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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함께한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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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함께한 회화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5.18 15:28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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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제 제통의원 원장/ 인터넷 식물도감 ‘풀베개’ 운영자
김순제 제통의원 원장
김순제 제통의원 원장

집근처나 길가에 큰나무가 있으면 큰 그늘을 만들어주고 사람들이 모여서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는 정자 구실을 한다. 이런 나무를 정자나무라 하고 농경사회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의논도 하고 휴식과 놀이를 할 수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을의 병마와 액운을 없애는 기도와 축원을 드리는 신목(神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자나무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수종은 느티나무이다.
대략 정자나무의 80% 정도가 느티나무라고 한다. 정자나무의 역할을 하려면 나무가 커야하고 큰 나무로 가장 빨리 자라는 수종이 느티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팽나무와 은행나무가 주로 이용되지만 더러는 모과나무, 이팝나무, 수양버들, 소태나무 등이 이용되기도 한다.
옛날 사대부집안에서 집안에 심던 정자목의 대표적인 수종은 회화나무이다.

회화나무는 국내에 자생하는 나무는 아니고 중국에서 도입된 수종이다.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집안이 번성하고 큰학자나 큰인물이 나온다해서 흔히 심었다고 한다.
학자수(學者樹)라고 불리우며 영어로도 학자나무(scholar tree)로도 불린다. 과거에는 궁궐에도 많이 심었고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학당 마당에 심었었고 근대에는 각급 학교의 경내에 회화나무를 심어 가꾸기도 했다.
회화나무는 집안의 당산나무로 그 집안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북경의 경산공원의 회화나무는 흔히 죄많은 회화나무(罪槐 : The Guilty Chinese Scholartree)라고 불리운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목메어 자살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회화나무가 황제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고는 하지만 회화나무가 무슨 죄란 말인가?
서산의 해미읍성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호야나무가 있다. 호야나무는 회화나무의 충청도 사투리이고 이 회화나무에는 아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해미읍성은 1790년부터 100년동안 1000여명의 천주교도들이 투옥 및 처형을 당했던 가슴아픈 사연을 간직한 장소로 현재는 천주교 순교성지로 더 유명한 장소이다.
이곳의 300년된 회화나무는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죽음을 함께 했을 것이다. 실제로 회화나무에 철사를 걸어서 천주교인들을 목매달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회화나무의 꽃인 괴화(槐花)에서 추출한 성분은 각종 효능을 내는 한약재로 이용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천연농약 살충제로도 이용되고 있다.

회화나무은 키가 30미터까지 자라는 키큰교목이다. 콩과식물의 나무인지라 잎모양은 아카시나무와 비슷하지만 어린줄기는 초록색이다. 7~8월에 담황백색의 콩꽃이 피고 9~10월이면 나무가지에 잘록잘록한 콩꼬투리가 달린다.
과습지만 피하면 생장이 빠르고 공해와 매연에 강한 수종이라 도심지의 가로수로 각광받는 수종이다. 무엇보다도 회화나무는 키가 크게 자라서 큰 그늘을 만들기는 하지만 가지치기만 잘해주면 도심상권의 주민들이 꺼리는 간판을 가리지 않는 수종이다.

대한민국 유일무이하게 가로수가 없는 청양 시가지에 회화나무 가로수를 적극 추천한다.
그리하여  청양이 쾌적한 동네가 되고 또 번영하며 큰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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