른 중반에 귀향했다. 도시에서 한식 요리사로 일했고, 그 경력을 살려 고향에 내려와 처음에는 2년 정도 음식점을 운영했다. 음식 맛이 괜찮으니 ‘장사가 쏠쏠’했다. 

“손님이 많아지니 일손이 부족하더라고요. 혼자 음식 만들고, 배달까지 하려니까 힘들었어요. 15년 가까이 식당서 일하니 물릴 때도 됐고, 아버님 혼자 농사 지으셨는데 건강도 전 같지 않으셨고요. 내가 농사를 지으라는 뜻인가 여겨지더군요.”
상진 씨의 일터는 주방에서 아버지가 평생 농사를 짓던 논으로 바뀌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처음 2년 동안은 영농교육을 열심히 다녔어요. 농사를 전혀 모르니까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뭐라도 해야 했어요.”
그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농사 짓겠다 결정하니 고추와 한우 교육을 받고 농기계 수리 자격증도 땄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에서만 농사를 짓다가 상진 씨 손이 보태져 주변의 논을 임대하는 등 그 규모가 몇 배로 늘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양으로 벼농사에 필요한 웬만한 기계도 모두 갖췄다. 부담이 많이 되지만 대규모 벼농사를 지으려면 기계를 임대해서 쓰는 것에 한계가 있기에 그는 과감히 기계에 투자했다. 

작목도 추가했다. 아버지가 계절별로 해야 할 일과 경험에서 나온 정보를 알려주셔서 상진 씨는 빨리 농사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것. 10년 넘게 하니까 농사 이치도 알고 하니 벼농사 이외의 틈새 작물로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원목 재배한 버섯은 식감과 향이 좋아 상진 씨네 가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단다. 

마을 일 도맡아 하는 젊은 농사꾼
“농사 경험이 쌓이니 자신감도 생기고 현재처럼 농사짓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요. 농사만 지어서 아이 키우기 힘듭니다. 여기서 아이를 키우고 살려면 변화가 필요해요.”
상진 씨네 마을도 여느 마을처럼 인구가 점점 고령화되고, 일손이 부족해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재배 면적을 늘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소득을 올리는 방안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상진 씨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유일한 40대다. 바쁜 농사철에 동네 일 돕기는 물론 청년회장, 새마을지도자, 주민자치위원 등 자연스럽게 마을 대표 일을 맡게 됐고, 면 행사에도 빠지지 않는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으니까 마을에 일이 생기면 여건이 되는 한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마을 소득사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그는 3년 전부터 마을 차원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찾아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상진 씨는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땅에서 그 답을 찾았다. 손이 많이 가는 고랑 논이 그에게는 더 각별한 이유다. 
“신흥리가 예전부터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해요. 골에서 물이 흘러 큰 웅덩이를 이루는데 송사리와 미꾸라지도 살아요. 여기서 물고기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송사리가 사는 맑은 논에서 재배하는 쌀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쌀 브랜드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름하여 송사리 쌀. 그와 뜻이 맞은 이웃 농부들과 마을 사업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상진 씨는 자신이 농사 지은 쌀의 품질에 대해 자신감이 있다. 이러한 자신감이 있어 도시인들에게 맛있는 쌀을 선보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었다. 
“깨끗한 물에서 자라니 쌀 맛도 좋아요. 고정 고객도 많이 생기고 판매는 잘되고 있지요. ‘송사리 쌀’을 브랜드화 할 경우 직접 도정도 하고 더 품질 좋은 쌀을 선보일 수 있다고 봐요. 이런 기회로 우리 마을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마을에 체험장도 만들어 도시민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가꿔 가고 싶다는 상진 씨는 딸(초 6년)과 두 아들(초 4·2년), 아버지 3대가 한울타리에서 산다. 머지않은 날 자신이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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