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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대치면 꼬약골농원 김금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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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대치면 꼬약골농원 김금자 대표
  • 이순금 기자
  • 승인 2020.06.22 11:41
  • 호수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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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렁더우렁 스며들면서 살고 싶다

오늘은 토종 농산물을 활용해 다양한 장아찌와 반찬을 가공 상품화하는 일을 하고 있는 꼬약골농원 김금자(66·대치면 시전리) 대표를 소개한다.
 
DIY 가구사업 너무 앞서가 실패
김금자 대표는 청양으로 오기 전 도시에서의 이야기부터 잠시 전했다. 
김 대표는 부여가 고향으로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 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을 다녔고, 그러다 남편 최병세(69·대치면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 씨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 최씨는 운곡이 고향으로, 그 역시 형을 따라 일찍 서울로 올라가 학업을 마쳤다. 이후 방송국 공채로 입사해 근무하다 명퇴 후 실내인테리어를 겸한 가구매장을 운영했다.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실패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사업장인 ‘꼬약골 찬’ 앞에서 부부가 함께했다. 웃는 모습이 참 많이 닮은 부부다.
사업장인 ‘꼬약골 찬’ 앞에서 부부가 함께했다. 웃는 모습이 참 많이 닮은 부부다.

“남편이 MBC에서 근무하다 그만두고 실내인테리어도 해주고 가구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했어요. 그런 중에 일본에 가서 한창 유행이었던 DIY 가구를 보고 와서 서울에서도 시도했는데 잘못됐습니다. 지금은 대중화 돼 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너무 빨랐던 거죠.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 큰애는 대학생, 둘째는 고 3이었을 때여서 더 막막했죠.”
‘엄마는 강하다’는 것이 이때 발휘됐다. 김 대표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가구매장에 식당을 연 것이다. 이후 그의 남다른 음식솜씨에 손님들이 줄을 이었고, 남편 최씨도 힘든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등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요양원 설립 꿈꾸며 대학 진학
식당을 접은 후 김 대표는 수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50대의 늦은 나이였다. 졸업 후에는 요양원에 근무를 하면서 방송통신대학에 편입해 교육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요양원에서 2년 정도 일을 하다 허리에 병이 나 1년 정도 치료를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다시 수원 서호노인복지회관 재가복지팀에서 4년 정도 일을 하다 청양으로 이사를 왔죠.”
김 대표는 이렇게 노인복지관 등에서 일을 하면서 훗날 요양원 운영을 꿈꿨고, 이를 이루기 위해 부여에 땅을 구입해 놓기도 했단다. 하지만 남편 최씨가 시골 행을 원하지 않아 부여행은 포기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요양원을 당장 운영하지 못하더라도 땅을 구입해 놓은 부여가 아니더라도 시골서 살고 싶었고, 남편을 설득해 대치면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장아찌로  
시골행 꿈을 이룬 김 대표는 대치면 시전리 고약골(골짜기) 주변 친척 소유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만여 제곱미터 규모였고, 첫해에는 일부에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어 수확의 기쁨도 누렸다. 그래서 2년째에 양을 좀 늘려봤지만, 전량 멧돼지 먹잇감이 됐다. 

“산나물도 심었는데 고구마와 옥수수만 싹 먹어치웠더군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서, 3년째부터는 옥수수와 고구마는 집 가까운 곳에만 심고 눈개승마·곤드레·명이 등은 빌린 땅에 심어 지금도 채취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참취도 파종해서 내년부터는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트도 좀 심었고, 비닐하우스 1동 330제곱미터에도 산나물을, 660제곱미터에는 생강도 심었습니다.”

김 대표는 직접 심고 수확한 토종 산나물을 이용해 장아찌와 반찬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직접 생산해 내지 못하는 농산물은 주변 농가에서 구입해 사용한다. 
그러다 지난해 기술센터로부터 ‘향토 음식 상품화 시범사업’을 받아 가공장을 마련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사업은 전통식문화계승을 위한 것으로 토종 농산물로 다양한 장아찌와 반찬을 가공 상품화하는 사업이다.

사업장 이름은 ‘꼬약골 찬’. 이곳에서 김 대표가 만드는 장아찌와 반찬 중 곤드레·눈개승마·토종고추·풋고추 등 5개는 품목제조허가를 받았고, 나머지도 허가를 받기 위한 샘플을 다양하게 만들어 저장하고 있다. 
“품목제조허가를 받는 것이 너무 힘들더군요. 기관에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어렵고요. 농민들이 잘 모르는 일을 도와주는 독립 기관이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입니다 
김 대표는 농사를 짓고 가공사업장을 운영하면서 현재 대치면 자원봉사거점센터장과 생활개선회장도 맡고 있다. 남편과 함께 자발적으로 가입한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산나물을 납품하고, 앞으로 장아찌 납품도 계획 중이다. 

“계획하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일을 참 많이 하고 있어요. 이런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건강 먼저 챙기세요 하더군요. 청양으로 온 후 남편이 다쳐서 수술도 하고 그래서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 말 잘 들어야죠. 건강을 우선으로 챙기고 조금씩 농사 지으면서 이웃들과 어우렁더우렁 행복하게 사는 것이 주 목표입니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오래전 가졌던 요양원 운영에 대한 바람도 전했다. 꿈이 이뤄지면 좋지만 안된다면 어른들을 돌봐 줄 수 있는 그룹 홈 운영이라도 해 보고 싶단다. 
“아들 둘이 결혼 해 손자 1명 손녀 3명을 낳았어요.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옥수수 하나라도 친환경으로 키워야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요.”김금자 대표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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