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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장에 손님들 만족할 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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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장에 손님들 만족할 때 뿌듯하다
  • 이관용 기자
  • 승인 2019.06.03 15:25
  • 호수 1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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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3대가 70년간 이어 온 ‘도장집 문화당’
▲ 청양읍 읍내리에 친척 3대가 도장업을 잇는 문화당

우리는 주위에서 물건을 거래하거나 중요한 문서를 처리할 때 도장을 찍는다. 일상에서는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하고 인출할 때 본인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도장이 사용된다.
도장은 기원전부터 개인, 단체, 관직 등 대상을 알리는 도구로 이용됐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도장에 글자나 그림 등을 정교하게 새기는 손작업 장인들이 사회에서 인정받았고 관련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짧은 시간에 도장을 만드는 기계시스템이 개발되고, 간편한 서명이나 전자위임장 등 다른 인증수단이 생기면서 도장에 대한 가치가 낮아졌다.
결국 오랜 세월 각광받았던 손작업 도장업은 시대흐름에 밀려 설자리가 줄었고, 도장만 취급하던 전문점도 하나 둘 업종을 변경하거나 문을 닫는 실정이다.
세월의 풍파 속에도 70년간 손도장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문화당(文化堂)을 소개한다.

▲ 이봉희 문화당 3대 가주가 손도장을 만드는 모습.

장 글 좋으려면 글씨 잘 써야
청양읍 읍내리에 위치한 도장 전문점 문화당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해방시기에 문을 열었다.
당시 도장집은 도로 건너편(삼성전자 서해디지털 부근)에 있었으나 청양읍 시가지 정비 사업에 따른 도로변 확장공사로 건물이 철거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도장집 외관은 ‘문화당’이란 세로간판과 함께 ‘선화랑 표구’란 상호가 붙어있었고 건물간판 글자색은 세월의 흔적이 스쳐가듯 변해 있었다.
문화당은 청양읍에 살았던 수원이씨 친척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1대 창업주는 이병식 씨로 1947년부터 1969년까지 20년 간 도장업을 했고, 2대는 이재희 씨로 1969년부터 1979년까지 10년간 운영을 맡았다. 3대 가주인 이봉희(65) 씨는 2대인 이재희 씨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았고, 1대와 2대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봉희 씨가 도장업을 하게 된 것은 2대 가주였던 이재희 씨가 그의 글씨체와 손재주를 보고 권유해서다. 또한 당시 1970년대는 도장을 손으로 직접 만들기에 장인으로서 전문가 대우를 받았고, 수입 또한 일반 업종에 비해 괜찮아 도장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봉희 씨는 문화당에서 2년 간 교육과정을 거친 후 1979년 문화당 제3대 가주를 맡았고, 올해로 점포 운영 40년을 맞았다.
 
 

▲ 1947년 인판장부에는 도장을 만든 사람의 인적사항이 담겨 있다.

도장 하나 만들면 식사와 이발가능
손도장을 제작하려면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각도구로 글자 한자 한자를 제대로 새겨야 상품으로써 가치가 있다. 이는 도장에 글씨를 새기는 도중 아주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상품으로 가치가 없는 실패작이 되기 때문.
어른 손톱만한 도장 단면에 이름이나 문구를 새기려면 온 신경이 손끝과 조각칼에 집중된다. 주위의 잡음도 작업을 방해하는 요인이기에 조용한 공간이 좋다. 인감도장의 경우는 경력자가 1시간을 몰두해야 하나의 도장이 완성돼 주인을 찾게 된다.

