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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경칩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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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경칩절기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3.04 14:24
  • 호수 1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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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와 봄이 성큼…경칩절기

남은 꽃샘추위로 봄이라 하기엔 다소 이르지만 동식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 새로운 생명이 화사한 계절을 펼쳐주는 본격적인 봄절기입니다. 나무에 새순이 돋고, 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오는 시절입니다.
옛 어른들은 경칩절기에,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는 흙일을 하였습니다.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구리 알을 얌전히 건져 먹기도 하였으며, 겨우내 고이 농익어 달디 단 맛을 내는 고로쇠나무 물을 받아 마셨습니다.
 
조선 세조 때 간행된 ‘사시찬요’에는, 경칩날이면 남편과 아내가 각각 숫은행과 암은행을 나눠먹으며 사랑을 확인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천년 이상을 살 수 있는 은행나무일지라도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마주 보아야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순결한 사랑의 모습으로 본 것이겠지요. 가을에 잘 닦아 말린 은행을 3월초의 경칩까지 고이 간직했다가 선물을 했습니다. 또한 처녀 총각들은 경칩날 밤에 좋아하는 상대와 함께 은행을 나눠먹으며 각자 암수은행나무를 돌았답니다. 

농사짓는 법을 처음 가르쳤다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보리의 싹이 자라고 있는 상태를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는 ‘보리싹점’과,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의 울음소리로 한 해 일의 많고 적음과 식복을 점치는 ‘개구리울음점’ 등 옛 어르신들의 바람이 담긴 풍속이 경칩절기에 있었습니다. 

경칩 무렵에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개구리는 올챙이 때부터 우리와 친밀한 관계입니다. 뒷다리가 생기면서 올챙이 때 지녔던 긴 꼬리와 아가미가 없어지면 수중 생활을 마치고 육지로 올라와 살며, 다양한 생활에 지리적 분포도도 넓어 지구상에 2천 여 종이 살고 있습니다. 
잘 울고 멀리 잘 뛰고 숨을 벌렁이는 개구리는 속담이나 설화, 민요에 많이 등장합니다. ‘동부여의 금와왕 설화’나 ‘개구리의 점복 설화’, ‘우물 안 개구리’, ‘개구리 주저앉는 뜻은 멀리 뛰자는 뜻이라.’, ‘악머구리 끓듯 한다.’, ‘성균관개구리’, 그리고 ‘청개구리 전설’이 있습니다.  동면하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말하기 시작하면 ‘경칩 지난 게로군’이라고도 한답니다.  

개구리는 논이나 연못 등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논개구리인 참개구리부터,  ‘쪽-쪽-, 꾸우우욱, 쪽 꾸우욱’ 소리를 내며 옆구리에 굵고 뚜렷한 금색줄이 불룩 솟아 있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금개구리까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올챙이 때에는 배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으며, 산림이 우거진 계곡의 돌 밑이나 물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산개구리는, 술안주로 인기가 높고 번식기가 되면 ‘호르르릉 호르릉’ 우는 소리가 마치 새소리처럼 들린답니다.
담갈색 또는 적갈색의 가장 부지런한 좀개구리와, 피부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고 독이 있는 옴개구리가 있습니다. 적이 나타나면 앞다리를 높이 쳐들고 발랑 드러누워 몸을 움츠리며 배의 붉은색으로 경계하는, 우기나 산란기가 되면 암수가 가느다란 소리로 운다는 무당개구리도 있습니다. 
한동안 농가의 소득을 올리려고 들여온 황소개구리로 인해, 그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 물고기와 개구리 등 많은 생물들이 줄어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논 가운데 집에서 몇 년을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유리창에 찰싹 달라붙은 고무인형 같은 어린 청개구리를 자주 보았습니다. 툭 불거진 눈방울을 굴리며, 혀를 날름거리며 겁도 없이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난히 하얀 발바닥이 마냥 서늘했는데, 마치 기를 쓰고 올라오는 담쟁이덩굴손 끝부분의 흡반 같기도 하였습니다. 창틀에 턱 하니 앉아 있기도 하였고, 어느 때는 바짝 말라 뻣뻣한 채로 다리를 쪽 뻗고 누워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구리가 우리 일상으로 들어올 계절입니다.
어느 지방에서는 모내기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개나리나무에도 노란 꽃눈이 보입니다. 늘 그렇듯이, 지난해와 다를 것 없는 봄일지라도, 새롭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은 갓 나온 벌레나 풀이 다치지 않도록 경칩 이후에는 논이나 밭의 두렁에 불을 놓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리기도 했답니다. 미물들의 생명까지도 함부로 하지 않았던 조상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존경스러운 시절이기도 합니다. <개구리 사진 네이버>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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