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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생각하고 느낌! – 남아메리카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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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생각하고 느낌! – 남아메리카 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3.30 15:42
  • 호수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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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 파타고니아

‘소금은 어디에서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석탄은 잠들었다가 어디에서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파블로 네루다「질문의 책」부분

산페드로데아타카마의 교회
산페드로데아타카마의 교회

칠레국경에서는 여권보다 가방을 꼼꼼하게 검사합니다. 큰 여행 가방 안의 조그만 가방 하나하나까지 다 열어보지만, 저 밑에서 버스를 바꿔 탈 때 남은 과일을 다 먹은지라 걸릴 것이 없었습니다. 뻥 뚫린 붉은 아타카마 사막의 단 한 줄 말끔한 도로를 거침없이 달려 내려갑니다. 국경 하나 넘은 것인데(그것도 버스로) 해발 4천미터에서 금방 2천미터로 내려오니 몸은 날아갈 듯한데 갑자기 덥습니다. 하루에 사계절을 만난다는 나라,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와인과 화산의 나라, ‘칠레’입니다.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 끝을 푸른 나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초록잎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달의 계곡과 반짝이는 별 사막 위에 지어진 마을, ‘산페드로데아타카마’입니다. 부드러운 길바닥이나 벽은 온통 황토색이며, 흙 속에 마른풀을 넣어 담을 쌓았습니다. 예전에 짚을 넣어 벽과 담을 쌓던 우리 외할머니 동네를 보는 듯합니다. 아담한 카페의 2층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천장을 장식한 마른나무 가지를 보면서 사막임을 다시 실감합니다. 상점 앞이나 건물의 빈 공간에는 사람보다 많은 개가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오아시스 도시, 마치 영화세트장 같습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남미에서도 유럽을 닮은 도시 중의 한 곳,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시위대의 오토바이와 최루탄이 맞아주었습니다.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사회 불평등을 일으키는 제도 전반에 대한 시민들의 행동입니다. 거리 대부분의 건물은 시위 낙서로 검고 붉게 칠해져 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마포초강’을 건너 한인마을로 가는 길에, 지하도 입구의 낙서를 찍느라 휴대폰을 꺼냈더니 하라가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이곳은 특히 더 휴대폰을 조심해야 한다며, 오토바이족들이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을 채간다고 합니다. 고산에 길들어질 만하다 이별이더니, 이젠 또 소매치기? 

산티아고의 벽화골목
산티아고의 벽화골목

아름다운 전위미술 벽화가 관광 상품이 된 골목 끝으로 ‘숙이네’식당이 있습니다. 몇 개의 한국식당과 마트가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들도 많습니다. 마트에 들러 와인과 소고기를 비롯한 몇 가지 물건을 고릅니다. 한동안 고산에 시달렸으니, 와인의 나라에 왔으니, 더군다나 숙소도 아파트로 일행 모두 함께 있을 수 있으니, 무사 고산 기념 조촐한 파티를 하였습니다.  

“산티아고에 지쳤어. 조용히 글을 쓰면서 지낼 작은 집을 발파라이소에 구하고 싶은데 몇 가지 조건이 있어.” 칠레의 초현실주의 ‘파블로 네루다’는 태평양이 보이는 ‘발파라이소’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천국의 골짜기’라는 별칭을 가진 지역의 5층 건물, 다혈적이지만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네루다가 수많은 언어 속에서 고민했던 곳, 책상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던 곳, 항구 ‘발파라이소’에는 시위대가 길을 막아 끝내 가지 못했습니다. 

창백한 블루타워, 바람을 담은 호수
세계적 명성의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10대 낙원 중의 하나, ‘토레스델파이네’로 가기 위한 어촌마을 ‘푸레르토나탈레스’도 바람이 많이 붑니다. 공항에 내리자 바람이 몸과 가방과 모자를 심하게 밀어냅니다. 어디선가 본 풍경, 설산 밑에 자잘하게 핀 흰 야생화 밭을 지나고, 파란 바닷물과 짝짝 갈라진 나무다리 밑에서 출렁이는 물새들을 보며 환호합니다. 원색을 칠한 1,2층 집들, 오후 10시가 넘어야 만나는 밤, 향 짙은 커피까지도 오래오래 머물고 싶던 마을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여행지 ‘파타고니아’는 남아메리카 콜로라도강 이남의 칠레와 아르헨티나지역으로, 남미 지도의 끝부분 중 폭이 좁아지면서 긴 삼각형 모양의 지역입니다. 최대 풍속이 초속 60미터를 넘는 일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엄청 추운 곳으로 알려졌지만, 12월의 지금은 꽃 피는 여름입니다. 바람이 만들어 주는 풍경, 초원, 가시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이 많습니다.

토레스델파이네의  한 봉우리
토레스델파이네의 한 봉우리

파타고니아 남부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이 가까워집니다. 옥색의 ‘페오에’호수를 지나 바람의 언덕을 오릅니다. 배에 힘을 팍 주며 올라가지만,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습니다. ‘그란데’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또한 바람 탓인지, 물의 세기 탓인지 정말 엄청납니다. 파타고니아 바람에 밀리며 올려보는 바위산, 노을에 비친 ‘바예델프란세스(토레스델파이네의 한 봉우리)’의 날카로운 산세의 아름다움에 질식합니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울고 일어나는 풀 속에 무더기무더기 검은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여행자의 실수로 산불이 난 흔적입니다.     

국립공원의 북쪽산장에서 올려본 삼봉에 구름과 노을이 걸쳤습니다. 세계의 오지 여행자들이 웃고 떠드는 식당에서 마신 에일맥주의 향과 색과 맛은 지금까지 기억됩니다. 삼봉까지는 왕복 19킬로미터, 내일 새벽 출발합니다.   
이슬을 털며 야생화가 핀 초원에서 가파른 산비탈로, 계곡으로, 질퍽한 흙길로, 우거진 숲길로 이어진 오솔길,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여기저기 찢어진 비닐옷을 휘날리며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너덜지대를 지나, 손바닥만한 이정표가 겨우 보이는 바위 같은 돌길을 오릅니다. 발을 잘못 딛는다면, 으~ 소름이 끼칩니다. 호수가 조금씩 보이더니, 구름에 덮인 웅장한 청색화강암 세 개의 봉우리가 호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담백한 푸른 물이 평온합니다. 큰 돌을 벽 삼고 앉아 구름이 벗겨지기를 기다립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흘러내립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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