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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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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6.01 16:16
  • 호수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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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 다시 서른이라면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서른즈음」에 부분 

구름으로 인해 파란 하늘이 더 보기 좋은 날, 송방리에서는 모내기에 한창입니다. 가득 찬 논물에 비친 구름을 보면서 연두의 모를 다룹니다. 이앙기가 지나갈 때마다 여덟 줄의 모가 심어집니다. 논둑에 앉아 금방 잘 자랄 어린 모를 봅니다. 지금은 살랑이는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지만, 머잖아 이런 바람쯤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벼 이삭을 내놓을 것입니다. 

서른 살이 된 ‘청양신문’을 생각합니다. 시작은 구름에 가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저 여린 모와 같았겠지요. 그러면서 뿌리내린 서른입니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누구든 기댈 수 있는,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처럼 굵은 줄기와 무수한 잎을 피웠습니다. 그 잎 한 장 한 장에 푸르고 붉고 노란 청양의 사연이 물들었습니다.

서른, 이미 서른이 훨씬 지난, 서른이 있기나 했었나? 나의 서른은 무채색, 생각 없이 서른을 보냈다는 사람들에게 잠깐만이라도 ‘서른’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다시 서른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을까 궁금하였습니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겠다며 한국을 떠나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도 몇 명 있었습니다. 공부를 실컷 해 봤으면 좋겠다고도 합니다. 사는 동안 마음대로 된 것이 없어서, 사기를 많이 당해서 제대로 살 것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은 절대로 안 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게 살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하고는 다른 길을 택할 것이라 합니다. 여자로 태어나면 실컷 연애나 하고, 남자로 태어나면 스님이 된다고도 합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정말 잘 만나고 싶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시골 초등학교의 교사가 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그것이 가끔 생각난다고도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사람으로 태어나면 스키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진 불덩이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문득 생각이 듭니다. 
 
서른이면 뜻이 확고하게 서야 한다는 공자의 서른이나,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끓는 피의 청춘이나, 누구에게든 서른과 청춘은 있었고 있을 것입니다. 이미 서른과 청춘을 다 보냈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른과 청춘을 떨쳐버리지 못한 아쉬움이 몇 개씩은 남아있었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은,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가수가 되고 싶은 어르신도 계셨지만,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욕망을 꺼내기에는 환경적으로나 여러 상황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냥 살아가기 바빠서, 어쩔 수 없어서, 부모님을 거역하지 못해서, 내 꿈이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스터트롯’이란 방송프로가 왜 지금서야 생겼느냐고 한탄 반 부러움 반으로 쓴 글을 읽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느라 딴생각을 전혀 못 했답니다. 딴생각이 아니라 본인만의 재능을 죽인 것이라 속상하다 하였습니다. 
다시 서른으로 되돌아가, 몸 안의 재능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내 몸속의 재능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으로 나를 인정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만 조금 늦게 문을 열어주었을 뿐이라고요. 지나간 시절에 이어서 더 밝고 맑은 빛을 발할 것입니다. 가끔,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저에게 비아냥대며 꼬집는 친구가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시체는 되고 싶지 않으냐고요.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인생을 만드는 것은 나 스스로임을 늘 깨닫습니다. 젊을 때는 젊음 그대로, 서른이면 서른 그대로처럼요. 늦은 것이 아니라 잠시 미루었던 내 마음, 내가 지니고 있던 나만의 힘을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꺼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서른’이라는 마음으로요. 몸과 마음속에 숨어있는 그 무엇, 그 기운을 그냥 녹여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내 안에서 꼬물거리는 애벌레를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꿈이 헛되지 않도록요. 
서른 시절 꿨던 꿈의 한 조각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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