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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세상을 꿈꾸는 곳 … 방기옥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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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세상을 꿈꾸는 곳 … 방기옥가옥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7.01 10:57
  • 호수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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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푸른 은행잎 사이로 회색 지붕과 하얀 돌담이 보입니다. 남서쪽, 돌계단을 올라 솟을대문 안을 기웃거립니다.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둥그런 징검다리와 그네가 보입니다. 마당에 들어서니 안채로 들어가는 중간문이 있습니다. 
 
가장 멋스러운 장소, 높은 지형의 언덕, 주변의 송림, 서남향, 5량집, 안채와 사랑채와 앞채와 옆채, 19세기 후반 충청도지방을 중심으로 한 고풍스런 한옥의 명맥을 잘 유지하여 전통한옥 형태를 보여주는 ‘방기옥가옥’은, 좀 더 변형된 ㅁ자 형태의 가옥입니다.  
눈을 맑게 하는 소나무숲 아래 기와집 마당에 들어섭니다. 편안합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이 사랑채와 건넌방에 매어 있습니다. 널어놓은 하얀 이불 홑청이 눈부십니다. 잔잔하게 음악도 흐릅니다.

안채의 북서쪽 모퉁이에 부엌이 있고, 부엌 동쪽으로 안방과 대청·건넌방이 있습니다. 부엌 남쪽으로는 행랑채가, 대각선으로는 사랑채가 있습니다. 행랑채의 광과 사랑방 사이의 사랑채부엌이 중간문을 겸하고 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와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ㄷ자 모양의 한옥입니다.
안방과 대청 앞의 툇마루에 걸쳐 앉아 행랑채와 사랑채를 내려봅니다. 사랑채 벽에는 크고 작은 체와 쳇다리가 걸려있습니다. 앞면과 뒷면에 쪽마루가 있는 행랑방, 뒷면의 쪽마루 밑에는 동그란 통나무가 쌓여 있습니다.
 
아침에는 동풍이 저녁에는 서풍이 들어온다는 대청, 문짝이 넷으로 되어 열리고 닫히는 사분합문을 서까래 밑에 내려진 들쇠에 걸어 올려 수평으로 놓았습니다. 안방과 대청은 미닫이창에 띠살문 쌍창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청에 앉아 뒤꼍을 내다 봅니다. 가파른 어덕 위에 연두색 풀과 노란 금계국과 하얀 담벼락이 보입니다. 탁 트인 공간은 통풍이 잘 돼 시원합니다. 남의 집만 아니라면 그냥 벌렁 누워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뒹굴뒹굴했으면 딱 좋겠습니다. 할머니가 쓰셨다는 뒤주와 사슴과 학이 그려진 반닫이가 있습니다. 보기에도 오래된 듯한 여행 가방 2개도 쌓여 올려있습니다. 각지고 멋진 가방을 들고 푸른 마당을 밟고 들어올 누군가를 상상합니다.
 
평면 일자형으로 안채보다 길며, 안채를 방어하듯이 배치된 사랑채 역시 앞뒤의 툇마루와 대청과 누마루가 있습니다. 누마루에 앉아 푸른 나래미마을을 내려봅니다. 이곳에 앉아 달빛을 받으며, 빗소리를 들으며, 한시를 쓰고 장기를 두며, 장죽을 물고 봄과 여름과 겨울을 맞이했을 옛 어른들이 부러워집니다.
마을사람들의 수호신으로 매년 정월이면 술 대신 식혜로 동재를 올리는 800살 은행나무도, 철마다 다른 모습으로 먼발치까지 빛을 발합니다. 활짝 열어놓은 띠살문 단창 너머 빨갛게 익은 보리수 열매가 보입니다. 
겉마당을 돌며 안채와 협문과 굴뚝을 봅니다. 장독대 뒤로 낮은 담장이 쳐 있고, 담장을 넘나들며 핀 유월을 빛내는 들국화가 한층 보기 좋습니다. 
     

초가집과 기와집·너와집으로 나눈 우리나라 전통가옥 중, 특히 전통한옥은 양반이 살던 집, 사대부의 집으로 여겼습니다.
유교적 문화가 사회 전반에 두루 퍼져 있던 조선시대 중기 이후, 가옥의 구조 역시 유교적 덕목을 집안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집을 지었습니다. 남녀유별을 원칙으로 삼아, 남녀의 생활 공간을 구분하였습니다.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와 손님맞이 등 남자들의 공간인 사랑채를 만들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도 구분하였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공간인 행랑채가 있었고, 부엌과 광·찬방이 있는 안채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지었습니다.
갑오개혁 후 주택의 규모와 형태를 규제하던 제도가 철폐되면서, 솟을대문과 큰 규모의 장식적이며 독립적인 사랑채를 갖춘 집이 많이 지어졌습니다.

온양방씨 간의공파 34대 바깥주인 방면석님과 그의 아내와 딸이 거주하는 ‘방기옥가옥’은 조선시대 전통한옥으로, 일제강점기에 할아버지가 매입하였습니다. 현재의 바깥주인이 안주인과 혼인한 다음 달에 충청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주인장 내외에게는 더욱 특별합니다. 관리하기에 부담스럽다고 안주인은 말하지만, 시부모님과 시조부모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이곳이 참으로 자랑스럽다는 몸짓이 배어있습니다. 방안의 위풍은 세지만 감기는 안 걸린다며, 떨어졌다는 노란 살구와 다닥다닥 열린 보리수 한 가지를 꺾어 두 손에 담아줍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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