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3:35 (목)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상태바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3.25 17:47
  • 호수 128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이 남긴 미련…고뿔과 동백
▲ 동백

‘미세미세’ 하면서 먼지를 피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미 지리산 공기를 팔고 있는 사업체도 있으며, 그 업체 대표는 공기 마시는 카페를 열 계획까지 하고 있다는 한 일간지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공기 캔, 음료가 아닌 공기는 벌컥벌컥 딸꾹딸꾹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입 안 가득 신선한 산 향기를 스프레이처럼 뿌려 마시는 것이랍니다.
서울 사는 언니는 청양근처에만 오면 공기가 달다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그 말을 듣지 못한지가 언제부턴가 가만히 생각합니다.

▲ 복수초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더니, 자꾸 마른기침이 나오더니, 드디어 침을 삼킬 때 목구멍은 침을 맞듯이 따끔따끔, 그 통증이 한층 심해집니다. 왼쪽부터 시작한 따끔거림은 밤새 오른쪽으로 옮겼습니다. 목소리가 변하고, 콧물이 줄줄 나옵니다. 기침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합니다. 곰곰이 고뿔이 찾아온 이유(?)를 찾아봅니다.
겨울을 보내기가 아쉬운 것은 아닌데 겨울이 남긴 미련, 꽃샘추위와 함께 맞이하게 된 것, 고뿔입니다. 지난겨울 맞은 독감예방백신의 기운이 떨어질 때 쯤 되니, 고뿔의 자잘한 바이러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찾아왔습니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그 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그대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허무/…’조지훈의 ‘병에게’ 부분
 

▲ 수양매화

코와 이마의 열 탓인지 바람이 시원합니다. 콧물과 기침은 멈추지 않았지만 봄꽃을 보러 식물원에 갑니다. 아직은 무채색의 산과 들이지만, 노랗고 빨간 풍년화의 가는 꽃잎이 길맞이를 해줍니다. 피어난 모습을 보고 그 해의 풍흉을 가늠했다고 해서 붙여진 봄꽃나무 풍년화입니다. 색 있는 한지를 가늘고 길게 잘라 묶어 놓은 듯도 하고, 차다만 숱 빠진 제기 모습 같기도 합니다.

새우난초가 즐비했던 자리에, 꽃말이 ‘희망’인 영춘화가 활짝 피어 바닥에 수북하게 노란 꽃송이를 떨어뜨렸습니다. 울타리 가득 척척 늘어지게 핀 영춘화를 보았을 때는 노란폭포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선화과의 분홍색 작은 나팔꽃 키르탄서스와 장미조팝꽃도 피었습니다. 별을 따다 박은 듯한 돌단풍은 들여다볼수록 별을 모아놓은 것 같으며, 커다란 잎으로 둘러싸인 돌부채도 연분홍꽃잎이 한창입니다. 늘 넓적하고 두툼한 푸른잎만 보여주더니, 이렇게 은근한 꽃을 보여줍니다.   
하우스 밖 길가에는 5월에 꽃이 핀다는 크로커스가 보라색꽃잎과 흰색꽃잎으로 피어있으며, 복수초는 노랗게 빛나고 있습니다.

▲ 풍년화

빼꼼 열린 문 사이로 더운 공기가 훅 끼칩니다.
문 사이로 붉고 밝은 동백꽃이 보입니다. 밑동 옆에 떨어져 있는 대부분의 꽃들이 그렇지만, 특히 통꽃 채 떨어진 모습은 보는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지난겨울 섬에서 본 아름드리나무 동백의 꽃도 툭툭 떨어졌겠지요.
꽃만 모양과 색과 크기가 다른 줄 알았더니, 꽃을 받들고 있는 푸른잎들도 다 다릅니다. 흰색부터 분홍‧빨강‧주홍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이 있습니다. 야들야들 속이 훤히 다 비칠 것 같은 홑겹꽃이 있는가하면 백일홍 같은 겹꽃도 있습니다. 해바라기꽃만큼 큰 꽃이 있는가 하면, 패랭이꽃만한 작은꽃도 있습니다.
모두가 어여쁘지만, 역시 동백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붉은빛의 홑겹 동백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짙붉은 꽃잎과, 광택이 나는 짙은 녹색의 잎과, 꽃 속의 샛노란 수술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동백꽃 예찬자들은 말합니다.

▲ 크로커스

작은 화분에서 한 송이씩 피운 동백꽃을 들여다봅니다. 꽃잎 안쪽의 샛노란수술은 들쑥날쑥하며 옴팍한 성 모양입니다. 사실 수술이 꿀을 따러오는 자잘한 곤충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역할을 하는 것이랍니다. 동백꽃은,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예쁜 동박새에게 자신이 열심히 만든 꿀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찾아오느라 지친 동박새에게 일정양의 꿀이라도 제공하고 싶은 동백꽃의 짙붉고 샛노란 마음이랍니다.    
막힌 코로 인해 화사한 봄꽃향기는 느끼지 못했지만, 고뿔 바이러스도 꽃에 취한 듯하였습니다. 온실속의 동백을 생각하며 잠을 잡니다. 밤새 목구멍이 찢어질 듯이 동박새 울음 같은 기침을 하였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