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 비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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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 비비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10.14 16:05
  • 호수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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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소리를 낸다는 라디오 음악프로 디제이의 말을 들으며 식물원길을 걷습니다. 바람 소리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초음파의 진동을 낸다는 것입니다. 태풍이 불면 자디잘게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기후변화에 따라 소리도 다르답니다. 들을 수 없는 나무의 소리, 들리지 않는 나무의 소리, 그 소리를 내기 위해 나무들도 스스로를 지키며 자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꽃보다 많은 붉은 열매로 식물원길은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초록잎 사이사이에서 익어가는 좀작살나무의 보랏빛 열매는, 나뭇가지에 보석을 올려놓은 듯 아름답습니다. 푸르고 반짝이던 잎으로 한쪽 어덕을 장식했던 비비추원에도 여름의 흔적만 남았습니다.
골목길 담벼락 밑에서 싱그럽게 잎을 펼치며 긴 꽃대를 올렸던 비비추화분이 떠오릅니다. 여름 내내 연한 보라색으로 골목을 환하게 비췄을 생각을 하니,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비비추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며 들이나 산지의 냇가와 습기가 많은 곳, 약간 그늘진 곳을 좋아합니다. 화분에 심어져도 잘 자라지요. 병충해는 거의 없지만, 꽃대에 허연 솜사탕 같은 진딧물이 잘 붙습니다.
좀비비추, 흰좀비비추, 참비비추, 일월비비추, 흰비비추, 주걱비비추 등 주로 꽃의 모양이나 색깔에 따라 붙여진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비비추는 심고 난 후 몇 년이 지나면 뿌리가 우거져 한꺼번에 여러 개의 싹이 동시에 나옵니다. 무더기로 나온 잎은, 잎자루의 날개처럼 비스듬히 밑으로 퍼집니다. 번식도 잘 되어, 그늘이 드리운 밭둑이나 활엽수 밑에 심어두면 해마다 보랏빛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뻗은 땅속뿌리가 자리를 잡으면, 보통 7~8년 동안은 잎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타원형에 끝이 뾰족한 잎은 연두색과 초록이 주를 이루지만, 가장자리에 금빛을 띄운 것도 있습니다. 꽃만큼이나 예쁜 잎들은 낮게 옆으로 자랍니다. 사슴처럼 길게 올라온 꽃대에, 연한 자줏빛 꽃은 한쪽으로 치우친 채로 총총총총 여러 송이가 달립니다. 약간 뒤로 젖혀진 여섯 장의 꽃잎 속에는 긴 수술이 있습니다. 갈퀴 모양으로 끝을 둥글게 말아 올린 암술은 마치 이슬을 붙들고 있는 것 같지요.
 
봄에 나오는 새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산나물처럼 쓴맛이나 떫은맛이 없고, 재배 채소처럼 연하고 향긋합니다. 감칠맛이 나, 데쳐서 쌈으로 먹기도 합니다. 생체로 말리거나 약간 삶아 말려서 이듬해 묵나물로 이용하기도 하며, 뿌리는 한약 재료로도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산나물로 취급했지만, 최근에는 관상용이나 정원에 조경 식물로 많이 재배합니다.

은은한 보라색 꽃을 따 혀끝에 올리며 배배추라고 부르던 생각이 납니다.
이 뚜뚜따따 작은 트럼펫 같기도 한 보라색 꽃의 의미는 ‘좋은 소식’입니다. 골목골목의 담벼락 밑이나 백세공원 뚝, 식물원길에 피어있는 비비추를 보면 금방이라도 좋은 소식, 신비스러운 소식이 확 달려올 것 같았습니다.

어느 봄날에 큰 벚나무 밑에서 긴 꽃대를 올리며 꽃을 피울 준비를 하더니, 이슬을 머금고 단단한 꽃봉오리를 숨긴 채로 우아하고 기품 있게 목을 올리더니, 화려했던 보라색 꽃의 시절을 보내고 꽃만큼이나 길쭉한 타원형 열매를 흔들고 있습니다. 3쪽으로 갈라지는 열매 속에는 검은색 날개가 달린 씨가 여물어갑니다. 탱탱하게 물이 올라 두껍던 진녹색 심장 모양의 잎들도 금빛으로 물들어 또 다른 숲속 풍경을 보여줍니다.
    
간장과 식초와 설탕을 물에 섞어 만들었다는 비비추장아찌 한 통을 선물 받았습니다. 비비추와 비슷한 원추리 어린잎 무친 음식을 먹었다가 배탈이 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냉큼 손이 가진 않았지만, 보내준 이의 정성 가득한 마음을 먹고 나는 배탈이라면, 몸속 독소를 빼주는 것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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