이봉희 씨는 2대 가주인 이재희 씨로부터 손도장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는 당시 가주였던 재희 씨 밑에서 주먹(빨간 분)을 칠한 후 붓과 연필로 도장에 글씨를 옮겨 적는 ‘포자’ 작업과 조각칼로 글자를 새기는 방법 등 도장 제작과 점포 운영을 전수 받았다. 이씨는 도장 제작에 앞서 글씨를 잘 새겨야 했기에 도장의 밑 단면을 조각하고 사포로 문질러 복구하기를 헤아릴 수 없이 반복하며 실력을 쌓았다.
특히 도장에 주로 사용되는 ‘전서’와 ‘해서’ 등 글씨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했기에 글씨 연습과 함께 서체의 종류를 알기 위한 공부를 병행했고, 여러 글씨체를 익히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다.
이봉희 씨는 “2대 가주로부터 2년간의 지도를 받고 가게를 물려받았다. 내가 만든 도장을 받고 기뻐하는 주민들을 볼 때 보람이 컸다”며 “초창기에는 도장 하나를 만들어 팔면 그 돈으로 자장면을 사먹고 이발도 가능했으니 꽤 괜찮았다”고 회고했다.

▲ 1대부터 내려오는 도장을 만드는 수작업 도구들.

경찰서 도장 위조방지 고객명부 점검
문화당은 70여 년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현재는 사라진 법제를 담은 문서들이 보관돼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도장을 의뢰한 손님의 인적사항을 등을 기록한 인판장부다.
1947년 사용된 인판장부에는 도장을 만든 날짜, 재질, 금액, 인영, 주소, 성명 등 6가지가 기재돼 있었다. 또한 장부에는 쪽수가 매겨져 일자별로 도장을 만든 수량을 알 수 있었고, 치안기관인 경찰서의 확인을 받은 인장이 크게 찍혀 있었다.

경찰서가 도장을 만든 사람들을 확인하고, 도장의 재질과 모양 등을 꼼꼼히 기록해 놓은 것은 재산도용과 불법 등 범죄에 복사도장이 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인판장부는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색이 바라고 문서 둘레가 조금씩 뜯겨 있지만 본문 글은 선명해 내용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음은 전국인판업연합회가 1974년에 발행한 요금책자다. 이 책자는 전국에서 인장업(도장업)을 하는 점포에 배분된 표준 요금표로 목도장(막도장), 인감, 소뿔도장(수우인), 인조도장(플라스틱), 코끼리도장(상아인) 등의 가격이 고시돼 있다.
현재는 전국을 대표하는 연합회가 없는 상태로 도장가격은 판매업체와 노동력 등을 고려해 가격이 형성된다.

▲ 컴퓨터로 입력한 글자를 기기가 글씨를 새길 수 있어 손도장 장인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후계자 양성 생계해결 없인 어려워
20여 년 전부터 도장을 제작하는 전문기계가 유통되면서 손작업 장인들의 설 곳이 좁아지고 있다.
특히 인감도장 제작을 사람이 하게 되면 보통 1시간이 소요되지만, 컴퓨터 등에 새길 글자를 입력하고 실행단추를 누르면 기기가 알아서 도장을 만들고 시간 또한 5분~10분 내외서 끝난다. 도장에 들어갈 글씨 또한 손도장은 장인의 재능과 실력이 크게 좌우하지만, 기기는 입력 도구인 컴퓨터에 저장된 수많은 서체와 글꼴로 표현이 가능하기에 고객들의 다양한 글씨체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다.

여기에 인감증명법 폐지, 서명제와 전자위임장 등 간편한 입증제가 실시되면서 손도장업은 사실상 폐업수순을 밟고 있다.
이봉희 씨는 “30여 년 전만해도 하루 평균 30여 개의 도장을 새기느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등을 통해 손도장보다 저렴한 도장구입이 가능하고, 도장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지 않더라도 컴퓨터와 글씨를 새기는 기기만 있으면 손쉽게 도장을 만들 수 있다. 수작업을 요구하는 손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기를 통해 도장을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도장 후계자 양성에 대해서는 “전국인판업연합회가 없어진 뒤 도장가격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일반도장보다 비싼 수작업 도장을 만들어 달라는 손님은 드물다”며 “후계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 손도장업을 해서는 생활의 여유를 떠나 당장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렵기에 권장하고 싶지 않다”고 그는 손사래를 쳤다.
이봉희 씨는 끝으로 “문화당이 직계는 아니지만 친척 3대가 70년 넘게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늘 관심을 가져 준 고객과 주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몸이 허락하는 한 손도장을 계속 만들겠다”고 주위의 성원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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