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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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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이팝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5.26 12:07
  • 호수 12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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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밥 같은 꿈이고파 … 이팝나무

소만절기, 개구리소리 높고 모내기 준비에 바빠집니다. 붉은 색의 꽃이 피고, 보리가 익어가며 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어댑니다. 대나무는 어린 새 죽순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누렇게 변해갑니다. 옛날 옛적 이 무렵엔 ‘보릿고개’라는 아픈 추억도 있었습니다.
연두와 흰빛으로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 남양면 구용길을 걷고, 돌아보고, 다시 걷습니다. 전기 삼륜차에 탄 어르신도 운전을 멈추고 돌아봅니다.  하얀 가로수 길은 눈과 발과 숨을 멈추게 합니다.
초여름이면 잎이 안 보일정도로 하얀 꽃이 나무 전체에 피었다가, 가을이면 콩 모양의 보랏빛 타원형열매가 보기 좋아 정원수나 공원수·가로수로 적합한 이팝나무길입니다.

이팝나무는 쌓인 눈처럼 하얗게 피는 꽃이 큰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물푸레나무과 식물로 꺾꽂이와 번식이 다소 까다롭지만, 지구의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중부지방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린 나무일 때는 더디 자라는 흠이 있지만, 성목이 되면 잘 자라 전국에는 200~500년 된 나무가 20여 그루 있습니다. 태풍에 잘 견디고 풍성한 꽃이 화사하면서도 오래도록 피어 많은 지역에 가로수로 심겨져 탐스럽고 눈부신 모습을 보여줍니다.

봄 한철, 급하게 피었다가 얼마 못가 한꺼번에 우르르 바람에 떨어져 아쉬움을 남기는 벚꽃의 뒤를 이어 환하게 피는 이팝나무꽃은, 긴 시간동안 소담스런 흰꽃으로 아름답고 산뜻한 거리를 만들어줍니다. 떨어져 날리는 모습 역시 동화 속 요정의 날갯짓 같습니다. 가늘고 길쭉한 잔 꽃송이들이 땅바닥에 하얀 꽃밭을 만듭니다.
 

잿빛을 띤 갈색껍질의 이팝나무 잎은 마주나며, 보통 잎자루가 긴 타원형입니다. 꽃은 암수딴그루로써 5∼6월에 피는데, 새 가지 끝에 원뿔 모양으로 꽃 밑에서 또 각각 한 쌍씩 작은 꽃자루가 나와 달려 핍니다. 유난히 가냘픈 한 송이지만, 홀로 피지 않고 푸른 잎 위에 무더기무더기 모여서 핍니다. 마치 한 겨울 눈이 소복하게 쌓이듯이요.
꽃받침과 꽃잎은 네 장으로 가늘고 길게 갈라집니다. 두 개의 수술이나, 한 개의 암술은 너무 작아 보이지 않으며, 꽃부리 속에 다홍색깔의 점 하나 콕 찍어 놓은 듯합니다. 

옛날부터 이 땅에 우리 조상들과 함께 살아오며 애환을 같이 한 이팝나무는 우리 정서에 잘 맞는 꽃나무입니다. 옛 어른들은 이 나무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마을 입구에 심었습니다. 이팝나무의 꽃피는 모습으로 그해 벼농사의 풍·흉년 여부를 짐작하였고, 치성을 드려 꽃이 많이 피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어 신목으로 받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승주군 쌍암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500년이 넘은 나무가 있으며, 김해 신천리의 이팝나무는 지금도 정월 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 해의 안녕을 빌고 있는 신목으로 모시고 있답니다.

보릿고개에, 이팝나무 꽃송이가 온 나무를 덮을 정도로 많이 피었을 때, 멀리서 바라보면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쌀밥)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절기인 입하 무렵부터 꽃이 핀다하여 ‘입하목’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전라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암나무’라 하였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어린잎을 차 대용으로 사용해 ‘다엽수’라 부르며, 특히 중국에서는 네 장의 길게 늘어진 꽃잎이 수레·말·깃발 등에 장식용으로 매달아 늘어뜨리는 술(유소)을 닮은 나무라는 뜻으로 ‘유소수’라 부릅니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로 하얀 눈꽃이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의 옛 시절 5월의 이팝은 허기진 희망과 슬픈 마음의 꽃이었습니다.   

은은한 향과 눈부신 꽃다발 범벅인데도 벌이나 곤충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 혹시 수꽃만 피는 수그루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팝나무는 식물도감이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암수딴그루로 소개하고 있지만, 암수갖춘꽃으로써 수꽃그루와 양성화가 피는 양성화그루가 따로 있다고 혹자는 설명합니다. 꽃 진자리, 검보랏빛 열매를 이번 가을에는 꼭 눈여겨보아야겠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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