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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떨어지는 키 큰 나무 - 팥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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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떨어지는 키 큰 나무 - 팥배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9.30 11:44
  • 호수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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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소공이 멈추신 곳이니 싱싱한 감당나무를 자르지도, 꺾지도, 휘지도 말라’-시경<감당>시 부분
 
수숫대의 잘 익은 열매가 바람에 출렁거립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날아오르던 반딧불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찌르르르 귀뚜라미가 쉬지 않고 웁니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별이 캄캄한 하늘에서 더 반짝입니다.  
배꽃만큼이나 화려한 팥배나무의 흰 꽃도 열매를 맺었습니다.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는 나뭇잎도 푸른 기운보다는 잘 익은 갈색을 띄고 있습니다.

봄에 피는 흰 꽃의 모양은 배꽃과 비슷하고, 가을에 볼 수 있는 붉은빛의 자잘한 열매는 크기가 팥만 합니다. 열매를 잘라보면 배와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졌습니다. 팥만 한 배가 열려 ‘팥배나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넓은 잎 큰키나무인 팥배나무는, 줄기가 하나 또는 몇 개로 갈라져 나와 15미터까지 자랍니다. 줄기의 둘레 역시 한 아름에 이를 정도로 크게 자랄 수 있습니다. 가지가 많이 벋어 위쪽이 넓고 둥그스름한 나무모양을 만듭니다.

평원지대의 음지나 메마른 능선, 계곡에 주로 서식합니다. 홀로 자라 군락은 보기 힘들지만, 예로부터 흔하게 자라다 보니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릅니다. 평안도에서는 ‘운향나무’, 황해도에서는 ‘물방치나무’, 전라도에서는 ‘물앵두나무’, 강원도에서는 ‘산매자나무’, 제주에서는 ‘목세낭·쇠개낭나무’라 부릅니다.
톱니 모양의 나뭇잎과 열매의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릅니다. 잎과 열매가 큰 것을 ‘왕잎팥배’, 열매가 길면 ‘긴팥배’, 잎 뒷면에 솜털이 있으면 ‘털팥배’,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심하지 않는 것은 ‘벌배나무’라 부르지요.     
 
큰 나뭇잎에 비해 너무 작은,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타원형 열매 팥배는 노란빛을 띈 붉은색으로 익습니다.
한겨울 새들이 먹지 않으면 검게 마른 모습으로 이듬해 봄까지 가지에 그득하게 남아 있어, 연둣빛 새 잎 사이사이로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봄에 찍어 놓은 꽃 사진을 자세히 보니, 사진 속에도 거무튀튀한 열매가 남아있었습니다.
표면에 흰 점이 있는 팥배나무열매는 먹을 수는 있지만 별맛이 없어, 식용보다는 약재로 사용합니다. 

열매가 워낙 많다보니 겨울철 산새들에게는 좋은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박새나 직박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이 팥배나무 열매를 좋아한답니다. 열매가 많아 겨울과 초봄에 다양한 새를 불러들일 수 있는 나무로, 정원이나 학교 숲을 조성하는데 많이 심겨집니다. 많이 열리는 양으로 이듬해 봄이나 여름까지 열매가 남아 있다지만, 사람의 입맛만큼이나 새들의 입맛도 까다로운 것은 아닌가, 붉어가는 열매를 보며 생각합니다.
 
잎이 떨어지는 장미과 팥배나무의 수피는 회색빛을 띤 갈색으로, 수령이 오래될수록 터진 살처럼 길고 불규칙하게 갈라집니다. 나무에서는 수액이 흘러나와 주변의 돌이나, 다른 나무 밑동에까지 검게 물들인답니다.  
줄기가 강하고 쉽게 썩지 않아서, 옛날 사람들은 울타리를 쌓거나 강둑을 막는데 사용했습니다.
배꽃만아니라 마가목과도 비슷한 꽃을 옛 사람들은 신기가 가득하다고 믿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자세히 보면, 산발한 듯한 기다란 꽃술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처럼 보였기 때문이랍니다. 눈부신 꽃을 보며 느꼈던 신기는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감당지애(甘棠之愛)’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감당은 팥배나무를 뜻하는 한자입니다. 직역하면 감당나무를 사랑한다는 뜻이지만, 선정을 베푼 관리를 기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옛날 중국의 지방관리 ‘소백’은 백성을 항상 존중하였으며,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였답니다. 특히 여름이면 시원한 감당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재판을 하였답니다.
그냥 심겨졌으므로 그늘만 만들었는데도, 바르고 어진 정치를 한 관리가 쉬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팥배나무는 소중하게 받들어졌습니다. 서운하고, 상처받고, 불신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는 시절, 옛 어른들의 순수함을 생각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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