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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낭독 -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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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낭독 -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2.24 11:28
  • 호수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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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책은 혼자서 읽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것이기도 하다.”-마르크 로제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눈 내리는 밤, 소리 내어 백석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습니다. 백석이 된 나는 나타샤와 함께 당나귀를 타고 푹푹 나리는 눈을 맞으며, 세상한테 져서가 아니라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서 산골로 갑니다. 

낭독, 눈으로 보던 책이 귀로 듣는 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오디오북이 인기를 끌면서, 현란한 기교보다는 쉼표와 위로를 줄 수 있는 순수한 낭독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32년째 사람들에게 책 읽어 주는 일을 하는 대중낭독가 ‘마르크 로제’는 서점과 도서관을 다니며 낭독회를 열어, 책과 사람들을 이어줍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의 출판전문지 ‘리브르에브도’에서 수여하는 특별상도 받았습니다. 마르크 로제의 자전적 소설책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를 소리 내어 읽습니다. 감옥 같은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들의 삶이 ‘책 읽어주는 사람’에 의해, 고독과 소외에서 벗어나 행복에 이른다는 내용입니다. 낭독이 우울과 불안을 치유하고, 휴식과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혜율이와 수민이와 다인이는 동화책을 귀로 읽습니다. 목소리를 변화시켜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호랑이에서 토끼로 둔갑하며 공감각적인 소리를 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동화의 세계에 푹 빠졌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혜율이와 수민이와 다인이의 마음에는 연둣빛 어린나무가 자라겠지요. 먼 먼 날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읽어 주던 책을 보면서, 어린 날을 떠 올릴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던 어린나무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밝고 환한 등불이 되어 줄 것입니다. 어쩌면, 제일 먼저 들었던 ‘오디오북’이라 기억하겠지요. 
 

목소리는 몸 전체에서 나오는 울림입니다. 소리 내어 읽는 독서는 혼자이든 여럿이든 즐거움을 몇 곱 더합니다.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읽던 책을 여러 타인을 위해 읽고 듣는, ‘책 읽어 주는 독서 모임’이 많습니다. 타인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시나 소설을 읽어 주는 책 읽기의 즐거움은, 책에 빠져드는 즐거움과는 다른,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공유하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여럿이 함께 하는 ‘책 읽기’는 문학작품의 향기를 풍부하게 하며 작품의 내용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해 줍니다. 낭독자는 듣는 이들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마음을 녹이려는 노력으로 책을 읽으며, 절제된 구절들에서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작품에 푹 빠지게 합니다. 문장들이 그 자리에 갑자기 처음 나타난 것처럼 들리도록 읽는 낭독자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이미 잊힌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오래전의 설렘으로 돌아가기도 하며, 다시 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용기도 북돋습니다. 그리움이 물씬 커지는가 하면 감동도 훨씬 특별해지며, 끝맛이 길게 남습니다.

졸음과 잡념을 쫓기 위해 늦은 밤에 소리 내어 책을 읽습니다.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매듭이 조금씩 풀리는 듯합니다. 감정이 메마르고 느낌이나 생각이 없어질 때, 괜스레 무기력함을 느낄 때나 속 좁고 강퍅해질 때,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가라앉지 않을 때, 큰 소리로의 ‘책 읽기’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결에 울퉁불퉁했던 마음이 고르게 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책 속의 타인에게서 받는 동질감으로 크게 위로가 되고, 나를 돌볼 수 있는 계기도 됩니다. 
내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나를 부르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모든 상황으로부터 지탱하는 힘, 소리 내어 책 읽기입니다. 

오늘같이 눈이 푹푹 내리는 밤이나, 휘영청 달 밝은 날이나, 봄비 내리는 밤, 그러다 꽃잎 날리는 밤에 소리 내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 송이 눈이, 달빛이, 봄비가, 꽃잎이, 더 아름다운 밤이 될 테니까요.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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