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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연필 깎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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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연필 깎기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4.08 13:19
  • 호수 12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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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지만 심오한 연필 깎기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신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김훈

육각이나 사각, 삼각 또는 원형의 나무속에 흑연심을 넣어 만든 연필, 목탄 필기구에서 유래된 연필은 약 2000년 전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둥근 납덩이로 노루가죽에 기호를 표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16세기, 영국에서 발견된 흑연을 나뭇조각 사이에 끼워 쓰기 시작한 것이 흑연연필의 시작입니다. 지금의 연필은 프랑스의 콩테가 흑연과 진흙으로 만든 심을 고온에서 굽는 방법을 개량한 것이며, 우리나라에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왔습니다. 

연필은 볼펜을 비롯하여 신속 정확하고 수정까지 편리한 디지털방식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필기구입니다. 지우개와 연필깎이 등 부수적인 준비물이 필요함에도 여전히 연필로 쓰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흑연에 따라 소리도 다르지만 사각사각 글을 쓰면서 내는 소리는 연필을 사용하게 하는 가장 큰 매력, 끌림입니다. 연필심을 다듬을 때나, 연필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 역시 텅 빈 듯 하지만 맑은 소리를 냅니다. 
연필로 글씨를 쓰는 사각대는 소리는 듣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소리 등과 함께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한답니다. 

연필 깎는 법을 알려 주는 책 「연필 깎기의 정석」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이며 연필 깎기 장인인 ‘데이비드 리스’씨가 쓴 책입니다.
주머니칼부터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를 사용하는 방법까지, 주어진 도구로 완벽하게 연필을 깎는 법을 설명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일이 때로는 가장 심오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애정이 깔려 있는 연필깎이로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우리의 원초적인 감각을 환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리스는 연필 한 자루를 주문받아 깎아 주는데 약 13만 원 정도의 돈을 받는답니다.

데이비드 리스의 연필 깎기는 앞치마 두르기를 시작으로, 연필과 주머니칼‧족집게‧비닐봉투‧사포지 등을 준비하고 몸 풀기를 한 후, 연필에 칼의 위치를 선정(약2센티미터)- 첫 칼자국 내기- 나무속살 깎기- 흑연 노출하기- 흑연 사포지에 다듬기- 증거 채집으로 6단계에 걸쳐 총 30분이 소요됩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유쾌한 활동인 연필 깎기에 대해 데이비드 리스는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을 때나 미술작품을 그릴 때, 세계적인 건축 작품을 스케치 하거나 위대한 문학작품을 써 나갈 때 등 자신만의 세계를 탄생시킬 때 반드시 필요한 용병인 연필을 깎는다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랍니다. 연필을 깎는 것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마음을 다잡는 명상의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요.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스는 “내 평생 이렇게 요염하고 도도한 연필은 처음 본다”, 만화작가 닐 게이먼은 “그동안 인생을 헛살았구나 싶었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극찬하였다는 리스가 깎은 연필, 비록 한 개의 연필을 깎는 행위라 할지라도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 하는 장인의 정성으로 평범한 연필을 명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연필을 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연필심을 감싼 질 낮은 목재로 인해 칼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깎여 울퉁불퉁하거나, 한쪽의 까만 흑연심만 길쭉하게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곯는(바닥에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연필을 깎을 때 속에서 부러진 심이 쑥 빠져나오는) 연필도 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흐린 연필심으로 인해 수시로 침을 발라서 쓰던 연필, 침을 바르면 진하기는 했지만 지저분한 데다 잘 지워지지도 않았습니다. 또 거기다 종이는 왜 그리도 잘 찢어지던지요.
고등학교 시절에 연필을 깎아주신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2년 내내 수학을 가르치셨는데, 창문에 기대어 서서 연필을 깎아주었습니다. 예쁘고 가지런하고 정갈하게, 육각기둥에 코스모스꽃잎을 만들어 놓으셨지요.   

찻집 진열장 속의 예쁜 연필깎이를 봅니다.
바이올린 모습, 하프 모습, 비행기‧탱크‧마차‧돛단배 등 여러 가지 모양의 연필깎이입니다.
손잡이를 돌리며 깎는 연필깎이는 1828년 프랑스의 수학자 베르나르 라시몽에 의해 발명되었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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