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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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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것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2.10 10:51
  • 호수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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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고도’-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베게트
  
백세공원에는 꽃잔디가 한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겨울바람이 불자, 마치 피하기라도 하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소소소 흔들립니다. 공원길 여기저기에도 연둣빛 식물들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타박타박 공원길을 걷고 있다가, 갑자기 푸드덕 날개를 치는 왜가리로 인해 깜짝 놀랐습니다. 지천을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더니, 돌이 둥글게 쌓인 작은 돌섬으로 사뿐히 내려옵니다. 다시 날아오르겠지, 크고 우렁찬 그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왜가리를 지켜보았습니다. 빨갛고 동그란 눈에서 뒷머리까지 검은색 털로 이어졌으며, 털은 양쪽으로 길게 뻗쳐있습니다. 황색 긴 부리는 물고기가 보이면 쏜살같이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을 것입니다. 
돌섬에서 살짝 일어나 날기를 바라지만, 왜가리는 날아오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합니다. 살짝 기지개를 켜듯 움직이다 잔디밭에 폴싹 내려앉습니다. 
하늘을 한참 올려보더니 슬슬 걷기 시작합니다. 가늘고 긴 다리로 천천히 걷는 모습은 늠름하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합니다. ‘너가 이렇게 근사할 때도 있구나, 걷지만 말고 제발 한 번만 날아봐라.’ 댕기깃을 뒤로 늘인 채 회색 날개를 넓게 펼치며, 하얀 배와 검은 날개깃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앉고 서고 걷고를 몇 번씩 반복해도 왜가리는 날아오를 생각을 안 합니다. 이쪽으로 걷다가, 다시 또 반대쪽으로 걷기를 반복합니다. 
양쪽으로 뻗친 길고 검은 댕기깃을 휘날리며 날아올라, 이 지천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존재로 활보할 기미가 전혀 없습니다. 
왜가리는 알을 하루 건너, 아니면 삼 사일 간격으로 1개씩 낳는 특이한 성질이 있답니다. 4월에서 5월 사이 둥지를 틀고 3~5개의 알을 낳으며, 암수가 함께 알을 품습니다. 부화하여 부모로부터 잘 자란 왜가리는 이제는 물고기나 어린 곤충을 쉽게 사냥할 수 있어 둥지를 떠나왔을 것입니다. 
해가 지자 추워집니다. 기다림에 지쳐(?) 일어섰지만, 계속 미련이 남습니다. 부드럽게 날개를 펄럭이는 왜가리를 상상하며 뒤돌아보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문득, ‘기다림’을 생각합니다. 공원길이나 정거장에서 앉을 사람들을 기다리는 의자, 맛 좋게 익을 김치, 저금, 사연 많은 편지를 기다리는 빨간 우편함, 맛과 영양이 듬뿍한 반건조 과일과 생선, 황태가 되기 위해 추운 바람과 햇볕을 기다리는 명태, 발효, 농사 등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기다림이 있음을 생각합니다. 
 
지난해 고구마가 심어졌던 밭에도 푸릇푸릇 풀들이 올라옵니다. 길가 무궁화 나무의 마른 꽃송이, 박주가리의 씨앗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림을 기다리듯이, 기다림인데도 아닌 듯이, 기다리는 중에 시나브로 봄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요. 

비록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도 왜가리의 날갯짓은 보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분명히 왜가리는 날아올랐을 것입니다. 
기다려준다는 것은 크고 참인 배려입니다. 서서히 오는 자연현상처럼, 추운 겨울날 배를 드러내고 씨를 바람에 날리는 박주가리의 희고 눈부신 갓털처럼, 기다림도 눈부시다는 것을 배웁니다. 

입춘첩을 붙인 날, 반짝이는 눈이 왔습니다. 가로등 불빛에 비쳐 빛나는 가랑눈은 밤에 몰래 내리는 탓에 더 아름다웠습니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눈을 맞고 싶었습니다. 
겨우내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긴 기다림 끝에 와줬습니다. 승용차와 의자에 앉은 눈의 모습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 기다린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봄이나 사람이나, 상처 난 마음이나 내용은 다르지만, 기다린다는 것은 따뜻함을 줍니다.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성장하며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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