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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리똥, 파리똥, 보리똥 – 왕보리수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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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리똥, 파리똥, 보리똥 – 왕보리수나무 열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6.29 18:03
  • 호수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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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일 년 중 두 번째로 바쁜 계절이 지났습니다. 모심기를 비롯하여 감자를 캐고 보리를 수확하였습니다. 낮이 14시간 35분으로 가장 길었던 하지에는, 8년 만에 한반도를 찾아온 우주쇼 부분일식도 있었습니다. 보랏빛 창포꽃이 눈을 밝게 합니다. 땅바닥엔 노란 살구가 떨어져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코끝을 스치던 밤꽃 향기도 스러졌습니다.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오는 계절, 장마의 계절이 왔습니다. 

방줏골 저수지를 지나면, 뒤꼍에서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보리수나무가 늘 반겨주던 친구 집이 있었습니다. 연둣빛 새순을 내밀면서부터 우리들의 들락거림을 눈여겨보았을 나무였습니다. 둘레가 큰 줄기는 위로 올라가며 가지 역시 굵게 잘 키웠습니다. 흰 꽃을 올려보기가 무섭게 파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는 또 금방 은백색 비늘털에 감싼 열매를 붉은색으로 탐스럽게 익혔습니다. 잘 익은 빨간 열매를 따러 줄기에 오르고 가지를 잡아당기며 덜덜 떨었습니다. 시큼털털하고 단맛이 있는 보리수열매 ‘뽀로수’를 정신없이 입안에 넣곤 하였습니다. 까칠까칠하게 혓바늘이 돋았습니다.

붉게 익은 열매가 촘촘하게 매달린 왕보리수나무를 보며, 수십 년이 지난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자리에서 만나는 보리수나무의 붉은 열매는 변함이 없지만, 방줏골에서 푸른 꿈을 꾸던 친구도 보리수나무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보리수 한 알에 손을 대봅니다. 탱탱하고 보드랍습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성큼 열매를 따지 못했습니다. 초록과 붉은빛이 어우러진 나무만 마냥 바라보았습니다. 

장미목 보리수나무과의 관목 보리수나무는 상록성보리수나무와 낙엽성보리수나무로 나눕니다. 가시가 없는 상록성보리수나무는 덩굴성 형태로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자랍니다. 봄보리똥나무, 보리장나무, 덩굴볼레나무, 볼레나무 등으로 부릅니다. 전국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며 잎이 지는 낙엽성보리수나무는 보리화주나무, 민보리수나무, 보리똥나무, 가시보리수나무 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역과 약효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어찌나 많은지, 이토록 많은 이름이 있는 나무는 또 처음 봅니다.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여는 왕보리수나무와 산에서만 자란다는 보리수나무도 낙엽성보리수나무입니다. 
관상용으로나 길가에서 흔히 보며 붉은 열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보리수나무는 일본에서 귀화한 왕보리수나무입니다. 뜰보리수나무라 부르며 붉은 열매는 크고 답니다. 산에서만 자라는 보리수나무 열매는 팥알만 하며 가을에 익습니다.  
열매 또한 붉은 표면에 파리똥 같은 까끌까끌한 작은 점이 붙어 뽀리똥, 파리똥, 보리똥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보리수나무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나무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되기 전 고민이 많았던 싯다르타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던 숲속 나무입니다. 뽕나무과의 활엽상록수인 핍팔라나무로 싯다르타가 그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깨달음을 뜻하는 ‘보리’를 붙여 인도보리수나무가 되었습니다. 어린 가지는 푸른색으로 깨달음을 준 나무라는 뜻의 각수, 도량수로도 부릅니다. 
우리나라 기후와는 맞지 않아 하우스재배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만 같을 뿐 우리가 알고 있는 보리수나무와는 식물학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나무입니다.  

보리수나무는 뿌리와 잎과 열매에 사람에게 이로운 성분을 지녔습니다. 나무를 칭하는 이름만큼이나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잘 익은 열매를 햇볕에 말린 목반하, 호퇴자, 피멎이약 등은 기관지와 폐와 시력을 좋게 하고, 피부 건강과 간 기능을 개선하며 숙취 해소까지 효과가 큰 만능식품이랍니다. 
붉은 열매에 술을 부어 뽀로수주를 담거나, 설탕을 넣고 끓여서 잼으로 만듭니다. 술도 설탕도 싫으면 약불과 중불에 통째로 끓여 되직한 상태로 만들어 냉장 보관합니다. 
붉은색은 생명과 재생을 나타내며 활기와 야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빛 고운 붉은 술 한 잔은 코로나19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극복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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